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쓸모

생모에게 보내는 편지

by 미르

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의 사소한 습관, 외모, 인생 스토리, 생각 등 모든 것이 궁금합니다.

당신은 우리 딸의 뿌리입니다. 당신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존재하기에 우리 딸, 선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당신에 대해 아는 거라곤 입양 당시 상담내용이 다입니다. 그 내용을 읽고 나는 한동안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황량한 사막 같은 당신의 삶이 안쓰러워 꼭 안아주고싶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A4 두 장에 요약된 당신의 인생은 외로웠습니다. 이제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의 딸. 선은 당신을 보고 싶어 하며 그리워합니다. 딸아이 얼굴 속에 들어 있는 당신의 얼굴은 참으로 이쁩니다. 당신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며, 사랑받고 있나요? 아니면 여전히 외롭나요?


상담일지에 당신은 본인의 성격을 쾌활하며, 운동을 좋아한다고 적었습니다.

선도 쾌활하며 운동을 좋아합니다. 운동신경이 워낙 뛰어나서 최근엔 태권도 학원에 보냅니다. 발차기하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릅니다. 운동신경은 뛰어난데 아이러니하게도 유연성은 떨어져서 발차기가 허리춤에도 못 미칩니다. 그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우리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당신도 우리 딸이 보고 싶지요?


가끔 생각날 때면 울기도 하나요?

우리의 딸, 선은 아직 입양, 생모라는 단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만, 다름에 대해 아파합니다. 왜 엄마가 나를 낳지 않았냐고, 절규했습니다. 6살, 아이가 무얼 안다고 절규하듯이 소리쳤습니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안아주었습니다. 아이의 영혼은 당신을 기억합니다. 당신의 촉감을, 냄새를,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헤어짐은 서로의 영혼에 구멍을 뚫었을 것입니다. 그 아픔이 아픔으로 끝나지 않고 치유와 사랑으로 이어진다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견디고 있나요? 함께 슬픔을 견뎌 줄 친구가 있나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하는 시간을 가져야, 마음에 미련이 남지 않고 헤어진다고 합니다. 입양아동들에게는 생모와의 헤어짐에 대한 애도의 시간이 있다고 합니다. 대개는 초등학교 입학전후로 짧게는 몇달, 길게는 몇년까지도 갖습니다. 마음 안의 슬픔을 다 흘려보내야 됩니다. 선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겁쟁이라 시작도 않은 애도의 시간동안 아이가 마음이 많이 아플까봐 걱정이 되고 속상합니다.

부탁할 것이 있습니다. 제발 죄책감 갖지 말아 주세요. 행복 해주세요. 딸이 아파하는 것은 당신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헤어진 상처가 할퀴고 간 자국때문입니다. 당신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고마워합니다. 그리워합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이 낳아준 덕에 귀한 생명을 잃지 않았습니다.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한 여성은 대부분 아이를 지웁니다. 당신은 버리지 않고 지켰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포기할 결심으로 호적에 올려 입양을 보냈습니다. 그런 희생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만약 미혼모라 해도 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용감하고 멋진 사람입니다. 선에게 ‘너를 낳아준 사람은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엄마’라고 말해줍니다. 쓸데없는 죄책감으로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마세요.


당신이 행복해지면 우리 딸도 행복해집니다. 둘은 영혼으로 이어졌으니까요. 그 사실마저 질투하는 그릇이 작은 엄마이지만 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딸의 존재를 부정하는 일이라 하지 않으렵니다.


언젠가 선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사실 저는 두렵습니다. 사랑이 떠나갈까 봐 겁이 납니다. 당신과 다르게 저는 겁쟁이입니다. 선이 하고 싶어 한다면 허락해야겠지만 생각만으로도 두려운 일입니다. 선을 잃을까 봐 무섭습니다. 엄마가 왜 나를 낳지않았냐고 절규했던 선처럼 나도 내 뱃속으로 선을 낳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선을 잃은 당신에게 심지어 당신이 낳을 권리마저 뺏고 싶다는 이기적인 나를 용서하십시오. 솔직히 당신의 존재는 선과 나에게 참으로 거슬리고 아픈 존재입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얽혀 있는 사이로 만났을까요? 안쓰럽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하며, 보고 싶으며,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라는 그런 사이로요.


당신과 생부 그리고 당신의 부모, 생부의 부모, 조상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은 우리에게 새로 생긴 가족입니다. 서로를 볼 수 없는 관계지만 기도안에서, 영혼 안에서 만나는 가족입니다.


이 편지는 붙일 수 없지만 꼭 쓰고 싶었습니다. 당신은 이 편지를 읽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냥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바람이 당신에게 속삭여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