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여름 Feb 08. 2021

사랑을 담그자

사랑을 모으고 담그고 나눠

결혼생활을 하면서 배운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사랑은 저절로 시작되지만,
사랑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을 자라게 하고 지켜내고 굳건히 하기에는 얼마만큼의 영양분이 필요하다. 식물을 길러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조그만 신호를 놓치면 잠시 뒷전으로 제쳐두면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돌아봤을 때엔 이미 잎을 떨구고 바짝 말라있는 여느 식물들처럼 사랑도 우리의 관심과 시선 그리고 마음의 한가운데에 머물러야 한다. 매일이 아니어도 때때로 잊지 않고 찾아주어야 잊지 않고 돌아보아야만 그 자리에서 싱그럽게 꽃을 피워주는 것이 바로 사랑이고 식물일 것이다.


어쩌면 식물뿐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것이 그러하리라. 살아있는 것들은 그 무엇이든 애정과 관심이 필요하고 고로 사랑도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은 것이리라. 관심에서 제쳐두었을 때 아차 하는 순간에 바짝 말라버리는 것이 식물이라면 애정과 사랑을 쏟으면 쏟을수록 더 예쁘게 더욱 싱그럽게 성장해주어 돌본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설레게 해 주는 것이 식물이기도 한 것처럼 사랑 또한 우리의 마음을 떼어주고 우리의 시선을 묶어두고 우리의 손길 가까이에 두는 것만으로도 오늘보다 내일 더 내일보다 그다음 날이 더욱 달콤해지는 것이 사랑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랑이 살아있다는 것을 때때로 느낀다. 결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한 집에 살아가면서 사랑의 형태와 모양이 시간에 따라 그리고 우리의 삶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 모양과 기운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때로는 쪼그라들었다가 또 때로는 한없이 부풀었다가 때로는 싱그럽고 파릇파릇한 것 같다가 때로는 푸익은 묵은지처럼 깊고 야들야들하기도 하다. 저마다의 맛이 있겠지만 내 삶에 오래 함께 하는 이 사랑이 늘 똑같은 맛일 수는 없다는 것. 그리고 늘 같은 색과 형태와 질감일 수 없다는 것이 사랑의 재미이자 사랑의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나는 늘 파릇파릇한 사랑이고 싶었다. 늘 새콤달콤하고 언제나 반짝반짝한 사랑만을 누리고 싶었다. 아이가 생기고 나면 육아 동지가 된다는데 나는 그 단어가 그리도 싫었다. 동지 같은 건 싫었다.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친구 같다는데 그것도 싫었다. 언제고 어느 때고 여자와 남자이고 싶었고 우정 같은 사랑이 아닌 사랑인 사랑이고 싶었다. 우리의 사랑이 처음 만나 사랑을 깨달은 순간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만큼의 질량으로 그때의 무게와 그 말랑말랑하고 찌릿찌릿하고 반짝반짝하던 그 형상을 유지해야만이 사랑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때로는 은은하게 빛나는 것도 사랑이고, 때로는 다디달기만 한 것도 사랑이고, 또 때로는 고요한 것도 쓴 것도 잔잔한 것도 단단한 것도 다 사랑일 수 있다. 나무의 열매가 모두 사과나 귤 같지는 않은 것처럼, 때로는 밤 같기도 때로는 대추 같기도 하며 또 솔방울도 나무의 열매인 것처럼 우리의 삶과 관계가 변화하면서 자연스레 사랑의 빛깔과 열매도 그 맛과 영양도 변화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면 괴로울 뿐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자연스레 모양과 색을 바꾸며 이어오던 사랑이 더 이상 사랑이 아닌 때도 오고야 말 것이다. 사랑은 살아있기에 사랑은 언제든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랑이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때, 나로부터 이 사랑이 죽거나 상대방으로부터 이 사랑이 죽음을 맞이하는 때가 분명 올지도 모른다. 그때에도 우리는 결정할 수 있다. 사랑이 죽었으니 우리를 묶어주던 단단한 고리가 끊어졌으니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집시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 비록 우리를 이어주던 사랑의 고리는 끊어지고야 말았지만 우리에게는 추억의 고리 삶의 고리 친밀의 고리 위로의 고리들이 있으니 여전히 함께 하고 싶어요.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그 세월이 만들어 낸 겹겹의 단단한 고리들이 우리를 붙들어 줄 수도 있으리라. 그때에 우리는 꼭 사랑의 고리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에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무엇이든 선택하게 되겠으나 지금은 우리의 사랑을 잘 다듬어 보기로 하자. 오늘 우리의 사랑의 색과 기운이 나는 마음에 든다. 처음 만난 그때처럼 처음 우리가 함께 살 던 그때 그 색은 아닐지라도 살짝 유연해지고 조금 빈틈이 있는 그러면서도 친밀함의 농도는 더 높아만가고 가끔 설렘의 기운과 애틋한 빛깔이 마음에 든다. 


마음을 담근다. 정성을 다해 씻고 벗기고 자르고 무치고 절인다.

사랑을 담근다. 사랑의 마음만을 모아 마음을 담그든 사랑도 담근다. 

잘 담근 사랑, 설익어 풋풋한 사랑도 푹 익어 좋은 사랑도 나눠야 제맛일 테지.


나의 로맨스는 그리고 우리의 로맨스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사랑은 아직 살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짐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 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