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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Dec 08. 2020

시어머니의 수술실 앞에서

연민


황반변성이라는 병명으로 수술실로 들어가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았다. 어머님은 담담한 듯 불안해 보였다. 나는 어머니의 얼굴 가까이로 다가가 “잘하고 오세요 어머니”라고 눈을 맞추며 말을 건넸다. 어머니는 눈짓으로 알았다고 말했다. 그리 큰 수술도 아니라고 했는데 그만 눈가가 뜨거워졌다.

나도 인생에서 딱 한번 수술을 받기 위해 침상에 누운 채로 수술실에 들어 가 본 적이 있다. 병실에서부터 수술실까지 정신이 말짱한 채로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움직이는 침대에 누윈채 병원의 천장을 바라보며 그렇게 수술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을 이동하고 수술실로 가는 복도를 지나는 그 짧은 순간에 하얗고 밝은 천장을 보고 누워있노라면 오만가지의 생각들이 나를 스치고 간다. 그때의 나는 무서웠고 두려웠고 나약했다. 마치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좌절했다. 별것 아니라고 다독이며 겨우 겨우 진정시켜둔 마음에도 눈물이 꾸역꾸역 밀고 올라왔다. 수술실 앞에서 남편의 얼굴을 마주하자 결국 눈물을 흐리고 말았다. 남편은 괜찮다고 나를 다독였지만 내가 수술실에 들어가자 나의 친정집에 전화를 했었단다. 그도 내심 불안했던 것이다. 수술실로 들어가야만 하는 사람도 수술실 앞을 지켜야만 하는 사람도 모두 그렇게 불안을 꼭 안는다.   

침대 위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기를 기다리시는 어머님을 보자 나의 그때가 스쳤다. 어머님의 나약해 보이는 말간 얼굴과 긴장된 눈빛과 꼭 쥔 손을 보아서 보고야 말아서 눈가가 뜨거워졌는지도 모른다. 바퀴 달린 침상에 누워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수술실에 들어가는 모습 속에서 인간의 한없이 나약한 단편을 엿본다. 나의 시어머니가 아닌, 남편의 엄마가 아닌 그저 한 인간, 그리고 한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고 늙어진다. 그리고 늙어진 육신은 병을 얻기 마련이다. 그 늙어짐 보다 병듦이, 병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리로 하여금 늙어짐을 혐오하게 만들곤 한다.


나이가 들어가며 어느 순간부터는 병원문턱을 수도 없이 밟고, 수술실을 들락거려야 한다는 것 그렇게 수술실을 들락거리면서 내가 늙어가고 있음을 선연히 깨닫게 되는 것 그래서 나의 몸이 점점 쇠하여지고 곤하다는 것을 느끼며 문득문득 나의 마지막을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그럴 수밖에 없게 되는 것. 어머님도 그러셨을까. 그 수술실을 들어서며 또는 나서며 그런 생각들을 하셨을까. 그런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또다시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인간의 늙어짐이 이 유한한 생명이. 신앞에서 이토록 작고 작음이. 한없는 나약함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수술을 앞두고 너무 신경을 써서 어깨 쪽에 담이 왔다는 어머니, 아이 낳는 것보다 더 아프냐며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는 간호사에게 웃으며 물으시던 어머니, 잘할 수 있을 거야 라고 말하며 수술복으로 갈아입으시던 어머니, 아이를 데리고 병실에 온 내게 내내 미안하다고 하시던 어머니. 우리 엄마 같아서가 아니라 그저 여자로, 한 인간으로 어머니에게 연민을 느낀다. 


어머니께서는 또 한 번의 수술을 남겨둔 채 이미 수술한 한쪽 눈의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병원을 다니신다. 아직 남겨진 또 한 번의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갈 그때에는 눈 맞춤이 아닌 꼭 손을 잡아드려야지. 그리고 똑같이 말해야지. "잘하고 오세요 어머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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