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여름 Sep 05. 2020

우리 사이에, 부부 사이에.

오래도록 함께 할 사이의 예의.



시댁 여행을 가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분주했다. 먹을 것은 우리가 준비해 가기로 한터라 아침에 챙겨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나는 부지런히 움직여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입혔고, 남편은 아이스박스에 짐을 꼼꼼히 챙겼다. 그리고 차로 착착 짐을 날랐다. 우리는 분주했지만 기분 좋게 농담을 하고, 오늘도 비가 온다며 망했다는 앓는 소리에도 함께 웃었다. 시댁 여행이든 뭐든 '여행'이라는 것은 사람을 그렇게 소리 내 웃게 하는 힘이 있다.
합천을 가는 길에 김해에 들러 어머님을 우리 차로 모시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서두른다고 해도 언제나 약속시간이 빠듯해서야 준비가 끝난다. 얼른 조수석으로 올라타 벨트를 매며 말했다.


"어머니께 출발한다고 연락드렸어요?"
"아니, 누나한테 말했는데 아직 엄마한테 말 안 했네"
나는 웃으며 말했다.
 "형님한테 말하고 엄마한텐 왜 말 안 해. 엄마한테 말해야지.”

그러자 갑자기 남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짜증이 다분히 섞인 불편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이제 연락해야지."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내가 연락할까?"
 "어.”

어머니께 메시지로 출발을 알린 후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 데 기분이 나빴다. 남편의 짜증 난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자니, 감정의 덩어리가 뾰족해지기 시작한다. 상대방을 찌를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내가 어머니 생신이라고 미역국도 끓여가는데, 지금 시댁 여행 가는 건데, 내 기분을 맞춰주지 못할 망정 도대체 왜 나한테 짜증을 내.'  즐겁게 하던 일에 생색을 내고 싶어 진다.

시간은 계속 가고, 차는 빠르게 달리고. 어머님은 곧 타실 텐데, 분위기가 영 좋지 않다.

남편이 무언갈 물어왔다. 건성으로 모르겠다고 답했다. 사실 어떤 질문이었는지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다. 한참을 달리다 남편이 이번엔 음악을 듣자고 했다. 나는 "음악들을 기분이 아닌데?"라고 답하고 남편을 흘겨보았다. 남편이 웃으며 나를 살짝 쓰다듬자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왜 나한테 짜증 내"라고 말하곤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울어버린 것이다. 찰랑거리던 서러움이, 서운함이, 원망이 쏟아져 버렸다. 남편은 미안해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 숙여 우는 나를 한 손으로 쓰다듬었다.


"왜 짜증 냈어. 나한테."

하고 묻자 모르겠다고 했다. 그냥 짜증이 났단다. 그리곤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한다. 이러니 싸울 수도 없다.

나는 남편에게 항상 이렇다. 조금만 섭섭해도 그 이상으로 서러웠고, 금세 감정이 곱절은 증폭되어 버린다. 늘 감정의 기복이 적고 한결같은 남편은, 기복이 많고 좋은 것도 슬픈 것도 숨기지 못하는 나와는 많이 다르다. 그래서일까, 남편이 내게 짜증을 낸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 되어버렸고, 평소에도 조금만 서운하게 하면 눈물부터 났다. 나도 가끔은 남편의 물음에 투덜대기도 하면서, 남편의 그런 반응을 참을 수 없어하는 내 마음이 참으로 이기적인 것도 같다.

한결같은 사람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나처럼 뒤죽박죽인 사람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생각한 때가 많다. 그럼에도 때때로 앞뒤 없이 순식간에 뾰족해지는 감정의 덩어리는 상대방을 찌르기도 하지만 상대방을 찌르는 그 순간 나도 함께 찔리곤 했다. 상대방만 아프게 하는 줄 알았는데 실은 내가 더 아픈 날도 많았다. 누군갈 다치게 하려면 나도 다칠 각오가 있어야 한다. 나도 다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나를 다치게,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면 나와 마주한 이 사람 또한 아프게 해서는 다치게 해서는 안된 다는 뜻 이리라. 부부라고 해서 가깝다고 해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부부 이기에 가족 이기에 가까운 사람이기에 더욱 섬세하게 배려하고 나의 감정을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것은 오래도록 함께 할 사이에 대한 예의이다.


우리가 가장 소중한 자리에 서로를 두길 간절히 소망한다. 언제나 서로의 기쁨의 자리에 놓이기를 희망한다. 애착 인형을 던지던 아이에게 “소중하게 대해. 소중하게 대한다는 건 네가 화나고 짜증 날 때도 다정하게 대하는 거야. 화가 났다고 함부로 하는 건 소중한 게 아니야”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아이에게 그리 가르치듯이 우리가 우리에게 서로가 서로를 화가 나고 짜증이 날 때에도 소중함을 잃지 않고 다정하게 대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도, 그대도. 우리도.

가장 좋은 것을 상대에게 주려할 때, 그로 인해 결국 내가 가장 좋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을 담그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