야심 차게 준비한 방학 특강은 첫날부터 삐걱거렸다. 방학이 되니 아이들의 마음은 느슨해지고 잠은 늘어졌다. 어릴 적에나도 방학 아침 늦게까지 잠을 자다가 느지막이 일어났던 기억이 선하다. 이게 바로 방학이 주는 특혜 아니던가. 이런 달콤한 시간을 빼앗아 미안하지만, 마음에 조급함이들어와 곧 달음질할 것만 같았다.
특강 시간 11시. 현재 시각 10시. 아이들 늦잠 잘 때 먼저 일어나서 씻고, 수업 준비 완료! 아침 식사 준비 완료! 이제 남은 일은 아이들 깨워서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밥 먹이고.. 청소하고!
사실 수업 시작 정시에 오는 학생들은 거의 없고,10분 전에 오는 경우가 대다수다. 간혹 20분.. 30분전에(이건 아주 곤란하잖아)오는 학생들도 있으니분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마음의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약 40분 남은 것으로...
"더 자고 싶은데 벌써 일어나야 해? 방학 이제 시작했는데."
"엄마 수업도 이제 시작한다. 아들아. 빨리 일어나자. 얼른 씻고 밥 먹어. 엄마는 그동안에 청소기 돌리고 있을게."
투덜거리는 아이들에게 한 마디 덧붙였다.
"얘들아, 너희도 방학 특강 같이하는 거다!"
내 아이들을 위해 선택한 일이었다.말주변도 없고 글쓰기에는 영 소질이 없는 아들을 보며, 직접 잘 가르쳐보겠다고 선택한 일이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말과 놓쳤던 마음은 글쓰기를 통해 더 깊숙이 들여다보고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예감은 빗나가지 않듯, 수업 시간 내내 흥미를 잃고 길도 잃은 두 마리 양이 눈에 딱 걸려들었는데 바로 내 아들과 딸! 다른 학생들은 수업 재료로 사용된 신문을 가위로 자르고 붙이느라 여념이 없는데 초점 잃은 두 마리 양은 '이곳은 어디인지. 지금 무얼 하는지, 신문을 오리는 건지. 구워삶는 건지' 넋이 잠시 여행을 간 듯했다. 안타까운 중생들의 모습이심히 딱하기도 했으나 마음에 열불이 나기 시작했다
'고작 한 시간도 못 참고 저런단 말이지.'
수업이 끝나고 학생들이 우르르 밖으로 나가자 남은 건 책상 위, 바닥 아래 할 것 없이 나뒹구는 수업에 사용한신문 조각이었다.
"얘들아, 엄마 좀 도와줘. 같이 치우자."
말없이 신문 조각을 치우는 아들과 딸. 그리고 말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아들과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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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아닌데 뭐가 잘못된 걸까?'
"엄마, 내 안티야? 수업 시간에 혼자 치킨 한 마리 다 먹는단 얘기하면 애들이 내가 돼지인 줄 알잖아. 그리고 토론 시간에 왜 H 편에서 얘기해 주는 거야? 나도 잘하고 싶었는데..."
그러고는 아들의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재밌자고 한 얘기였는데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는 모든 말이 다 거슬렸나 보다.수학 문제 풀다가도 안 풀린다고 울고. 들어보면 별일 아닌 거 같은데, 친구한테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울고. 울고.. 또 울고... 울보가 된 아들.
"미안해. 엄마는 웃자고 한 얘기였는데. 너도 같이 웃길래 괜찮은 줄 알았더니. 그리고 H는 새로 온 아이잖아. 토론 수업은 처음이라 낯설 거 같아서 신경을 더 써준 건데... 네 맘 미처 알아주지 못해 미안하다. 아들... 엄마가 치킨 시켜줄게. 화 풀어."
공부방을 하면 일과 육아를 적절하게 분배할 수 있어 내 아이를 잘 돌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아이들에게 급작스러운 일이 생기거나 느닷없이 아플 때, 살뜰히 챙겨주는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에 하나, 둘 학생들이 모이면서 내 아이에게 유독 관심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선생님 자녀라 편애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오히려 매섭게 했던 것도 사실이다. 일과 육아의 균형이 흔들렸지만, 아이들이 바쁜 엄마를 이해해 줬으면 하는 바람도 내심 가졌었다.
'뭐가 저리 서러웠을까...'
수면 아래로는 끊임없는 발길질로 힘에 부치지만 수면 위에선 태연한 척, 여유 있는 척, 고상한 척하는 백조가 된 나는 망연하게 펼쳐진 호수 위에서 잠시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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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눈물이 의미하는 게 뭘까?'
아이들을 잘 이해해 보고자 시작했던 수업이 오히려 찌르는 수업이 된 건 아닌지, 아들의 눈물이 내 마음을 후욱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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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수면 아래 힘겨운 발길질은 잠시 멈추고 시원한 바람에 몸을 맡겨 날개를 펼칠 때라고 아들의 눈물이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쉴 새 없는 발길질을 멈추기 위해 날아오르는 것도 필요하다고. 날아오르면 보이는 것들에 마음을 돌려보라고. 나도 좀 돌아봐달라고말하는 것만 같았다.눈물의 의미를 곱씹어보고 있는데 주문한 치킨이 도착했다.
언제 울었냐는 듯, 맛있게 치킨을 먹는 아들을 보니 싸르르 움켜쥐었던 마음이 한결놓아지는듯했다. 먹는 즐거움이 사춘기의 감성을 지배해서 천만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