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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 Oct 13. 2020

나이듬의 낭만

근사한 할머니가 될 거야.


나이듬. 나이 든다는 것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자연스러운 생의 방향이다. 누구라도 수태되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누구라도 흙으로 돌아가지 않을 사람은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생은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그 생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선택하고 행하며 생을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겹겹이 채워나간다. 그 생의 겹겹은 아름다운 꽃잎처럼 모여 나의 한 생을 포갠다.


10대에는 대부분 빨리 성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던데 나는 그렇지가 않았다. 학교를 벗어나 성인이 되는 것이 번번이 두려웠다. 학교를 다니며 성적은 엉망이었는데도 친구가 좋아서 등교를 하는 일이 즐거웠다. 시답잖은 일에 깔깔거리고 매점 갈 시간을 체크하고, 학생인 본분인 '공부'는 등한시하면서 열심히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참 착하게도 놀았다. 20살이 되는 게 싫었다. 언제까지고 교복을 입고 언제까지고 교정을 들어서고 싶었다. 그다지 불량학생도 모범생도 아닌 채의 나를 충분히 사랑했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는 일 그렇게 고른 책을 수업시간에 야금야금 읽어 내려가던 일. 온종일 친구에게 편지를 쓰거나 연예인을 쫓아다니거나 친구와 함께 음악을 듣고 노래를 부르던 그 시간들을 여전히 기억하고 사랑한다.


 멋을 부리는데 온 에너지를 다 쏟던 20대에도 여전히 느슨한 삶을 지향했다. 전공에 매진하기보다는 학교 도서관을 서성이며 소설을 읽고, 수업을 빼고 영화를 보았다. 그러면서 10대의 시간을 그리워하곤 했다.


직장인이 되어서야 진정한 ‘빡센 삶’은 시작되었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니 한 살 한 살 나이 먹어가는 일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왜 벌써 25살인 거야!!’라고 외치며 12달을 채우면 자연스레 받아 드는 한 살 한 살에 매년 처음인 듯 놀라고 괴로워하며 매년 똑같이 슬퍼했다.


20대 후반에는 앞자리에 ‘3’ 자를 달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아연했다. 30이라는 숫자가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것처럼. 그렇게 달라진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기라도 한 것처럼 굴었다. 20살이 되었을 때처럼 30살이 되어도 여전히 철들지 않은 채로 미성숙한 인간인 채로 거기에 있을 줄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 스스로를 창피하게 할 줄은 말이다.


그렇게 시간을 붙잡고 싶어 하던, 나이 드는 것을 괴로워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나이 드는 것이 싫지 않았다. 언제인가부터 ‘오늘의 나’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종종 과거의 추억 섞인 낯 뜨거운 에피소드가 세세하게 떠오르는 날이면 창피함에 우주 저편으로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미팅에 나가서 아무도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표정관리도 못하고 울그락불그락했던 나를 삭제해버리고 싶다거나 학교 축제무대에서 친구와 노래를 부르던 중 뛰어내려 온 일이라든지 첫사랑과 헤어질 때 조금 더 멋지게 헤어질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 그중에서도 고등학교 때 발표하기 싫다고 결석을 선택한 건 정말 최악이었다.


이런저런 부끄러운 행동들이 촘촘히 되살아 날 때면 하루치 더 성숙한 내가 좋았다. 겨자씨 한 알만큼이라도 어린아이의 한 보만큼이라도 더 성숙해진 내가 좋다. 그래서 나는 이제 한 살 더 먹은 나이를 부끄러워하기보단 과거의 미성숙했던 나를 부끄러워한다. 그리곤 오늘의 내가 과거의 내가 될 그때에 부끄러워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이가 들며 나는 더욱 나다워진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나를 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헷갈려하지 않는 확고하고 정확한 취향이 존재한다.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것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선별할 줄 알고, 내게 즐거운 것과 내가 절대적으로 싫어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안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내가 만들어가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를 안다. 많은 사람과 어울리지 않아도 나를 소중히 대해주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길 줄 안다. 나를 함부로 하는 사람을 거절할 줄도 알고, 나누는 것의 행복을 선명히 느끼며, 도움받고 도움 줄 줄도 안다. 듣기 싫은 말을 웃어넘길 줄도 알지만, 불쾌한 행동에 불쾌하다 말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나 스스로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성숙’이라는 단어를 떠올려 본다. 나는 ‘성장’이라는 단어를 부담스러워하지만 ‘성숙’이라는 단어는 좋아한다.  많이 자랐네, 그때에 비하면 꾀나 단단해졌네, 그래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네.라고 느껴질 때면 그렇게 변해 온 내가 사뭇 대견스럽고 다행스럽다. 적어도 그때만큼 여전히 부끄러울 그 실수들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랬다.

어쩌면 이 순간이 과거가 될 그날 엔 오늘도 또 다른 부끄러울 실수들을 저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또 다른 낯 뜨거운 결정들을 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보다 조금은 더 좋다. 수많았던 부끄러운 시간들을 지나 미성숙한 채로 사랑하던 어설픈 사랑들도 지나고 수치스러울 결정들도 지난다. 그 시간들을 밑거름 삼아 하루치의 성숙함을 쌓아 올려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하루치의 성숙, 딱 하루치의 어른됨을 쌓아 근사하게 나이 든 할머니가 되고 싶다.


20대의 어느 날 나의 메모장에는 이런 글이 메모되어 있었다.


모든 음악을 사랑하고,

영화 한 편의 감동을 알고,

미술관을 사랑하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누군가 나에게 꿈이 무어냐고 물으면 “꿈은 없어요.”라고 하거나 “별일 없이 사는 거요.”라고 말하곤 한다. 내가 ‘성장’이라는 단어를 부담스러워하는 것처럼 ‘꿈’이라는 단어 또한 뭔가 낯간지럽고 불편하다. 그렇지만 나는 ‘로망’이라는 단어 즉 ‘낭만’이라는 단어를 유독 좋아한다. 내겐 꿈은 없지만 낭만은 있다. 내게는 근사하게 나이 들고픈 근사한 할머니가 되어있고픈 낭만이 있다. 그건 그저 꿈이라기보다는 삶의 기조 같은 것이다.


물건의 낡아짐도 어쩌면 인간의 나이듬과 비슷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보면 지구 상의 모든 것이 나이 들어가고 늙어가거나 또는 낡아진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방향이라면, 그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순리라는 것이라면 조금이라도 근사하게 나이 들고 싶다. 성숙한 사람으로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고 영화 한 편에 감동하고 미술관을 사랑하는 근사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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