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후회해도 늦었어

가족의 쓸모

by 미르


“여기 서류 작성해 주세요.”


나 같은 사람은 현실의 냉엄한 벽을 보고서야 ‘아 이건 미처 생각지 못했는데’라고 그제야 생각한다.

입양의 이상적인 부분만을 생각하며 막연히 ‘할 수 있지 뭐!’라고 여겼다.

막상 서류가 내 앞에 놓이니 불안한 생각들이 그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담당 직원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족이 함께 오셔서 상담 나누니 좋네요. 마음의 결정은 하신 것 같으니 간단한 서류 작성하고 가시죠.”

그때부터였다. 어디선가 불안하고 장엄한 배경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정말 어쩌려고 그래?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잖아.

거기다 네 자식이 아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너는 아무것도 모르잖아’라고 속삭였다.

손이 떨렸다. 내가 떨고 있는 것을 남편과 직원에게 보이지 않으려 두 손을 맞잡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남편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서류를 바라보는 나를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질이 더러운 얘가 오면 어쩌지?

이제야 겨우 아이들로부터 자유로운 시간이라는 것도 갖게 되었는데.

나는 육아에만 옭아 매여 죽어가는 건 아닐까?

드라마처럼 생모가 나타나서 난리부르스 치며

“우리 아이를 돌려주든지 돈을 주든지 해!” 이러면 어쩌지?

얘를 다 키워놨는데 “이 집을 떠나겠습니다”라며 떠나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맥락 없이 흘러갔다. 불안한 생각들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잠깐 물 좀 마시고 오겠습니다.”


입양은 무슨 입양이냐고, 거부하던 남편을 끌고 입양기관까지 왔는데, 오히려 남편은 평온했고 나는 달달달 떨고 있었다. 무슨 조화인지.

나도 내가 이해 안 갈 때가 많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나 같은 사람이 입양한다고? 내 자식들도 제대로 건사하지 못해 얼굴을 붉히며 싸울 때가 다반사다.

이런 내가 의로운 척하며 한 생명을 데려왔다가 오히려 망치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다.

지금이라도 그만둬야 해!!

도망가자!

정수기의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남편한테 나가자고 한다면 황당해할 것이다. 어렵게, 어렵게 남편을 설득해서 이 자리까지 왔다.

벌컥벌컥.

불안한 숨소리를 들키지 않도록 노력했다. 일부러 두 눈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서류에 인적 사항 등을 적어 내려갔다.

나도 몰라. 내가 언제는 알았나? 예전에는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세우지 않는다. 내 뜻대로 계획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다.. 어차피 순리대로 흘러갔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 서류를 쓰는 것도 이유가 있겠지.

되면 되는 거고 안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 가보자!!!

아..... 그래도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


도대체 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