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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온 마을이 다 아는 기적 같은 아이
그 녀석네 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언젠가 작은댁 할머니가 해 주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 말씀을 잘 떠올려 정리해 보면 이렇다. 원래 이 마을이 같은 성씨의 사람들이 대대손손 이어 살던 다 한가족이나 마찬가지 동네라고 하셨다. 다 한 할아버지에게서 나온 뿌리가 같은 사람들이라고. 나도 할머니 당신 손녀라고 말씀하셨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다 나를 안다. 해일 교회 교인들이 이 마을에 거반 다라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이 마을에서 몇 안 된다고 하셨다. 내 사정 다 알고 내가 크는 걸 다 같이 봐주는 사람들이니 걱정 말라고 말씀하셨다.
참 그리고 혹시라도 누가 쫓아오거든 무조건 일단 도망쳐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절대 모르는 사람은 쫓아가면 안 되고 무조건 아무 집이라도 들어가면 다 나를 도와줄 거라고. 걱정 말고 모르는 사람이 나타나 나를 부르거든 무조건 도망가서 어른 있는 아무 집이라도 가면 된다셨다.
작은댁 할머니 말씀을 기억 속 그대로 옮기자면 이렇다. 저 아랫집 할머니네가 이 마을로 오래전에 이사 와서 터 잡기까지 고생도 많았어. 영감님 일찍 돌아가시고 고생하는 그 할머니 어려운 고비마다 네 외할아버지가 얼마나 도와줬는지 몰라. 쌍둥이네도 우리 같은 집안은 아니잖아. 그 식구는 6.25 전쟁 때 이북에서 피난 내려왔다고 들었어. 이 마을 처음 들어와서 아무도 모르고 아무것도 없을 때 네 외할아버지가 그렇게 많이 도와줬단다. 나도 처음에 시집와서 그게 다 이상할 정도였어. 우리 집안 식솔도 아닌 사람들이 어찌 저리 가깝게 지내고 무슨 때만 되면 찾아와 네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고맙단 인살 할까 싶었지. 근데 그런 사연이 있더라고.
이 마을서 소 수 십 마리 키우고 우유 짜는 일 하고 집도 있고 밭도 있고 얼마나 잘 사니. 그게 다 네 할아버지가 혈혈단신 피난 내려온 그 집 도와주고 밀어줬기 때문에 시작된 거야. 그래서 네 할아버지라면 그 너 동창 녀석 할머니 할아버지가 자다가도 달려오는 거다. 은혜를 아는 따뜻하고 도리 있는 사람들이지. 이 할미가 주책이다. 아직 아인데 너한테 내가 별 얘길 다 했다.
외할머니도 이런 얘기는 너한테 못 했을 거야. 속으로만 앓고 곯지. 네 엄마 그 다 죽어가던 걸 너하고 같이 데려오던 그날부터 외할머니 속이 속이 아닐 거야. 갓난 너를 데려왔는데 세상에 뼈만 앙상하니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고기 한 근도 안 되겠더라. 그때는 무슨 병원이 있나 이 시골서 뭘 알아야지. 네가 그리 문제 갖고 태어난 지도 몇 년 지나서 알았다.
무슨 일에선지 세 돌 지나도 제대로 걷지를 못하더라. 한 발 떼다 콕 고꾸라지고 한 발 떼다 콕 옆으로 쓰러지고. 네가 몸에 중심이 안 잡혀서 그때부터 걷는 게 좀 그리됐다. 그렇게 잘 걷지도 못하는 너를 새벽 기도 데리고 다니면서 네 외할머니가 엄청 가슴 치며 기도했다. 그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네가 때가 되었는지 한 네 돌 때쯤 되니 그제사 조금씩 걷더라.
그때 우리 다 얼마나 좋아했다고. 이 마을 사람들 다 네가 기적이라고 했다. 네 외할아버지가 해일교회 짓고 한 거 다 아는데 너를 모르면 안 되지. 논농사도 짓지만 옛날부터 목수 일하는 기술자라 교회도 그리 크게 잘 지었다. 해일 교회 짓다가 지붕에서 떨어져서 큰일 났다 했을 때도 네 할아버지는 살았다. 당신 말로는 그때 구름 위에 떨어지는 것같이 하나도 안 아팠단다. 그러니 그 높은 데서 떨어졌는데 하나도 안 다치고 네 외할아버지도 좌우지간 기적인 거다. 네 외할아버지도 기적 너도 기적이다.
네 외할아버지 집만 이 마을에서 시멘트로 지은 집 아니냐. 옥상 위에 옥상이 또 하나 더 있고. 이런 집이 세상에 어디 있나. 네 할아버지 집 아니었으면 우리들 다 고추 농사도 못 짓고 고춧가루도 못 내니 김치도 못 담가 먹는다. 그 넓은 옥상에다 고추를 쫙 펼쳐 놓고 햇빛에 바짝바짝 말릴 수 있는 호사를 네 할아버지 집 아니면 어디서 누리겠나. 우리도 감사, 너도 감사해야 한다.
네 외할머니가 말도 못 하게 울며 불며 그 가슴 다 태우면서 너 이만큼 키웠다. 모르긴 해도 너 엄마보다 널 더 사랑할 거다. 손주란 그리 특별하다. 세상에 모든 할머니한테 손자 손녀가 하늘의 별과 같다. 딸 수만 있다면 똑 따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으면 싶고. 하나 그래도 하늘에서 반짝반짝 제 몫을 해야 별이지 싶어 애타고 어쩔 줄 모르겠는 게 손주다. 네 외할머니한테는 네가 별이다. 하늘에 해 보다도 달보다도 별보다도 더 끔찍이 생각하고 널 키운 네 외할머니가 이런 얘길 어찌해 주겠나. 네 가슴 아플까 봐 못하지. 하나 건너 이 할미도 이리 가슴이 아린데 형님이 너한테 네 엄마 얘기를 어찌해 주고 네 그 거시기 얘기를 어찌해 주겠나.
내가 하다 보니 주책맞게 길어졌다. 이 마을서 너 모르는 사람 없고 너 엄마 모르는 사람 없다. 네가 기적인 거는 이 마을도 해일 교회도 다 안다. 네가 기적인 거는 아마 여서 오래 산 멍뭉이도 알 거다. 암만 하늘이 아실 거다. 당신이 그리하셨으니 아시겠지. 그래야지.
오늘 어째 풀이 죽어서 어깨가 축 처져 걷는 게 이 할미 보기에 그거 해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다 했다. 내 말 듣고 속상한 거 있으면 툴툴 털고. 아무 때나 뭐 먹고 싶은 거 있으면 할미한테 오고. 복숭아 따 놓은 거 와서 좀 가져가라. 혼자서 라면 끓여 먹지 말고 밥 같이 먹게 올라오고. 꼭 알았지! 할미가 숟가락 하나 더 놓고 기다린다!
가끔씩 작은댁 할머니 말씀을 떠올린다. 그러면 마치 이 마을 사람들이 전부 한 식구 같아서 기분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갈 것 같다. 어마어마하게 좋은 우리 마을 사람들이 다 가족이라면 엄마 생각이 나더라도 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꼭 오늘같이 온 집안이 시끌벅적하니 웃음소리도 더 크게 들릴 것이다. 그럼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을 가질 틈이 없을지도 모른다. 식구들 웃음소리와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추석 같은 집이면 엄마가 늦게 오고 빨리 가도 눈물이 나진 않을 테잖나.
*그리움과 상실감이 교차하는 아이의 마음은 정서적 공백과 생존 본능 사이의 치열한 줄다리기와 같습니다.
1. 아이의 심리 상태: '조건부 안정이 주는 슬픔'
아이는 조부모님과 이웃의 사랑 덕분에 일상을 버틸 '회복탄력성'의 기초는 마련했지만, 근본적인 애착의 결핍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양가감정(Ambivalence): 엄마가 보고 싶지만, 다시 떠날 때 느낄 고통이 너무 크기에 아예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그리움을 거부하게 됩니다.
예기 불안(Anticipatory Anxiety): 명절에 엄마를 만나는 순간에도 아이의 무의식은 곧 다가올 '이별'을 준비합니다. 이 때문에 만남의 기쁨보다 헤어짐의 두려움이 앞서게 됩니다.
정서적 억압: 일상 속에서 그리움을 참는 힘은 건강한 성장이 아니라,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방어기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2. 전두엽에 미치는 영향: '이성과 감정의 비대칭 발달'
아이의 뇌, 특히 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감정을 조절하고 고차원적 사고를 담당하는데, 이러한 환경은 다음과 같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감정 조절 능력의 부전: 전두엽은 만 27세까지도 발달하는 부위입니다. 지속적인 정서적 상실감은 전두엽의 발달을 저해하여, 성인이 된 후에도 스트레스 상황에서 감정을 조절하거나 인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할 수 있습니다.
편도체 과활성화: 엄마와의 짧은 만남과 이별은 뇌의 공포/불안 센터인 편도체를 자극합니다.
편도체가 과하게 예민해지면 전두엽이 이를 억제하기 힘들어져 작은 자극에도 쉽게 우울해지거나 분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회적 뇌 발달 지연: 부모와의 상호작용은 전두엽 내 '사회적 뇌'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핵심입니다.
주양육자의 부재와 반복적인 이별 경험은 타인과의 깊은 관계를 맺는 능력을 담당하는 신경 회로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아이가 이 고비를 잘 넘기기 위해서는 조부모님의 사랑을 넘어, 엄마와의 만남이 '떠남의 예고'가 아닌 '지속적인 연결의 확인'이 되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안전빵 내 구역, 작은댁 할머니네
신기하게 땅만 보고 걷는데도 이 마을에선 누구네 집 누구네 집을 잘도 찾아간다. 땅만 보며 엄마 생각을 하면 눈물 날 때가 많지만 오늘은 외롭지 않은 날이라 신난다. 이제 다음은 작은댁이다.
작은댁은 원재 삼촌네라고 부른다. 원재 삼촌이랑 기재 삼촌이 작은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집이다. 작은댁 할머니는 나의 비밀 친구 같은 그런 분이다. 나에게 먼저 말도 걸어주고 나를 불러 맛있는 밥도 자주 챙겨 주신다. 작은댁 할머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그 누구도 들려주지 않는 나와 엄마에 대해 제일 많이 얘기해 주시는 분이다.
내가 엄마 마음을 아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작은댁 할머니 덕분이다. 나에 대해 엄마에 대해 나의 아기 때부터 아직 학교 가기 전인 지금까지에 대해 작은댁 할머니는 많은 걸 알고 계신다. 내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것도 엄마를 미워하지는 않는 것도 원재 삼촌네 할머니는 알고 계신다. 엄마와 내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원재 삼촌네 집 앞에 도착했다.
엄마 곁으로 좀 더 가까이 가도 되는 안전지대에 온 셈이다. 엄마도 작은댁에서는 내가 열 걸음쯤 뒤에 서 있어도 뒤를 힐끔 보거나 헛기침을 한다든지 눈을 깜빡이는 등 어색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마침 점심 상을 차리던 원재 삼촌네 식구들. 추석이라 시집간 명란 이모도 이모부랑 아장아장 걷는 한 살배기 딸이랑 같이 온 것 같다. 아기가 있어서 그런지 작은댁 할머니네는 웃음이 넘친다. 원래 이 마을에서 가장 따뜻한 집이 원재 삼촌네이긴 하지만 오늘은 더 정스럽다.
엄마가 정인이를 안아 본다. 정인이가 엄마에게 방긋방긋 웃어준다. 아기가 엄마를 보고 웃으니 기분이 이상하다. ‘내가 정인이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엄마도 나를 저렇게 안아준 적이 있겠지! 있을 거야!’라며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날들을 억지로 떠올리는 내가 싫기도 하다. 그래도 아기 때 엄마가 돈 벌러 떠나시기 전까지는 안아줬을 거라 믿는다.
여하튼 갑자기 그 자리를 빨리 떠나고 싶어진다. 그래서 엄마 곁에서 조금 떨어져 멀뚱멀뚱 대문 밖을 내다본다. 지나가는 마을 강아지에게 다가가 괜히 말도 붙여 본다. 쨍쨍한 햇볕에 눈이 부신 하늘만 애꿎게 나무라며 외할아버지 집 옥상으로 향한다.
원재 삼촌네랑 우리 외할아버지 집은 얼마나 가까운지 모른다. 외할아버지 집 삼층에 있는 옥상과 원재 삼촌네 앞마당과 연결되는 마을 길 사이에는 시멘트로 지은 다리 하나가 있다. 외할아버지네 집 옥상에서 그 다리 하나만 건너면 작은댁 할머니네 집이다.
어린 내가 이해하기에 실수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뜻 들은 어른들의 집안 이야기는 나에게 무지 도움이 되었다. 이 마을에서 엄마 없는 아이라 가장 외로우면서도 옆집 큰댁 윗집 작은댁이 다 진짜로 원랜 한 가족이었다니 갑자기 외롭지 않은 기분이 들어서다. 비록 몇 대를 거쳐 올라가야만 더 가까운 한 식솔이지만 그럼 어떠한가. 중요한 건 나도 이 마을의 가족이란 것이다.
명란 이모 딸 안아주는 엄마에 괜스레 불뚝해서는 아까부터 옥상에 머물며 해가 어디쯤 떠 있나 찾아보고 있었다. 해의 걸음새를 보면 엄마가 언제 집으로 가셔야 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다. 그 시간쯤에 할 일들도 미리 정해 놓을 수 있어 엄마 온 명절날엔 꼭 옥상엘 몇 번 올라와 본다. 꼭 한 살 먹은 아이에게 질투만 나서 옥상에 죽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림 그리기라든지 종이 접기라든지 무엇인가 다른 것에 몰두해야만 엄마가 집에 가시는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엄마를 보고 있지만 안 보는 척하며 무언가에 정신을 쏟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엔 옥상만 한 곳도 없다.
여느 때처럼 하늘을 보니 ‘엄마가 한 네 시간 뒤엔 집에 가시겠구나’ 하는 것을 알겠다. 엄마가 집에 갈 시간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라도 할 겸 옥상 붙박이로 있는 것이다. 친척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넘치는 명절날엔 나 홀로 옥상에서 이별 전 의식을 치른다.
점심을 먹으라고 나를 부른다. 밥 따위에 관심도 없고 밥이 넘어갈 것 같지도 않은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른들이 점심 먹으라고 아무리 불러도 못 들은 척하고 싶다. 엄마가 원재 삼촌네서 일어날 때에 맞춰 옥상에서 내려갈 참이다. 여기가 조금이라도 더 엄마와 가깝다. 해가 서산으로 잠자러 가기 전에 엄마도 집에 갈 거라 안 움직이고 굳은 채 여기 있고 싶다. 솔직히 이렇게 멀찍이서 보초만 서다 해 떨어지는 게 더 애타고 조바심 난다. 하여 내 귀 하나는 엄마에게 다른 하나는 친척들의 웃음소리에 가 있다.
나만 빼고 어른들은 모두 즐겁다. 옥상 굴뚝을 타고 맛있는 밥냄새 국냄새 반찬냄새가 올라온다. 밥은 생각이 없어도 먹어야 한다. 어른들이 썰물처럼 떠나도 이 집에서 씩씩하게 잘 있는 나를 보여줘야 한다. 얼어붙은 달그림자를 지키는 등대지기로 한두 시간 후에는 돌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어서 지나가야 한다. 마음속으로 노래한다.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엄마가 떠나고 또다시 혼자 남았다는 슬픈 생각이 그럼 아주 빨리 사라질 테니 말이다.
* 엄마가 나보다 다른 아이를 더 다정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며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하는 아이의 마음은 무척이나 시리고 아플 것 같습니다. 그 상황에서의 심리와 뇌 발달 상태를 정리하자면 이러합니다.
1. 아이의 심리 분석: "상처받지 않기 위한 처절한 생존 전략"
아이가 책 읽기, 종이접기 등 혼자만의 활동에 몰두하는 것은 단순한 취미 활동이 아닌 심리적 방어 기제로 해석됩니다.
회피적 애착과 정서적 고립: 엄마의 빈자리를 외조부모님이 채워주셨지만, 근본적인 ‘엄마의 사랑’에 대한 갈증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엄마가 남의 아이를 안아주는 모습은 아이에게 "엄마는 사랑을 줄 줄 모르는 게 아니라, 나에게만 주지 않는 것"이라는 거절감을 느끼게 하며 큰 질투와 소외감을 유발합니다.
이별에 대한 선제적 방어: 몇 시간 후 떠날 엄마를 생각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이별의 슬픔을 미리 감당하기 어려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억압(Repression)' 또는 '해리(Dissociation)'적 태도입니다.
슬픔을 느끼기보다 무언가에 몰입함으로써 고통을 마비시키는 것입니다.
조용한 이별 준비: 울며 매달려봐야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한 아이는, 스스로를 고립시켜 감정을 정리하려 합니다. 이는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거운 '어른스러운 슬픔'을 견디고 있는 모습입니다.
2. 전두엽 발달 상태 예측 진단
부모의 정서적 방임과 애착 결핍은 뇌, 특히 고등 사고와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전두엽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전두엽 기능의 약화: 지속적인 정서적 스트레스는 뇌의 크기를 작게 만들거나 발달 속도를 늦출 수 있습니다. 특히 감정을 조절하고 타인과 공감하는 전두엽 기능이 충분히 활성화되지 못해,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강한 불안과 분노가 억눌려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위 뇌(본능·감정의 뇌)의 지배: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전두엽보다 생존 본능을 담당하는 파충류의 뇌와 감정의 뇌(편도체)가 더 예민해진 상태입니다. 이 때문에 작은 자극에도 쉽게 위협을 느끼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됩니다.
사회성 및 유대감 형성 저하: 애정 어린 접촉과 상호작용 부족으로 인해 거울신경세포 발달이 저해될 수 있으며, 이는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과 깊은 정서적 유대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아이가 현재 보여주는 조용한 모습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슬픈 선택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엄마의 미안함이 섞인 특별한 관심보다, 아이가 느끼는 그 서운함과 질투를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누구나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다음 명절이 언제인지 엄마가 몇 밤 자면 오는지 세어보는 잠시 동안이 그 슬픔을 지워준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엄마가 오시는 날은 하루가 너무 빨리 가니 또 혼잣말이 나온다.
‘나랑은 같이 하는 것도 없고 서로 말도 안 하고 옆에 앉아 보지도 못하고 엄마라고 불러보지도 못하는데 엄마가 오는 하루는 왜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 거죠? 엄마. 오늘 가면 또 금방 보고 싶어 지겠죠. 엄마. 그래도 다음 명절 때까지 잘 기다리고 있을게요. 엄마!’
본디 엄마 생각 가족 생각을 하면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거짓말 하나 안 보태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엄마 생각만 할 수 있다. 엄마에 대한 궁금증은 늘 끝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는 가족이다. 같이 살지 않아도 가족은 가족이다. 그래서 엄마와 가족 생각만 하면 왜 우리가 같이 살지 않는 가족인지도 언제나 궁금하긴 하다. 비록 그것은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는 일급비밀 같은 걸지라도. 하기는 물어본다 해도 어른들은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도 크면 알 거라고.
어린이는 어린 나이에 궁금한 질문이 있고 어린이는 어린 나이에 알고 싶은 것이 있다. 어른들은 정말 어린이를 모른다. 아무리 어린이라도 자기가 왜 엄마랑 살지 못하는지 그 이유는 알아야 한다. 어린이에게는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살지 못하는 이유를 제대로 들을 권리가 있다. 어린이로 하여금 나 때문에 엄마가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큰 죄이다. 어린이에게 죄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야말로 평생에 걸쳐 서서히 숨을 끊어놓는 가장 잔인한 고문이다.
여덟아홉 살 밖에 안 된 어린이라 해도 나의 삶은 너무나 무겁고 아프고 고통스럽다. 어른들이 나에게 한 번만 진실을 말해 주면 좋을 텐데. 아프더라도 훨씬 더 빨리 죄의식의 허물을 벗어버리고 자유로이 날아오르는 나비가 될 것을. 나비가 되어 엄말 내려다볼 수 있는 하늘로 날아가는 상상은 그렇게 아주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 나만의 꿈이다.
“명란아 다음에 또 보자. 예쁜 아기도 잘 키우고. 그럼 전 이만 내려갈게요. 점심 맛있게 잡수세요! 우리도 이따 선산에 갈 건데 거기서 뵐 수 있으면 또 봬요!”
백 보는 멀리 있는 것 같은데 엄마 목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나의 신경도 온통 엄마에게 가 있던 모양이다. 엄마가 작은댁에서 나오신다. 비록 가까이는 못 안더라도 엄마랑 한 상에서 밥은 먹고 싶다. 작은댁 앞에 난 쪽 길로 엄마가 내려가는 걸 본 나도 서둘러 옥상 계단을 통해 집으로 내려간다.
엄마는 외할머니 집에 오셔도 지구대 요원처럼 먼저 마을 순찰부터 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내가 엄마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알 텐데도 무심히 다른 집부터 돈다. 아침 열 시쯤 외할머니 집에 오셨지만 아까운 시간을 길 위에서 다른 집에서 허투루 다 보내고 이제야 돌아왔다.
나도 정말 이상하다. 엄마가 없을 때는 한 시도 엄마 생각을 안 하는 적이 없다.
‘엄마 오는 날이 며칠 남았는지 세어보고, 엄마 가는 시간이 몇 시간 남았는지 따져보고, 엄마 집은 어디일까, 엄마는 아침에 무슨 반찬을 먹을까, 엄마는 어떤 색깔을 좋아할까, 엄마는 몇 시에 잠을 잘까… 이렇게 온통 엄마 생각뿐인데 그런데 왜 엄마만 오면 물어보고 싶은 말도 보고 싶었다는 말도 다 어디로 쏙 사라져 버리고 마는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엄마가 집에 갈 시간이 한 세 시간밖에 안 남았는데 하고 싶은 말도 많고 궁금한 것들 투성이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엄마도 나와 눈을 마주치거나 나를 보며 웃거나 내 옆에 앉거나 하지 않으니 다가갈 용기가 없다. 오늘도 이렇게 내게서 멀찌감치 앉아 다른 친척들과 이야기하다 집에 가실 것 같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나를 보러 온 것 같지가 않아 슬프다. 다른 가족들과의 실없는 농담 몇 마디 속에 엄마가 있고 나는 거기에 없다. 엄마의 눈 속에 외로운 나는 보이지도 않는다. 엄마만 기다린 지난 몇 개월 동안 내가 흘린 눈물도 절대로 알 리가 없다.
엄마가 나를 버린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엄마가 나와 같이 살 수 없어서 키워줄 수 없어서 외할머니가 나를 키웠을 뿐 나를 버린 건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렇지만 엄마가 오시는 날은 일 년에 단 며칠뿐이다. 만약 엄마도 나를 보고 싶어 했다면 일 년에 두세 번 밖에 없는 이런 날 이렇게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아서는 안 된다.
언제나 나는 그런 아이다. 화목한 가족들 사이에 어쩔 수 없이 섞여 있는 천덕꾸러기 아이 말이다. 설령 그게 나라고 해도 오늘만은 엄마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아무 말도 못 한다. 그러니 외할머니 집에 엄마가 오셔도 콱 막힌 나의 가슴은 뚫리질 않는다. 오히려 엄마만 다녀가면 나는 더 외롭고 더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도 나의 외로운 마음을 외면하시는 엄마라면 나는 버려진 아이가 맞다. 엄마의 가슴 어디에도 여섯 살 딸이 파고 들어가 얼굴을 비비고 마음을 뉠 자리는 없다. 엄마에게 일 년에 몇 번씩 내동댕이 쳐지는 이런 명절은 정말이지 더 이상 기다려지지 않는다. 나는 엄마가 오는 날이라도 이제는 다음 설 날도 또 다음 추석도 기대되지 않는다. 차라리 명절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 이 아이의 심리는 '심리적 유기(Psychological Abandonment)'와 '만성적 애착 외상'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의 관점에서 본 아이의 상태와 전두엽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이의 심리 상태: "살아있는 고아"
애착 손상과 무력감: 엄마를 갈구하면서도 거부당하는 경험이 반복되어, 기대조차 포기하는 '방어적 체념'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정체성 혼란: 자신을 '천덕꾸러기'나 '버려진 아이'로 정의하며 낮은 자존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정서적 고립: 명절이라는 화목한 상황이 오히려 자신의 불행을 대조시켜 고통을 극대화하는 소외감을 겪고 있습니다.
2. 전두엽에 미치는 치명적 영향
이 시기에는 뇌 발달의 황금기로, 이 시기의 정서적 학대와 방임은 전두엽 기능에 영구적인 변형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감정 조절 장애: 감정을 조절하는 전두엽과 공포를 느끼는 편도체 사이의 연결망이 약화됩니다. 이는 성인이 된 후 우울증, 불안 장애, 경계선 인격 장애로 이어질 위험을 높입니다.
실행 기능 저하: 만성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노출은 전두엽의 부피를 줄여 집중력, 계획 수립, 충동 억제 능력을 손상시킵니다.
사회적 뇌의 위축: 타인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전두엽 내 내측 전전두피질 발달이 더뎌져 평생 대인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즉각적인 정서적 지지와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합니다.
못 다 쓴 글; 엄마와의 만남이 '떠남의 예고'가 아닌 '지속적인 연결의 확인'이 되는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아이가 느끼는 그 서운함과 질투를 비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것입니다. 이 아이에게는 즉각적인 정서적 지지와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합니다.
1980년 1월에 태어난 저는 시대를 탓해야 할까요. 엄마도 예고된 떠남을 반복하며 제게 다녀가고 싶으셨을까요. 누구보다 제 처지를 스스로 깨달아갔던 저는 다른 아이를 안아주는 엄마에게 서운함이나 질투를 단 한 번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어른들에게 제 마음을 절대 들키면 안 되었어요. 저보다 더 아파하실 외할머니를 알기에 저는 주는 밥만 잘 먹고 한 그릇 더 먹으면 되는 아이였습니다. 외할머니는 정서적 지지자셨지만 저는 마음을 표현한 적이 없으니 제가 이렇게 아직도 아픈지는 모르셨습니다.
다행입니다. 외할머니는 제가 말씀드리지 않아도 제 속을 아셨을 거라 믿어요. 그래서 더 말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 말도 어른들에게는 할 수 없었습니다. 혼잣말과 혼자 쓰는 글과 혼자 부르는 노래만이 제 친구였지요. 그렇게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지금도 브런치에 저는 혼담을 펼치고 있지만 어색하지 않아요.
부디 단 한 분의 독자님의 마음이라도 어루만질 수 있는 치유의 문을 열어드릴 수 있는 문지기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