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빛나는 시절.
아이를 낳고 어느 날, 친정엄마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예전에 네 동생 어렸을 때, 한 다섯 살 여섯 살 때쯤인 것 같아. 우리 송정 살 때 있잖아. 주일날 교회 갔다가 장을 보고 집에 가는데 시장에 들렀다가 와서 양손에 장본 걸 들고 있었어. 근데 그날따라 자꾸 안아 달라고 하는 거야. 근데 어떻게 안아줘. 장본 거 들고 가는 것도 무거워 죽겠는데. 안된다고 지금 엄마가 짐이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안아줘 걸어가자 걸어가자 하는데 계속 우는 거야. 걔가 떼를 쓰고 잘 안 그러거든. 그런데 그날따라 계속 안아달래. 그래도 안된다고 못 안아준다고 걸어가자 하니까 집에 도착할 때까지 울면서 따라오는 거야. 아마도 잠이 많이 왔던 것 같애. 근데 결국 못 안아주고 집에 걸어서 왔거든. 그게 안 잊혀져. 아직도 기억이 난다니까. 그게 너무 미안해서 그런지, 잘 안 그러는 앤 데, 못 안아 준 게 미안해서 마음에 남았던지 안 잊혀."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도 참 별걸 다 기억하네. 엄마도 참 별걸 다 미안해하네 했었다.
엄마는 내가 아이를 임신하고 난 후부터 부쩍 옛날이야기를 많이 한다. 정확히는 엄마가 임신을 하고 육아를 하던 그때의 이야기를 한다. 임신 중에 아빠가 사 온 딸기를 씻다가 혼자 다 먹어 버린 이야기, 짜장면이 먹고 싶었는데 아빠가 함께 가주지 않아서 먹지 못했던 이야기, 엄마가 일을 시작해 나를 외할머니댁에 맡겨야 했던 이야기, 내가 친척 오빠들과 자주 놀아서 서서 소변을 봐서 속상했던 이야기. 엄마의 그 시절의 이야기들. 어쩌면 엄마의 가장 예뻤을, 가장 반짝이던 시절의 이야기. 엄마의 23살, 호시절.
나는 그 시절의 엄마와 함께 있었지만 그 시절의 엄마를 알지 못한다. 그 시절의 나는 그저 나의 시간을 충실히 살아내느라 엄마의 시간을 알지 못한다. 이제야, 서른일곱에 느지막이 딸을 하나 낳아보고 나서야 그 시절의 엄마를 만난다. 이제야 엄마의 시절을 마주 본다. 내 품에서 세 번의 아이를 잃고 어렵게 어렵게 딸을 품에 안고서야 내가 엄마의 보물이었음을 아프게도 깨닫는다. 그 한번 안아주지 못한 게 무어라고 그리도 흘려보내지 못하고 붙들어 두었을까. 정말 별걸 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 보니, 엄마라는 사람은 참 별걸 다 기억하는 사람, 참 별걸 다 미안해하는 사람이기도 하더라.
한 달 전,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서른여덞 살의 우리가 친구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게 되다니, 서른여덞 살의 친구가 아버지를 잃다니. 처음으로 장례식장에서 술을 마셔보았다. 장례식장에서 마시는 술은 참 썼다. 친구를 위로할 말을 고르고 골라도 찾지 못해서, 아무리 좋은 위로의 말을 생각해 보아도 그런 건 어디에도 없어서, 그저 친구를 안아주었다. 친구의 등을 오래도록 쓸어주었다. 친구는 울었고 나도 따라 울었다. 그토록 슬픈 자리에서 울어보고 나서야, 그제야 아빠를 마주한다. 아빠의 삶을 마주 본다.
가진 것 없이 맨몸으로 자수성가를 꿈꾸던 아빠는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었다.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가난하게 자라온 아빠는 우리에게 좋은 옷 좋은 신발은 사주지 못해도 용돈은 늘 넉넉히 주려고 애썼다. 친구가 떡볶이 사 먹을 때 보고 있지 말라고 꼭 같이 사 먹으라고 했다. 남이 먹을 때 못 먹고 구경하는 것만큼 서러운 게 없다고 했다. 아빠의 어린날, 그리고 젊은 날의 아픔이 스민 말이었다. 부모 없이 한 세상을 헤쳐 나온 아빠는 손수 딸의 약봉지를 뜯어주고, 아침을 챙겨 먹이고, 자동차 정기 점검일이 되면 차를 바꿔 타고 딸을 대신 해 자동차 점검을 간다. 그렇게 자식을 천금같이 여긴다. 이제 다 늙어 어깨가 처지고 등이 굽어가는 아빠를 본다. 손녀가 보고 싶다며 영상통화를 하고, 손녀 앞에서는 나사 빠진 할아버지가 돼버리고 마는 아빠를 보며 괜스레 슬픈 마음이 든 것은 장례식에 다녀온 후부터였다.
문득, 생각했다. 우리가 생애 꼭 이루어야 할 과업이 있다면 어쩌면 그건 부모님의 사랑의 무게를 깨닫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깨닫는 일이다. 많이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우리는 종종 많이 늦는다.
서투른 손길로 아이를 길러냈을 23살의 앳되고 앳된 엄마의 고왔던 그 시절, 매일 고단한 뱃일에도 잠이든 아이의 얼굴을 거친 손으로 쓰다듬던 아빠의 호기롭던 그 시절. 지금의 나와 같은 시절을 지나 온 엄마와 아빠를 마주 보며 이제 겨우 그 마음에 다가서는 한걸음을 뗀다. 내 아이의 걸음마만큼이나 한걸음 한걸음 더디기만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본다.
너무나도 눈부신 엄마 아빠의 그 빛나는 계절과 그 계절을 이어받아 지나고 있는 오늘의 내가 마주 본다.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기껏 서른여덟이나 되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