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엽 일병 구하기!

SES! Self Emotional eating Stop 트라우마다이어트

by 익자

쳅터 1.

포위된 전장 (태아기~청소년기, 성인기~결혼 전(원부모로부터의 분리 또는 독립 전)


폭력이라는 '적군'에게 포위되어 시작된 태아기, 또한 엄마와의 분리와 불완전 또는 불안전 동거기 등 성인기까지도 미처 발달하지 못한 전두엽을 다룹니다. 아동기 학대가 전두엽 크기와 정서 조절 능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로 이미 증명된 바가 많습니다. 이를 제 자전 실화로 풀어냄으로 독자는 ‘사람의 거의 모든 문제적 사고와 말과 행동이 전두엽의 미발달의 결과'라는 무거운 진실을 마주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독자)는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님'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덧붙임 말 : 태아기의 이야기는 글의 뒤 어딘가에서 풀어낼 예정입니다. 기다려주시길 부탁드리며,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5화. 딸은 추격자 엄마는 동네 한 바퀴


추석이라 잠시 외할머니댁에 온 엄마가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곗돈 탔다 바로 도둑 받은 날처럼 허망하다. 엄마는 외할아버지 댁에 오셔도 집으로 바로 들어오질 않는다. 몇 날 며칠 그날만 손꼽아 기다린 나는 꿈에도 모르는지 다른 집부터 다 돌며 인사하곤 하신다. 그 누가 딸인 나만큼 당신의 안부가 궁금하다고 온 동네방네 다니며 얼굴을 비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포도밭에서 일하던 큰댁 아주머니가 몸빼를 고쳐 올리며 일어나 엄마를 반겨준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나의 마른버짐 핀 얼굴에도 살며시 웃음꽃이 핀다.

엄마는 내가 멀찍이 뒤따르는 것을 알 텐데도 가까이 오라고 부르거나 말도 붙이는 적이 없다. 엄마가 한 번이라도 내 이름을 불러줄까 싶어서 도저히 그 언저리를 떠날 수가 없다. 엄마가 외할머니 집으로 갈 때까지 나도 마을 한 바퀴를 같이 돌 참이다.

이번에는 한 씨 할아버지 집이다. 엄마는 마을 어르신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올 때마다 선산에 가려고 왔단다. 그냥 나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맘에 없는 소리라도 해 주면 좋겠는데 영 그러는 법이 없다.

만날 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명절에나 하루 다녀가면서도 엄마는 딸 보러 왔다고 허튼 말을 못 한다. 마음에 없는 말이라 정말 못 하는지 어른인데도 부끄럼이 많아 그러는지 나는 엄마 속을 몰라 답답하다. 마음에는 있지만 차마 나한테 미안해서 그 말이 안 떨어지는 거라고 믿고 싶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조금 삐쳤는지 엄마한테 뾰로통한 마음을 먹었다 금세 도로 집어넣는다.


엄마는 작은 고갯마루 너머에 있는 망태 할아버지네도 들러 인사를 나눈다. 왜 망태 할아버지네라고 부르는지는 잘 모르겠다. 망태 할아버지네 집에 정말로 아이들이 겁내할 만한 그런 상상의 인물이 사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집은 내 친구가 사는 집이기 때문에 잘 안다.

친구의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신다. 내가 친구네 집에 놀러 올 때마다 친구 할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계셔서 늘 코가 빨가시다. 밝고 짙게 붉은 내 친구 할아버지의 코는 꼭 루돌프 사슴 코 같다. 농사일을 하셔서 얼굴은 까무잡잡 하지만 코만은 항상 빨갛게 물들어 있다. 아마도 망태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시는 할아버지에게 차마 고주망태라고 할 수 없어서 붙은 별명 같다. 고주망태 할아버지보다는 망태할아버지가 더 예의도 위엄도 있어 보이니 말이다.


오늘도 망태할아버지는 술에 취해 계시다. 눈을 치켜뜨고 엄마를 한 번 쏘아본다.

망태할아버지가 눈물이 조금 그렁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시더니 엄마 손을 잡는다. 그러고는 엄마 손등을 쓱쓱 자꾸 문지르다 투박한 당신 손으로 툭툭 치다 또 손등을 문지르다 몇 번을 하시고는 엄마 손을 놓으신다. 마치 ‘내가 네 마음을 다 안다’고 말씀하시는 듯 엄마를 바라보는 망태할아버지의 눈빛이 영 낯설다. 그동안 자주 보던 고주망태 소리쟁이 같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내 기분도 좀 이상하다. 망태할아버지가 울 엄마 마음을 정말 알아주는 것 같아 좋기도 하면서 내 친구가 처음으로 불쌍하다. 나보다 더 불쌍한 아이는 그 친구가 처음이다.


망태할아버지가 술 취해 부르는 노래며 엄마에게 하신 주정 같은 하소연이 다 친구 엄마 얘기다. 그 친구도 나처럼 엄마가 없다. 나는 엄마가 있지만 일 년에 몇 번만 보는 것이고 친구는 명절 때도 엄마가 없다. 내 친구가 아주 갓난아기였을 때 엄마가 집을 나가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친구는 언니가 둘이나 있어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어린이가 혼자 뿐인 나와는 다르다. 나보다 낫다. 언니들이 둘 있는 건 정말 부럽다.


나처럼 엄마 없는 친구지만 언니들이 있으니 불쌍하기로 치면 내가 더 심하다. 나는 겨우 엄마 하나밖에 없다. 그런데도 일 년에 몇 번 명절 때 딱 하루만 오신다. 자고 간 적은 아기 때는 기억이 안 나서 모르지만 한 번도 없다. 적어도 내가 엄마를 기억하기 시작한 나이에서부터는 엄마가 한 번도 외할머니 집에서 자고 가진 않았다. 몇 시간 있다 가지만 나하고는 아는 채도 안 하고 눈길도 주지 않으니 내가 내 친구보다 한참 더 많이 불쌍한 어린이가 확실하다.


엄마가 있지만 엄마 같지 않은 엄마다. 아니면 내가 왜 엄마라고 부르기가 이렇게 겁이 나는지 모르겠다. 언제나 뒷모습만 보여주는 엄마가 어떤 때는 밉기도 하다. 하지만 그래도 나에겐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엄마니까 엄마를 사랑한다. 아직까지 말로 한 적은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엄마가 세상에서 최고다. 그냥 내 엄마니까. 이런 생각을 하며 땅을 보며 걸어간다. 엄마와 아까보다는 더 많이 멀어져 있다. 머릿속으로 너무 많은 생각을 하다 그만 엄마 걸음을 못 맞췄다. 조금 뛰어가며 엄마를 따라잡아 본다. 엄마 뒤에서 조금은 멀지만 갑자기 혼자 멀리는 못 가시게 살금살금 뒤따라간다.


* 엄마와 떨어져 외조부모 손에 자란 어린아이가 거의 명절에야 만나는 엄마를 똑바로 보지 못하면서도 멀리서 쫓아다니는 상황은 복합적인 심리적 역동을 보여줍니다.


1. 불안정 애착 중 '회피형' 및 '양심적' 반응

회피적 태도: 엄마와 떨어져 지내며 명절에만 잠깐 대면하는 상황에서, 엄마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면서도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아이의 행동은 매우 복잡한 심리 상태를 반영합니다.

전형적인 회피형 애착(Avoidant Attachment)의 모습입니다. 이는 주 양육자가 자신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거나 거절하는 경험이 누적되었을 때, 아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 감정을 억누르는 방어 기제입니다. 또한 강력한 애착 욕구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양가감정: 엄마를 똑바로 보지 못하면서도 멀리서 졸졸 쫓아다니는 행동은 엄마에 대한 강렬한 그리움(접근 욕구)과 동시에 거절에 대한 두려움(회피 욕구)이 공존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이유 (회피): 아이에게 엄마는 낯설고 두려운 존재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주 양육자로부터 적절한 반응을 얻지 못한 아이는 거절의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감정을 억제하고 시선을 피하는 방어기제를 사용합니다.

멀리서 뒤를 쫓는 이유 (갈구): 시선은 피하지만 몸이 엄마를 쫓는 것은 본능적인 '애착 대상에 대한 갈구'입니다. 엄마의 관심을 원하지만, 직접 다가갔을 때 거절당하거나 무관심할 것이라는 공포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곁에 머물려는 것입니다.

2. 정서적 유기와 소외감

엄마의 무심함: 동네 어르신들께 인사하느라 딸의 마음을 살피지 못하는 엄마의 태도는 아이의 '거절 경험'을 강화하며, 아이로 하여금 자신이 엄마에게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무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심리적 방치: 엄마가 아이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동네 어르신들께 인사하는 '사회적 역할'에만 치중하는 행동은 아이에게 정서적 소외감을 줄 수 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엄마의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무력감을 느낍니다.

투명인간 경험: 엄마를 쫓아가는 행위는 "나 여기 있어요"라는 처절한 존재 확인의 신호이지만,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엄마의 태도는 아이에게 심리적 유기와 같은 트라우마적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3. 발달 단계상의 특징 (7~8세)

분리불안의 변형: 이 시기는 분리불안장애가 가장 흔하게 나타나는 연령대입니다. 주로 명절에 만났다 다시 떠나는 엄마의 존재는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기보다는 곧 닥쳐올 '재분리'에 대한 불안을 극대화합니다.

4. 내적 작동 모델의 형성

이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중요한 사람은 나를 떠난다"거나 "나의 감정 표현은 환영받지 못한다"는 내적 작동 모델을 형성할 위험이 큽니다. 이는 향후 타인과의 깊은 정서적 유대를 맺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이 상황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엄마가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고 아이의 눈을 맞추며, 아이의 감정을 수용하고 이해해 주는 정서적 상호작용입니다.

5. 전두엽 발달 상태 예측 및 진단

7~8세 무렵엔 뇌의 '관제탑'이라 불리는 전두엽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며 감정 조절과 사회성을 배우는 시기입니다. 위와 같은 환경은 전두엽 발달에 다음과 같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감정 조절 능력 저하: 애착 결핍은 전두엽의 안와전두피질(Orbitofrontal Cortex) 발달을 저해합니다. 이는 나중에 충동 조절 장애나 감정 기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회적 뇌(Social Brain)의 위축: 타인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전두엽 기능이 충분히 자극받지 못해, 또래 관계에서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거나 눈을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는 등 사회성 발달 지연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만성 스트레스 반응: 엄마를 볼 때 느끼는 긴장감은 코르티솔 수치를 높여 전두엽의 성장을 방해하고, 뇌가 항상 '위험 모드'에 있게 만들어 주의력 결핍(ADHD) 증상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아이의 상처받은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엄마와의 짧은 만남에서도 '눈 맞춤''정서적 반응'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 녀석의 멋진 엄마 대 불쌍한 우리 엄마


벌써 저만치 엄마는 마을 사람들이 쌍둥이네라고 부르는 아저씨 집에 거의 다 도착이다. 쌍둥이 언니네는 식구도 많고 소도 많다. 쌍둥이 언니와 그 아래로 또 언니 그리고 나와 동갑인 녀석 또 그 아래로 여동생까지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는 집이다. 쌍둥이 언니들은 중학생이라 나와 녀석이 보기에도 엄청 어른 같아서 친해지기는 조금 어렵다. 두 번째 언니도 키가 큰 게 꼭 중학생처럼 느껴져 말을 걸기가 쉽지 않다. 대신 녀석과 그 여동생과는 같이 술래잡기와 비석치기도 하는 제법 친한 사이다.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같이 지냈고 유치원과 국민학교 동창이다. 녀석네는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에 다섯 남매까지 삼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다.


거기다 집 옆에 있는 우사에는 꼭 거대한 달마티안같이 생긴 우유가 나오는 젖소들도 아주 많다. 한 스무 마리도 넘는 것 같다. 솔직히 녀석네 집에 도착하기 몇 미터 전부터는 젖소들의 똥 냄새 오줌 냄새가 진동한다. 그래서 녀석네 집안에 들어가 본 적은 몇 번 안 된다. 젖소들이 산다는 우사에는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 우사에 가려면 녀석네 집 근처에서 맡은 똥 냄새 오줌 냄새보다 백 배는 더 심한 걸 참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젖소들이 몸을 움직이기라도 하면 분명히 그 불똥이 아니 그 똥과 오줌이 나에게 튈 것이 빤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직 그런 대범함은 없는 것 같다. 젖소가 궁금하지만 가까이에서 보는 건 웬만한 용기 없인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녀석네 엄마는 정말 용기가 대단하시다.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큰 녀석의 엄마가 젖소에게 먹일 여물이 든 수레를 끌고 우사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자주 본다. 나는 녀석네 엄마가 정말 멋지고 씩씩한 아줌마라고 생각하곤 했다. 마음속의 우상이라고나 할까 그런 것처럼 말이다.


녀석이 내 친구라 부끄러워서 아직 아줌마에게 내 마음을 말하지는 못했다. 왠지 친구 엄마를 동경한다는 게 꼭 그 녀석처럼 엄마를 갖고 싶은 마음처럼 보일까 봐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아무튼 그래도 내 친구인 그 녀석 엄마는 참 멋지다.

녀석의 아버지가 내 눈에는 용맹한 전사 같다. 발부터 어깨까지 온몸이 한 번에 들어가는 특별한 복장을 하고 우사에서 아주아주 고약한 소 똥 냄새 소 오줌 냄새와 맞서 싸우는 모습이 그렇다. 인내심이 보통 아닌 강한 용사만이 매일매일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녀석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다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주변에는 모두 논농사 밭농사 농사짓는 분들만 계시다. 그런데 녀석네 부모님은 우리 마을에서 매우 독특한 일을 하신다. 어린이에게 좋다는 우유를 만드는 일을 하다니 그건 정말 아무나 할 수 없지 않은가. 우유를 많이 마시는 어린이가 키도 크고 몸도 튼튼해진다고 어른들은 말씀하신다. 어린이가 잘 자라야 우리나라가 좋은 나라가 된다고 교회 목사님도 말씀하셨다. 어린이를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일을 하는 우리 마을의 유일한 어른들이 녀석 어머니와 아버지다. 그래서 내 생각엔 그 녀석의 부모님이 참 훌륭한 분들 같다. 그런 부모님의 아이인 녀석이 가끔씩 부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모든 부모님이 꼭 우유를 만드는 일을 하진 않아도 된다. 부모님은 같이 살면서 같이 밥 먹으면 된다. 부모님이 같이 산다면 집에서 아무리 지독한 소 똥 냄새 소 오줌 냄새가 난다 해도 그 집이 좋을 것 같다. 엄마가 끓여주는 구수한 된장찌개 하나면 고약한 냄새 따위는 참을 수 있을 것 같다. 외할머니 된장찌개도 맛있지만 엄마 된장찌개가 먹고 싶은 날도 있는 거니까.

나는 한 번 생각에 빠지면 거기서 빠져나올 줄도 알아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지금도 녀석 집에 다다른 엄마를 주춤주춤 쫓아가는 중인데 그 사이 별생각을 다 했다.


이번엔 녀석의 할머니가 먼저 엄마를 반긴다. 집 옆에 딸린 밭에서 김매던 녀석네 할머니는 엄마를 보자마자 호미며 장갑을 죄다 던지곤 달려오신다.

녀석의 할머니는 한 오십 보 떨어져 뒤에 서 있는 나를 힐끔 보고는 눈도 자꾸 깜빡깜빡하신다. 옷소매로 코까지 닦으면서 나 한 번 엄마 한 번 번갈아 보시곤 아이고 소리만 반복하신다.

석의 할머니도 망태 할아버지처럼 똑같이 하신다. 당신 손을 엄마 손등 위에 올리고 비비고 비비고 또 툭툭 치신다. 옷소매로 닦던 눈물과 콧물까지 조금 묻은 것 같은 손을 엄마 손등에 자꾸 비빈다. 또 갑자기 녀석네 할머니가 엄마를 안아준다. 아까 그 눈물 콧물 묻은 손으로 엄마 어깨와 등을 쓰다듬고 두드리고 쓰다듬고 두드리고 하신다. 이번엔 갑자기 엄마가 운다. 녀석의 할머니 품에서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처음 녀석네 밭에 왔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상상도 못 해서 엄마에게 다가가야 할지 그냥 여기 서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냥 엄마가 우니 나도 눈물이 난다. 엄마도 나랑 같은 마음인 게 느껴져서 그냥 눈물이 난다. 엄마도 나처럼 똑같이 아픈 마음이었다니 안심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으면서도 슬프고 마음이 기쁘면서도 아프다. 그리고 엄마도 나처럼 불쌍한 것 같다.


숨죽여 눈물을 흘리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녀석이 집 현관문을 열고 나와 빼꼼히 본다. 나는 무슨 도둑질이라도 하다 발각된 사람처럼 급히 두 손으로 얼굴을 닦는다. 눈물을 들키면 어쩐지 창피할 것 같다. 엄마 없을 때는 엄마 있는 아이처럼 씩씩하더니 엄마가 오니까 울다니 녀석이 날 얕게 잡아 볼까 봐 싫다. 아니 이 까무잡잡 꼬맹이 골목대장 녀석한테 불쌍한 아이로 보이는 건 정말 싫다. 나는 엄마랑 같이 안 살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나를 불쌍한 아이 취급하는 건 왠지 비참할 것 같다.


물론 운동회 날 소풍날 꼭 오시는 엄마가 있는 녀석이 엄청 많이 부럽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슬퍼하는 거랑 남이 나를 불쌍하게 보는 건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그러니 녀석이 오늘 나를 봤다고 해서 내가 불쌍한 아이라는 소문이 퍼지진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있는 힘껏 눈썹을 들썩이고 눈도 찌푸려가며 입술까지 깨물면서 녀석을 노려본다. 마침 윗도리가 하얀 속옷 차림이었던 녀석도 깜짝 놀란 듯 현관문을 쾅 닫곤 들어가 버린다.


* 엄마의 부재와 정서적 소외를 겪으며 자란 아이는 복합적인 심리적 고통과 뇌 발달상의 특징을 보일 가능성이 큽니다.


1. 아이의 심리 상태 분석

아이의 심리는 '결핍에 대한 자각'과 '부정적 사회 비교'로 인해 매우 불안정할 수 있습니다.

만성적 공허감과 정서적 탈착: 자신을 돌보지 않는 엄마에 대해 느끼는 '대면대면함'은 단순한 낯섦을 넘어선 정서적 단절(Emotional Detachment)을 의미합니다.

상향 사회 비교에 따른 자존감 하락: 친구의 엄마(열심히 살며 아이를 지지하는 존재)와 자신의 엄마를 비교하며, 아이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낮은 자존감과 자기 비하를 겪게 됩니다.

박탈감과 억압된 분노: 아빠가 없어도 엄마의 사랑을 받는 친구의 처지를 보며 강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자신을 방치한 엄마와 그런 상황을 만든 환경에 대해 깊은 분노와 원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전두엽 발달 및 손상 상태 예측

지속적인 정서적 방임과 스트레스는 뇌의 '사령탑'인 전두엽(Prefrontal Cortex)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전두엽 기능 저하 (Underactivation): 만성적인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 노출은 전두엽의 활성도를 낮추어 주의집중력 저하, 학습 능력 감소, 충동 조절 장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감정 조절 회로의 불균형: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는 과활성화되는 반면, 이를 제어해야 할 전두엽의 연결망은 약화된다. 이로 인해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감정을 다스리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구조적 변화 가능성: 심한 경우 전두엽의 회백질 부피가 감소하거나 피질의 두께가 얇아지는 등 물리적인 발달 지연이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정서적 지지를 줄 수 있는 대상과의 관계 회복과 전문적인 심리 상담을 통해 뇌의 유연성을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못 다 쓴 글; 이 아이가 저입니다. 말씀 못하실 사정이 엄마에게 있으셨음을 제가 어렸을 때는 몰랐습니다. 가족 친지 어른들 그 누구도 어렸던 제게 진실을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어렸으니까요. 하지만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어둡고 무거운 감정들은 고스란히 다 느끼며 365일을 지냈습니다. 어른들은 몰라요. 아이가 어른들 사이에서 눈치 보며 모든 상황을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이 그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요. 눈치 주지 않아도 몸과 마음이 저만치 앞서가서 먼저 눈치 보는 아이로 자라서는 안 됩니다.

마흔일곱에 가까운 저는 지금도 엄마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기다리지만, 엄마에게 먼저 연락드릴 수 없습니다. 눈치껏 제 입장과 처지를 알고 눈치껏 엄마의 상황을 짐작하기에 가슴이 아프지만 참고 견딥니다. 아이였을 때부터 엄마에 대한 그리움 참기 대회가 있다면 세계최강 금메달감이었을 저인데, 엄마가 보고 싶은 건 참고 또 참아도 어느 순간 갑자기 터집니다. 어릴 때의 저처럼 슬픔이 외로움이 그리움이 손 쓸 수 없는 파도처럼 밀고 들어옵니다. 그런 날 제 건강한 다이어트는 물거품이 되지요. 지금은 글에 빠져 용케도 참고 있습니다.

이유는 저도 모르지만 글을 쓰는 시간은 너무 빨리 흘러가고 다행히 배고픔을 잊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던 버릇이라 그런지 모릅니다. 글만 쓰면 도둑 백 명이 다녀가도 모르게 빠져들곤 했습니다. 밥도 잠도 다 잊을 만큼 글이 제겐 시간 도둑이었죠.

외롭고 보고 싶어서 아픔을 잊으려 꾸깃꾸깃 쓰던 일기처럼 제 안에서 잠자던 혼담이 너무 많았나 봅니다. 지난날들의 상흔이 그깟 아픈 감정이란 파도에 쉬 씻기는 모래성이 되지 않도록 진심으로 쓸 것입니다. 브런치의 성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치유의 걸음을 딛으며 피로연에서의 저처럼 마음껏 춤출 것입니다. 언어의 담력, 그 무한히 따뜻한 글결을 믿고 기대어 서면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브런치만 있다면 단단히 나아가겠습니다. 저보다 깊은 트라우마로 이 순간에도 아파하는 분들이 있다면 조금씩 아물어가길 기도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어린아이 때도 기도는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하길 바라요. 모두 서로 덜 아프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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