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도의 냉기와 깨달음
인슐린과 베이슨. 그리고 몇 달 전 인사성 좋은 에어로빅 회원에게 받은 손톱만 한 개별 포장 사탕 두 개를 흐린 와인색 마이크로 미니 크로스백에 넣었다. 3년 전 다이소에서 산 하얀 노르딕 분위기의 손가락 털실 장갑을 꼈다. 감귤 빈 박스 두 개를 집 앞의 박스 줍는 할머니의 캐리어에 담아 놓고, 10분을 걸어 빕스에 도착했다.
1층 큰 길가에 면한 양문이 달린 출입구는 폐쇄되어서, 뒤로 돌아가서 주차장 쪽의 똑같이 생긴 출입구로 들어갔다. 나무로 된 널찍한 계단을 올라가서 2층 로비에 대기손님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카운터에 다가가 예약사실을 알렸고, 직원으로부터 바로 입장할 수 있다는 말도 들었다. 카운터의 직원은 눈이 동그란 청년이었는데, 눈을 모니터 가까이 대고 예약 명단을 확인했다. 그래서, '나처럼 눈이 나쁘시군요'라며 대화를 걸었으나 직원은 눈만 동그랗게 뜨면서 대답하지 않고, 1인 손님을 어디에 앉혀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유리문이 달린 냉동 진열대에 간편 식품을 진열하던 자신의 상사에게 '202호로 안내할까요'라고 물었다. 상사의 나지막이 그러라는 대답에, 나를 뒤따르게 하고 앞서가더니, 햇빛도 안 드는 숨 막히는 밀실로 안내했다. 나는 이미 눈이 나쁘다고 언급한 걸 다행이라고 여기며, 어두운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으며 눈부신 창가도 피하고 싶다고 웃으며 얘기하자, 음식들이 놓인 홀 바로 옆 자리로 안내하려고 했다. 나는 늘 앉아왔던 창가와 홀의 사이에 있는 낮은 칸막이가 있는 소파 자리를 지목하며 나이팅게일이 노래를 부르듯 부드럽게 요구했고, 이에 직원은 어리둥절해하며 마지못해 자리를 정리해 주었다.
첫 입장은 아니라서 정갈한 음식을 처음 손대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12월 29일 지인의 터뜨리고 간 오물의 기억을 지우기에는 충분한 분위기였다. 나는 몇 주 동안 은둔하며 바나나, 감귤, 수제 그릭 요거트, 꿀, 너츠 등만 먹고 생존해 온 것 치고는 식욕이 생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어제부터 상실된 미각이 돌아오지 않았다. 어제는 그린비아가 도착해서 겨우 영양공급을 할 수 있었다. 간밤의 상징적인 꿈은 지난 고통을 정리해 줬고, 내 뇌는 바위에 생긴 조그만 균열 같은 희미한 틈 같은 공간이 생겼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싱크대 3번째 서랍을 열고 크린백 중간 사이즈 2개를 꺼내서 어제 새벽 배송된 감귤 2kg을 소분하고, 같이 배달된 플레인 요거트를 그릭 요거트 용기에 담아서 냉장고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10시 반 빕스 직원에게 말을 걸고 내가 앉고 싶은 좌석에서 밥을 먹게 수 있게 된 것이다. 3주 동안의 은둔 생활은 식당에서 정당한 귀여운 투쟁을 벌이고 작은 쟁취를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갖게 해 주었다.
이제는 내가 겪는 모든 일상을 차곡차곡 기록하며, 세상의 어딘가에서 혼자 고군분투하고 있을 동족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오늘 나는 우리가 서로 만나기를 희망하며 신호탄을 쏘아 올린다.
미각을 잃은 미뢰 하나하나가 자신들의 존재감을 가지고 동그랗게 부풀어 올랐다. 희미하게 비릿한 피맛이 나며, 빨래판 같은 마찰감을 느끼며, 입천장은 헐어서 입안은 화한 느낌이다. 그래도 펌프가 없어진 와플 반죽용기에서 국자로 반죽을 퍼올려 와플기에 떨어뜨리는데, 다른 때보다 된 느낌으로 동그랗게 퍼지지 않고 뚝하니 덩어리가 쏟아 올랐다. 옆의 3대의 커피머신 중 오른편 머신의 연한 아메리카노 버튼을 누르고, 그동안 티라미수와 설탕에 절인 붉은 열매로 장식한 하얀 생크림 케이크를 가볍고 하얀 접시에 올렸다. 단순한 기계음의 멜로디로 종료를 알리는 와플 기계에서 긴 핀셋같이 생긴 집게로 가을날 낙엽의 붉은 갈색처럼 동그랗게 익은 와플을 꺼내고 바닐라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얹었다. 그리고, 설탕에 절인 빨갛고 작은 열매와 검붉은 버찌를 올려서 자리로 돌아왔으나 입맛은 돌아오지 않아 기록만 하다 오게 되었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직원은 다가와 두 손을 앞에 가지런히 모으고 식사 종료 3분 전임을 알렸다
전철역을 통과해 큰 도로 반대편에 대기 중인 셔틀로 향하는 동안, 1월 초 0도의 냉기가 서린 공기를 머리카락과 얼굴의 피부로 느끼며, 정신까지 맑아졌다. 그러면서 내 지난 인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고, 인생이 합성함수의 적분값이라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