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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자

7화. 소나기 맞고 감기 걸리는 날


외할머니 예순 생신 기념으로 엄마가 오신 날이다. 몇 시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다 같이 기념사진을 찍을 시간이다. 엄마가 가실 시간도 머지않았다. 바윗덩이가 얹힌다. 어디에 서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자리를 찾지 못해 빙빙 겉도는 나를 보고 막내 외삼촌이 크게 소리쳐 말한다.

갈 곳 모르게 어색하고 어지러운 눈동자를 읽으신 것처럼 이리 와서 어서 할머니 앞에 서라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빨리 오라고. 삼촌의 한마디에 다른 외삼촌들과 이모들도 그제야 한 마디씩 하신다.


눈치 보느라 이리 가지도 저리 가지도 오도 가도 못하던 나는 그제야 얼굴에 화색이 돈다. 나도 외할머니 바로 앞에 서서 당당히 사진을 찍는다. 외할머니가 주인공인 생신 날이니 나도 어깨를 쭉- 펴고 서 본다. 아직도 오늘 엄마와 아저씨와 같이 온 꼬마아이 생각에 머릿속이 까맣고 가슴속이 어질어질하다. 그렇지만 외할머니 생신 사진을 망칠 수는 없다. 외할머니 예순 생일 사진 속에서 나도 싱긋 미소를 짓고 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려는 친척들도 있고 이모와 외삼촌들은 몇 시쯤 일어날지 서로 이야기한다. 집으로 언제 돌아갈지 그 시간에 대해 대화하는 어른들과의 자리가 늘 불편하다. 차라리 그 시간을 모르고 있다가 불현듯 닥치는 이별의 시간이 훨씬 나은 것 같다. 더 짧고 굵게 아프니 말이다. 갑자기 마주하는 헤어짐은 뒤통수로 날아든 야구공을 맞는 것처럼 늘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정신을 못 차리게 한다. 잠시 그렇게 기절한 듯 머엉하고 나면 어느새 멀어져 가는 엄마를 보는 게 그래도 더 쉽다. 계속 시계 보며 안절부절 마음을 졸이는 것보단 예고 없이 퍼붓는 소나기를 그냥 맞아버리고 온몸이 흠뻑 젖는 편이 더 낫다. 웬만한 소나기를 맞은들 감기처럼 며칠 앓다 다시 일어나면 그만일 테니까.


지금이 바로 잠시 그 자릴 떠나 있을 시간이다. 일어서서 가시는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고는 조용히 안방으로 들어간다. 오늘은 가장 친한 친구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랜다.

우리 둘이는 서로 다 엄마도 없는 아이들이면서 베개를 등에 올려 보자기로 단단히 묶고는 엄마놀이를 한다. 베개가 아기고 나랑 친구가 엄마다. 엄마 등이 얼마나 따뜻한지 제대로 업혀보지도 못해서 그 진정을 모르는 친구랑 나. 각각 둘이서 베개를 하나씩 등에 업고 마실 나온 아낙이 되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한다. 그러다 아기가 운다며 마치 등에 업은 베개가 진짜인 양 몸을 옆으로 살살 흔들고 어깨도 살랑살랑 달싹이며 재우는 흉내를 낸다.

엄마가 되면 아이를 등에 업어 재운다는 걸 아마도 티브이 연속극에서 본 모양이다. 아니면 우리 둘 다 할머니들의 너르면서도 따끈-하니 잠이 솔솔 오던 그 등에 업혀봐설까. 그 경험치가 베개로 엄마놀이 할 땐 효염이 제대로 발휘되는 것이다.


무엇으로든 이렇게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을 한 뒤에 엄마와의 이별을 맞는 게 그래도 덜 아프다. 엄마에게 다가가지도 못하고 몇 걸음 떨어진 곁에서 겉돌며 서성이다가 흐르는 시간에 가슴만 졸이느니 이것이 더 낫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엄마와의 이별이 괜찮다는 말이 절대 절대로 아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아무렇지 않은 적은 아홉 살 인생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다. 눈앞에서 멀리 떠나가고 사라지는 엄마를 보는 건, 감기 중에서도 정말 지독한 최고 독감에 걸리는 것이다. 열도 펄펄 나고 배도 싸아하니 아프고 먹은 걸 다아 토하기도 하면서 온몸에 식은땀도 찐하게 나는 아주 죽을 둥 살 둥 며칠을 끙끙 앓는 그런 병치례란 말이다.


엄마와 내가 몇 시간 보고 헤어졌다 또 한참 뒤에나 또 몇 시간 보고 헤어지고 그건 정말 아이 가슴에 대못을 뚝뚝 박아대는 것이다. 진탕 소나기를 맞은 날은 꼭 콜록콜록 기침이라도 하고 얕은 감기라도 걸리는 법이니까, 엄마를 눈앞에서 보내고 마음에 병나지 않을 아이는 이 세상에 절대 없다. 그리움은 원래 아주 아주 잘 또 아주 아주 자주 또 아주 아주 갑자기 사람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법이니까.


* 아이의 심리와 뇌 상태는 현재 '애착의 결핍''분리 불안'이 뒤섞인 매우 불안정한 과부하 상태입니다.


1. 심리적 상태: 반응성 애착 장애 및 예기 불안

상실감과 자기 비하: "엄마 없는 아이"라는 낙인을 스스로 찍어 위축되어 있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친구 앞에서만 당당함을 느끼는 것은 강한 열등감동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기 불안 (Anticipatory Anxiety): 행복한 순간에도 곧 닥칠 이별(모두 떠난 후의 고독)을 걱정하며 미칠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은 전형적인 불안 장애의 징후입니다.

양가감정: 엄마를 향한 그리움(천국)과 원망 또는 낯섦(지옥)이 공존하여 정서적 혼란이 극에 달해 있습니다.

2. 전두엽 및 뇌의 상태: 정서 조절의 과부하

전두엽 기능 저하: 10세 아동의 전두엽 발달은 감정을 조절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나 현재 강한 스트레스로 인해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안갯길'처럼 인지적 마비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편도체 하이재킹: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편도체'가 과활성화되어, 즐거운 생신 잔치라는 상황을 즐기지 못하고 '생존 모드'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코르티솔 수치 상승: 지속적인 심리적 압박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를 높여, 실제 몸이 아픈 것처럼 느끼거나 "감기에 걸릴 것 같은" 신체화 증상을 유발합니다.

아이에게는 지금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확신과 함께, 떠난 후에도 여전히 연결되어 있다는 정서적 안전장치가 절실합니다.


할머니 비 오는 날이 좋아요


비가 오는 날이면 친구들은 꼭 누군가가 데리러 오거나 예쁘고 멋들어진 우산을 쓰고 노란 우비에 노란 장화까지 신고 걸어가곤 한다. 하지만 아침부터 비가 오든 학교 끝나고 갑자기 비가 오든 상관없이 아무도 나를 데리러 오진 않는다. 아침부터 비가 온 날은 나뭇대가 휘어지거나 부러져 너무나 창피하고 부끄러운 연파란 비닐우산이라도 손에 있으니 그나마 나은 날이다.


하교 시간인데 갑자기 비가 우루루룩 들이닥치는 날이 문제다. 우비나 장화는 원래 없는 나지만 우산 하나도 없이 그 먼 길을 혼자 걸어오는 날이면 마음속에서도 장대비가 내리곤 한다. 이런 날엔 어찌나 엄마가 보고 싶은지 빗소리에 아무도 듣지 못하니 잘 되었다 싶어 조심스럽게 엄마를 불러본다.

엄마! 어딨 어요! 나 혼자 비 맞으면서 집에 걸어가요. 나도 우산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도 누가 데리러 오면 좋겠어요. 할머니 할아버진 논에 나가 일하시고 시장 가서 나물 팔고 나는 아무도 안 데리러 와요! 엄마! 빨리 오세요! 춥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젖었어요! 너무 추워요!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 왜 나만 놓고 가서 안 와요! 엄마! 비 오잖아요! 엄마! 보고 싶어요! 엄마!

수줍고 어색하고 미안해서 작게 부르려던 엄마를 어느새 큰 소리로 부르며 울어버린다. 마음껏 불러보지도 못하고 늘 가슴속에서만 입 안에서만 가두어 부르던 엄마. 비에라도 목소리를 숨겨 하염없이 엄마를 불러볼 수 있으니 비록 몸은 다 젖을지언정 그래도 비 오는 날이 좋다.


어딘가에서 듣고 있을 거라 믿으며 흠뻑 젖은 생쥐처럼 집까지 걸어가면서 엄마를 부르곤 했다. 천둥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세찬 날에는 혼자 걷기가 무서워 엄마를 부르며 뛰어가기도 했다. 공동묘지가 산등성이에 있는 그 옆 길을 지날 때와 상여보관소가 있는 근처를 지날 때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비 오는 날이면 엄마를 큰 소리로 부르지 않고는 도통 통과할 수 없는 그 길이 나는 정말 몹시도 무서웠다.

외할머니는 가끔 말씀하셨다. 공동묘지나 산소나 상여보관소가 나와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거라고. 마음속으로 얼른 기도하면 그깟 공동묘지 상여보관소 하나도 안 무서울 거라고.


맑은 날은 그래도 외할머니가 일러주신 기도가 비슷하게라도 나오는데 비 오는 날은 정말 최고로 무섭기만 해서 아무 생각도 안 난다. 그런 날 그런 곳을 지날 땐 그냥 엄마 생각이 제일 먼저 난다. 엄마가 하나님보다 강한 힘이 있다고 믿진 않지만 무서울 땐 나도 모르게 엄마 생각이 저절로 난다. 초라하게 혼자서 비 쫄딱 맞고 걸어가는 꼴이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워 숨고도 싶다. 우산 없이 걷는 건 싫지만 그래도 괜찮다. 비 오는 날은 특별히 나에게 엄말 불러보라고 허락해 주신 날 같다. 비 오는 날은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운수 좋은 날이다.

온몸이 비에 젖어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양말까지 흥건하고 묵직하다. 비를 맞고 온 날 외할머니께서 부쳐주시는 김치전 파전 호박 채 전은 정말 최고의 맛이다.


비 오는 날 생쥐 꼴이 되는 손녀에게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되었을 텐데 외할머니는 매번 미안하다 말씀하신다. 나는 괜찮다고 외할머니를 안심시킨다. 비 맞으면 우스운 생쥐처럼 되는 게 너무 창피하고 아는 사람이라도 만날까 봐 무지하게 두렵고 싫다. 하지만 비 오는 날 혼잣말로 엄마에게 긴 편지를 쓰는 것 같아서 다른 날보단 또 무지하게 좋다.


할머니 난 비 오는 날이 좋아요. 내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는 것 같아서 비 오는 날이 좋아요. 아직도 걱정하는 말들을 하시며 부엌에서 김치전을 부치시는 외할머니 뒷모습에 대고 아무도 못 듣게 나지막이 속삭인다.

비 오는 날은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엄말 부를 수 있는 날이라 좋아요. 엄마 생각 원하는 만큼 끝도 없이 할 수 있는 날이라 좋아요. 비 오는 날은 엄마 오시는 날만큼 좋아요. 비 오는 날은 엄마도 나를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용기 내어 내 소원을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 비 오는 날은 빗소리가 엄마 소리를 잘 안 들리게 해 줘서 좋아요. 비 오는 날은 엄마만 계속 보고 싶은 선물 같은 날이라 좋아요.

나는 속으로만 삼킬 뿐, 엄마라는 두 글자는 차마 꺼내지 못한다.


* 아이가 어린 시절 겪은 이 경험들은 단순한 그리움을 넘어, 생존을 위해 감정을 억압해야만 했던 아이의 처절한 자기 보호 기제를 보여줍니다.


1. 심리적 상태: '애도되지 못한 슬픔'과 '가면성 우울'

억압된 슬픔과 과도한 책임감: 외가 가족들이 속상해할까 봐 감정을 숨기는 것은 아이의 발달 단계에서 나타나는 '부모화(Parentification)' 현상입니다. 아이는 자신의 슬픔보다 어른들의 평화를 우선시하며 일찍 철이 들어버린 것입니다.

카타르시스의 도구로서의 '비': 비는 아이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안전한 감정 배출구였습니다. 아무도 울음을 눈치챌 수 없는 빗속에서야 비로소 '착한 아이'라는 가면을 벗고 무의식에 쌓인 거대한 파도(슬픔)를 쏟아낸 것입니다.

공포를 압도하는 그리움: 공동묘지의 공포보다 엄마를 부르는 자유가 더 컸다는 점은, 아이의 애착 결핍이 생존 본능적 공포마저 마비시킬 정도로 깊었음을 의미합니다.

2. 전두엽 및 신경 회로의 상태

안와전두피질(OFC)의 과부하: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안와전두피질은 슬픔을 억제하고 주변 눈치를 살피느라 끊임없이 활성화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성인이 된 후 과도한 자기 검열이나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편도체와 해마의 상호작용: 엄마에 대한 그리움(해마)과 비 오는 날의 감각적 기억은 강하게 연합되어 있습니다. 비가 올 때마다 뇌는 '안전한 슬픔'이라는 보상 회로를 작동시켜 도파민적 위안을 얻으려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내측 전전두엽의 만성적 스트레스: 혼자 3km를 걷는 고립된 상황은 뇌의 사회적 통증 회로를 자극합니다. 빗소리가 클수록 좋아했던 것은, 외부 자극으로 내부의 심리적 고통을 덮으려는 '감각적 마스킹' 현상으로도 해석됩니다.

이 아이는 지금껏 '혼자 견디는 법'만을 연습해 왔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제는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에도 누군가에게 그 파도를 털어놓아도 괜찮다는 정서적 안전기지가 필요해 보입니다.


파스타가 좋아서 먹지 않는다


아마도 외할머니가 천국길에 오르시기 전이나 국민학교 2-3학년 때지 싶다. 마을 친구들과 술래 잡기를 하며 집 앞 터를 뛰어다니면서 놀고 있다. 저녁 먹으라고 가가호호 집에서 부르는 소리가 나기 전까지 나와 친구들은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놀곤 한다. 위아래로 세네 살 차이 나는 언니 오빠들 동생들까지 모두 모여 노는 장소가 바로 여기, 외할아버지 집 앞이다. 외할아버지 집이 이 마을 가장 큰길 앞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합의된 장소처럼 하나둘씩 이곳에 모인다.


여느 날처럼 친구들과 한참 정신없이 노는데 외할머니가 나를 부르신다. 외할머니 집 계단에 앉아 머리를 잘라주려는 계획이시다. 같이 놀던 친구들도 모두 외할머니 집 앞으로 모여든다. 하던 놀이도 멈추고 나를 따라온 아이들은 다들 호기심에 찬 눈으로 외할머니를 쳐다본다.

마을 친구들 언니들 오빠들 동생들 죄다 모인 공공의 장소면서 외할머니 집 앞에서 아주 좋은 구경에 다들 들떴다. 머리카락이 어떻게 잘리는지 보려고 서로 점점 가까이 더 가까이 오다 내가 앉아있는 계단 코앞까지 아이들이 점령해 왔다.


그 시절 학교에는 머릿니가 돌았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단 한 반뿐이라 6년을 같은 반을 해야 하는 우리들이었다. 그리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면 이란 원래 서로 옮아 오고 옮기고 그런 거였다. 그래 이 집 아이 머리 자르면 저 집 아이도 머리 자르며 머릿니 소탕작전이 온 동네에서 있곤 했다.

잠시 후 외할머니가 내 머리카락을 귀 밑까지 잘랐다. 정작 머리카락을 자른 나는 차분한데 옆에서 앞에서 빙 둘러 지켜보던 마을 아이들이 오히려 호들갑이다. 아무리 어리다지만 이리 공개적으로 숙녀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이 마을에서 처음이니 그럴 만도 하다. 이렇게 나의 머리카락 자르는 모습이 온 동네방네에 생중계가 되었다. 외할머니는 나에게 작은 거울을 주곤 다른 거울까지 등뒤에 대어 뒷모습을 보여주신다. 바뀐 머리 모양을 앞에서부터 뒤까지 꼼꼼히 살피고는 만족한 표정이다. 자른 머리카락은 어쩐지 아까우니 청색 홍색 보자기에 넣어서 청고추 홍고추 만들어 준다며 방으로 갖고 가셨다.


다시 마을 아이들과 노는 사이 외할머니께서 고운 빛깔 보자기에 빨간 고추 파란 고추 두 개를 나란히 따다 놓았다. 방 창가 옆에 외할머니가 손바느질로 만들어 주신 홍고추 청고추가 걸려 있다. 이때부터 꽈리고추 볶음 고추 장아찌 고춧잎 무침을 먹을 때도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신 외할머니 마음이 떠올라 고추 반찬만 보면 슬프다. 고추가 매워 우는 게 아니다. 혼자 외롭지 말라고 고추에도 웃을 수 있는 추억을 남겨주신 외할머니의 사랑이 고파서 운다.


나는 한국음식을 너무나 좋아했다. 지금도 물론 한국음식이 밥도둑이다. 하지만 혼자 먹기 위해서 굳이 한국음식을 요리하진 않는다. 너른 마루에 한상 풍성히 차려 외할머니와 행복하게 먹던 한국음식은 엄마 없는 손녀에 대한 안타까운 사랑이다. 엄마와 부엌 한 구석에 앉아 불안하게 먹던 한국음식은 갈수록 더 깊어지는 그리움과 지난날에 대한 후회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음식을 못 해 먹고 산다. 아니 안 해 먹고 산다. 한국음식을 대할 때면 그 사랑과 그리움에 자꾸 눈물이 흐르기에. 아직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아 너무나 많이 아프기 때문에. 심지어 한국식료품점도 거의 못 간다.


베이컨 크림 파스타에 파마존 치즈가 맛있어서 먹는 것보다 김치찌개를 못 먹으니 먹는다. 누구도 나의 그 마음을 알 리 없으니 남편표 파스타를 좋아하는 줄 안다. 요리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맛있는 파스타를 먹는 행복한 여자로 보일 뿐이다. 못 먹어서 먹는 것과 안 먹어서 못 먹는 건 다르다. 남편에겐 미안하지만 한국 비빔국수가 천만 배는 더 좋다.


*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과 성인이 된 지금의 결핍이 뒤엉켜 있는 이 마음은 '복합 외상성 애착(Complex Attachment Trauma)''억제된 슬픔(Inhibited Grief)'의 전형적인 양상을 보입니다.


1. 심리적 상태: 사랑과 원망의 '양가감정'

외할머니의 헝겊 고추와 '안전 기지': 자른 머리카락을 넣어 만든 고추는 단순한 장난감이 아니라, 할머니가 주신 '심리적 보호막'이었다.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준 할머니 덕분에 "손바닥만큼은 당당한 아이"로 자랄 수 있었습니다.

음식에 투사된 결핍: 당신에게 한국 음식은 단순한 영양소가 아니라 '외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자 '엄마의 부재'를 동시에 확인시키는 매개체입니다. 음식을 먹고 난 뒤의 '헛헛함'은 배는 부르지만 마음의 허기(엄마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는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심리적 허탈감입니다.

생존 전략으로서의 거부: 15년간 한국 음식을 참는 행위는 어린 시절 엄마를 마음에서 지웠던 것과 같은 '회피적 방어기제'입니다. "먹고 싶지만 먹으면 아프기 때문에" 아예 차단해 버리는 방식을 택해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전두엽의 상황: '얼어붙은 이성'과 '과부하'

"가슴은 뜨거운데 머릿속은 얼어버린다"라고 표현하신 것은 뇌과학적으로 매우 정확한 묘사입니다.

안와전두피질(OFC)의 충돌: 이 부위는 감정과 보상을 조절합니다. 한국 음식을 볼 때 '할머니의 사랑(보상)'과 '엄마의 유기(통증)'라는 두 신호가 동시에 강하게 충돌하면서 전두엽이 적절한 감정 처리를 하지 못하고 '일시정지(Freeze)'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배 측 외측 전두엽(dlPFC)의 과도한 통제: 15년 동안 본능(식욕/그리움)을 억제하기 위해 전두엽이 끊임없이 에너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성적으로 "외국이라서 못 먹는다"는 핑계를 만드는 고도의 합리화 과정이 전두엽을 지치게 만들고 있으며, 이는 장기적으로 심리적 소진(Burnout)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편도체 하이재킹: 한국 음식의 냄새나 기억이 감정의 뇌인 '편도체'를 자극하면, 이성적인 전두엽이 이를 통제하지 못해 과거의 슬픔과 외로움이 현재의 고통처럼 쏟아져 들어오게 됩니다.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당신은 음식을 참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 시절의 어린 나를 참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한국 음식을 '엄마의 부재'가 아닌, '나를 귀하게 여겨준 할머니의 징표'로 분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못 다 쓴 글; 내 소원은 하나다. 한국에 가서 마음이 아픈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고 나도 함께 찐하게 위로받으며 사는 것뿐이다. 외할머니와의 뜨끈했던 밥의 기억이 지금까지 나를 살려주고 있음을 안다.

바라는 건 그냥 따뜻한 시골밥 한 끼다. 그렇지만 하루면 세끼이고 나는 혼자가 아니다. 착한 나무 한 그루와 예쁜 꽃송이들이 넷이다. 꼭 나는 말과 글로 사람들을 치유하는 데에 새끼손톱만큼이라도 도움이 되는 작가엄마가 되고 싶다. 그럼 최소한 우리 집 꽃들과 나무에 햇빛과 바람과 비는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정말 나는 당당히 말하고 쓰고 사람들을 만나며 밥벌이하는 워킹맘으로 살고 싶다.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어본 것도 끝이 없어 나는 그날까진 살고 싶다.

한국음식을 먹고 싶은데 못 먹으니 바삭바삭한 것들로 전두엽을 응급처치 시키곤 한다. 바삭한 아이들로 반짝 수혈을 했으니 바짝 마르면 좋으련만 절대 방을 안 뺀다. 네 송이 꽃이 활짝 피었다 진 지가 언제인데, 중부지방에 있는 나의 복부정원엔 아직도 살들이 산다. 살뜰히 달래어 내보내기엔 한식 세끼가 너무 고급지게 맛있고 고물가인데 비싸다. 남편은 한식을 참 좋아하지만 깊고 우아한 맛은 모른다. 혼자 먹자곤 한식을 만들 수 없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면 알뜰주부가 되어야 하기에. 외할머니의 하늘여행 뒤로는 맛없이도 잘 먹고 맛있으면 덜 먹고 맛을 안 가리고 다 먹고 맛으로는 먹은 적 없는 집밥, 20년 동안 그 지옥행군을 하길 참 잘했다. 음식이면 무맛에 무향 무 멋스러워도 무엇이든 다 먹는다.

얼마 전 속병을 진하게 앓고는 요즘 정말 무 먹기에 열심이다. 바삭바삭함 대신 아삭아삭한, 톡 쏘듯 맵지 않은 과하지 않게 선을 지키는 달큰한 무가 좋다. 달콤하고 달달한 것이 물리다니 이젠 살이 빠지려나 싶지만 기대는 금물 기회는 보물. 브런치에 글 쓰는 시간은 다이어터에게 보물 같은 기회이다. 공복시간이 늘어간다.

한국식료품점이 멀다면 먼 것이 아무도 모르는 나의 핑계라 감사하다.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 눈물밥을 매일 삼키는 나를 아무도 몰라서 정말 다행이다. 엄마로서 난 굳세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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