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설득

가족의 쓸모

by 미르


스스로는 입양할 결심이 섰지만, 남편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나와 달리 남편은 큰 결심이 필요한 사람이다.

결혼 전, 남편은 본인과 꼭 결혼해야 한다며 세뇌를 시키다시피 매일 나에게 말했다. 그래서 막상 허락했더니 그는 숨어 버렸다. 며칠간 연락 두절이었다.


뭐지? 황당하기도 하고 이렇게 무책임하다니 실망스럽기까지 했다.

그와 결혼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며칠 만에 나타난 남편은 책임이라는 무게가 두려워서라 했다.


결혼 후 임신했다고 남편에게 말하자, 환희의 표정과 축복의 말 대신 ‘이제 어쩌지?’란 두려움의 표정을 지었다.


살면서 느끼게 되었는데 그는 책임질 결심을 할 때 시간이 필요했고, 결심 이후에는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오히려 책임질 상황을 남들보다 신중하게 접근했다. 그래서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는 것도 쉽지 않다.

‘제대로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맞다’라는 지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남편이기에 설득의 장벽은 높고도 높았다.


우리 입양하자!


처음 남편의 반응은 본인 귀를 의심하는 듯했다. 황당해하며 무슨 말인지를 재차 확인했다.


“왜?”

“좋은 일이니까.”


말끝을 흐렸다. 나도 안다. 말이 안 된다. 이런 이유는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카드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자식이 없니? 부자야? 거기다 셋째 생길까 무서워 나를 정관수술까지 시켰잖아?”

...........


.......

........


할 말이 없었다. 좀 더 계획적이고 논리적이며 남편을 설득할 만한 그런 접근이 필요하다.


그게 뭘까?


젠장, 나는 이런 머리가 없다. 상대방의 수를 읽고 이길 계획을 짜는 게임은 아예 못한다. 늘 진다.

그래서 게임은 근처도 안 간다. 설득도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신은 나에게 그런 머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거짓말이라도 하면 얼굴이 발개져서 술술 분다. 전략 전술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쪽수로라도 이겨야 한다. 그래서 아이들을 먼저 공략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아이들에게 입양 관련 다큐멘터리와 자료들을 조금씩 보여주었다.

아이들은 새로운 이야기에 놀라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마음 아파했다. 스멀스멀 세뇌시켰다.

헤헤. 슬슬 신호가 왔다. 내가 입양의 ‘입’자를 꺼내기도 전에 아이들이 먼저,


“엄마 우리도 입양하면 안 돼? 동생 있으면 좋겠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낚아챘다.


“그래? 그럴까?”


아이들은 완전한 아군이 되었다. 3:1. 든든했다. 아이들은 내가 시키기도 전에


“아빠! 우리 입양하자. 동생 생기면 좋겠어.”


처음 남편의 반응은 ‘치사하군. 아이들로 공략한다 이거지.’의 눈빛을 나에게 쏘았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갑자기 자신을 제외한 온 가족이 뜬금없이 입양 노래를 불러대니 남편은 불편했다.


“그만 좀 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입양이 장난이야?”


몇 달간 그런 상황이 이어졌다. 우리는 언성을 높이진 않았지만 서로의 눈치를 보며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부부싸움은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설사 하더라도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 적은 거의 처음이다. 남편은 대화를 피했다.

그는 사춘기 아들이 된 것처럼, 문을 닫고 ‘나를 제발 내버려 둬!’라 소리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남편의 마음이 움직일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휴~ 내 욕심만 부릴 순 없지’ 이제는 포기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일은 늘 뜻밖의 일에서 풀리는 법이다.


“오늘 있잖아, 신기한 일이 있었어. 바꾸기 힘든 일정이 있었다. 하늘의 계획이시라면 이 일정을 변경해주실래요?, 라고 기도했더니

너무나 쉽게 그 일정이 변경됐어. 하늘의 계획이 하시고자 하시면 그렇게 되더라고. 너무 신기하고 이상한 체험이었어.”


저녁 식사를 하며 나에게 일어난 일을 말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남편이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참을 고개를 떨군 채 바닥을 바라보았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렀다.

몇 분간 숨 막히는 고요가 폭풍처럼 지나갔다.


“알았어.”

“뭐가?”

“젠장, 알았다고!”

????

“하시고자 하시면 할 수밖에 없다며! 나 빼고 모든 가족이 원하는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야?”


그는 입양을 말하는 것이었다. 남편은 어떤 결정을 내릴 때 신앙의 잣대를 가지고 결정하는 편이 아니다.

그에게 신앙은 자판기처럼 가끔 어려울 때만 필요한 부수적인 일이다. 놀라웠다. 더구나 내가 포기하려고 하는 시점에 마음을 바꿨다.

“정말이다! 후회 안 하지?”


잔인한 나는 확실하게 도장을 받았다.

또한 남편의 마음이 시간이 흐르면 변할까 싶어 바로 다음 날, 입양기관에 전화하고 방문 날짜를 잡았다.

부부 중 한 명의 확실한 의지와 노력이 있으면 이루어지는 것일까?

아니면 이 일도 하늘이 하시고자 하시면 결국 이루어지는 일이었을까?


강아지 키우는 일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는 걸 보면 의지가 아니라 운명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