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마음이 있다.
올 사람이 있어서 너무 귀찮으면서 올 사람이 있어서 너무 안심이 되는 마음이 있다.
아이와 전투적인 하루를 보내고, 저녁을 챙겨 먹이고 목욕까지 함께하고 나면 하루를 다 끝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의 하루 에너지를 탈탈 털어 딸딸 긁어 다 쓴 것 같은 기분도 든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앞으로 두 시간 뒤 퇴근할 남편과 나의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일이다. 그 순간 그런 마음이 든다. '아 귀찮아.' 하는 그런 마음. 주말 부부란 전생에 나라를 구해야 얻어지는 행운이라는 말이 있다던데 정말 그런 건가 싶은 그런 마음. 하지만 한편으로는 거의 정반대의 마음이 함께 산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도 기쁘기는커녕 지독히도 외롭다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올 누군가가 있다는 것, 내가 기다리면 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매일 이 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사무치는 감사이기도 하다. 귀찮은 마음으로 저녁밥을 짓다가도 현관문으로부터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자연스레 걸음을 옮겨 현관을 보고 마주 선다. 중문이 덜커덩하며 열리고 귀찮으면서도 안심이 되는 그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서면 "왔어요"하며 웃음 짓게 된다. 올 사람이 있어서 너무 귀찮으면서도 올 사람이 있어서 너무 안심이 되는 그런 마음이다.
혼자가 아니어서 너무도 괴로우면서도 혼자가 아니어서 너무 다행인 마음. 그런 마음이 있다.
아직 두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아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엄마로 아이와 한 몸으로 살면서 나는 혼자이고 싶은 날이 많아졌다. 아이와 함께이고 싶어 울던 날들은 안개처럼 뿌옇게 흩어지고 옅어지고 오롯이 한 인간으로 존재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다시 내면을 긁어 대더니 기어코 뚫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그저 나인체로 있고 싶은 날들이 많아졌고, 그런 일은 아이를 재우고 나서야 가능했는데 근 몇 달간 아이의 이앓이인지 성장통인지 모를 밤중 호출로 인해 간신히 유지하던 모든 균형은 깨지고 말았다. 남편이 돌아오면 나는 언제나 초췌한 모습이었고, 남편의 말에 "그럼 나는 언제 혼자 있을 수 있어?"라는 퉁명스러운 질문을 종종 하곤 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혼자'이자 '나'라고 수없이 되뇌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혼자가 아니어서 다행인 마음도 함께 있다. 남편이 늦게 오는 밤. 겁이 많은 나는 내 옆에 누워 잠이든 아이의 온기가 그리도 안심이 된다. 그 숨소리 만으로도 두려움이 사라진다. 막상 무슨 일이 닥친다고 가정한다면 아무 도움도 아무 힘도 없는 연약한 아이의 존재가 평화로운 밤에는 커다랗고 든든한 의지할 곳이 된다. 혹은 지독히도 슬픈 어느 날 아이와 마주 앉아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할 때면 '아, 네가 없었다면 오늘 같은 날 나는 이렇게 웃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맞부딪히며 이 또한 감사를 생각한다. 혼자가 아니어서 너무 괴로운데, 혼자이고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은 날들을 꾹꾹 참아내곤 하는데 그럼에도 혼자가 아니어서 너무 다행인 날들이 꾸역꾸역 그 틈틈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이상한 마음들이 여기에 있다. 살면서 이토록 이상할 수 없는 마음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며 끝없이 서로 부딪히고 깨지고 흩어지고 날리고 다시 내리며 주위를 부유한다. 미웠다가 좋았다가, 귀찮았다가 한없이 소중했다가, 괴로웠다가 다행이었다가, 울다가 웃다가. 내가 이상한 삶을 사는 것인지 다들 그렇게 이상하게 사는 것인지 이 이상함이 보편의 것인지 몰라 혼란스럽다.
요즈음, 주부의 일상과 엄마의 일상을 동시에 살아내느라 삶에 대한 깊은 생각도, 나에 대한 사유도,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상도 없이 그저 하루를 딱 하루치만 살아내고 있다. 이 고된 시간들도 그리워질 내 삶의 한 겹이며 언젠가는 손에 잡히지 않을 가치로운 날들임을 알기에 지나치게 열심히 하루치의 날을 채워간다. 늘 그게 문제다. 지나침. 그것이 이상한 마음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 알 수 없는 이상한 마음들의 끝이 언제나 감사이어서 다행이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