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파트 공부방에 개, 고양이를 왜 이렇게 키우는 거예요? 상담하러 가면 개 뛰어다니고, 고양이 점프하고. 공부방은 개, 고양이 키우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양심 없게.'
낯선 동네로 이사를 오고 나서 동네 정보도 얻고, 정도 붙여볼 요량으로 아파트 커뮤니티 톡방에 들어간 첫날,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고양이를 키우며 공부방을 하는 나에게 날아온여과되지 않은날 선 이야기에 잠시 사고가 경직되었다. 자기의 생각이올곧다고 믿는 유연하지 못한 사람들과 유연하지 않은 생각을 선동하고 선동당하는 사람들.. 누가 더 옳지 못할까?
씁쓸히 첫날, 그 톡방을 나와버렸다.
'개, 고양이를 키우는 공부방이 생각보다 그렇게 양심 없지는 않거든요.'
보송보송 보드라운 털에, 뾰족 솟은 귀, 쿡 눌러보고 싶은 말캉말캉 젤리 발바닥.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이 무구한 생명체의존재 자체가누군가를 해하는 순간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K야, 무슨 일 있니? 수업에 집중을 못 하네."
"봄에 늘 그래요. 꽃가루 알레르기가 심해서요. 집에 가서 안약 넣으면 돼요."
봄에만 그렇다던 K는 나뭇잎이 짙푸르러지는 계절에도 여전히 눈물, 콧물을 흘렸다.
전화 상담이나, 대면 상담이 이루어질 때, 신중히 물어보는 한 가지가 꼭 있다.
'혹시 아이에게 고양이 알레르기 있나요?'
수업을 같이하고 싶고,이 무구한 생명체를 좋아할지라도 고양이가 생활하는 공간에서 수업은건강상의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기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일이었다.
일상의 영역이 일터가 되는 순간,익숙하고 안락했던 공간은 꽤나 불편한 자리가 될 수 있다.수업 전에 고양이는 각 방에 들어가야 했고, 수시로 집안 곳곳을 청소하고 소독을 해야했다. 혹시라도 고양이로 인해수업하러 온 학생들의 몸에 이상 반응이일어나면 안 되기에 수업 준비만큼 집안의 청결을철저히 신경 쓰는 건 필수 불가결인 일이었다.
K의 고양이 알레르기가 시작된 건 수업을 시작하고 몇 개월이 지나서였다. 아이는 가려운 눈을 어찌할 줄 몰라 했고, 콧물이 나오는지 연신 코를 훌쩍였다. 아무리 청소를 열심히 하고, 수업 시간에 고양이를 격리한들 K의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K의 눈이 붉어지면 내 신경의 가닥가닥이 들고일어났다.
"어머님, K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거 같아요. 고양이와 접촉하지 않아도 증상이 있네요."
"네, 선생님. K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어요. 고양이를 참 좋아하는데 정말 안타까워요. 앞으로는 수업 전에 알레르기 약을 먹여서 보내려고 해요. 안약도 처방받았고요. K는 선생님 수업을 참 좋아합니다. 고양이도요."
예상치 못한 K엄마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K의 건강을 위해 수업을 종료하는 게 맞다고 결론을 내린 후 걸었던 전화였다. K는 약을 먹으며 참 꿋꿋이도 자기의 자리를 지켰다. 한두 번씩 약한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날 때도 있었지만 K의 몸 상태는 대체적으로 괜찮았고 수업도 즐겁게 참여했다.
너와 나의 노력으로 헤쳐나가 보기
고양이는 방으로 들여보내고, K가 오기 전에 창문을 활짝 열어 집안 공기를 한바탕 뒤집는다. 청소기로 꼼꼼히, 물걸레로 한 번 더 청결히. 책상과 의자는 소독제로 말끔히. 별빛을 닮은 K의 맑고 빛나는 눈동자를 위하여. 나의 노력이 너에게 가닿고, 너의 노력이 나에게 내려앉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시간을 위하여.
화난 거 아님. 그냥 졸린 거임. 외모로 판단하기 없기.
여전히 고양이가 보고 싶은 아이들
"선생님, 고양이 키우시죠? 캣타워는 있는데 고양이는 없네요. 고양이 보고 싶어요. 보여주세요."
아이들의 이런 난감한 질문에 나름의 원칙을 갖고 행동한다. 고양이를 좋아하고 알레르기도 없으며 수업 태도가 좋을 경우, 수업 끝 무렵에 한 번씩 고양이를 선물처럼 보여준다. 아주 가끔.
'공부방 선생님들이 무턱대고 수업 시간에 개, 고양이가 뛰어다니게 두지 않아요. 수업 분위기가 흐트러지면 누가 제일 힘들게요?'
반려동물을 키우며 공부방을 운영하는 선생님들은 부지런하고 정도 더 많을 겁니다. 아마도요. 양심 없는 게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