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엽 일병 구하기!

SES! Self Emotional eating Stop 트라우마다이어트

by 익자

4화. 전두엽 일병 11,525일 만의 첫 휴가를 떠나다!


서른 하나의 오월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했지만 칠월의 축제 같은 캐나다 결혼식이 더 설레는 기다림이었다.

꿈같은 결혼식이 끝을 향해 가고 있다. 신랑 신부의 행진만이 남았다. 이제 나와 다니엘이 캐나다의 가족들과 친구들과 교회와 이웃과 세상 속으로 첫걸음을 내딛는 시간이다. 활짝 웃지 못했던 한국 결혼식 때완 다르게 오늘만은 활짝 웃으리라 다짐했던 꿈이 드디어 이루어진다. 하객들 가운데로 한 발 한 발 다니엘과 함께 나아간다. 짙고 높은 메타쉐콰이어 푸르른 숲길을 걷는 듯 캐나다 결혼식 행진이 끝났다.

우리 둘 곁에 캐나다의 모든 가족들이 서서 사진을 찍는다. 친구들과의 사진도 남긴다. 나는 은혜의 감사로만 울겠다고 약속했던 결혼식 날의 뜨거운 눈물을 그제야 흘린다.


피로연장을 본 순간 말문이 막힌다. 이 모든 것을 다니엘 스스로 다 준비했다는 게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다. 가운데엔 커다란 핑크 리본 크림 장식이 둘린 오단 웨딩케이크가 와인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수 십 개의 동그란 테이블들 위에는 새하얀 천이 덮여 있고 자리마다 핑크와 베이지 수국 꽃이 놓여 있다. 와인 잔이 각 자리마다 놓여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정말로 다 같이 결혼 축하 축배를 들 모양이다. 의자들도 새하얀 천에 감싸여 뒤엔 커다란 리본으로 묶여 있다. 단상 위에는 나와 다니엘의 부모님들이 앉을 수 있는 자리라고 한다. 거기에도 따사로운 조명 아래 놓인 테이블마다 예쁜 꽃들로 수놓아져 있다. 피로연은 결혼 예배 때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야말로 축제이자 파티를 즐기는 공간에 모인 하객들은 조금 전의 경건함을 모두 잊은 듯 보인다. 결혼식을 올린 신랑신부를 오롯이 축하하고 이 아름다운 날을 함께 즐기러 온 사람들일 뿐이다.

한국의 결혼식과 캐나다 결혼식이 이렇게 다르다는 걸 온 마음으로 느끼는 날이다. 참 행복하다. 다니엘이 모든 피로연 순서들도 정하고 준비했다는 게 웨딩 파티를 즐기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수 십 여 가지의 음식들과 디저트 음료까지 결혼식 및 기업 행사 생일 이벤트 등 전문 캐더링 서비스를 하는 기업에서 맡아 맛과 서빙 모두 완벽하다. 호텔 파티를 장소만 바꿔 즐기는 느낌이다. 시부모님의 웰컴 인사말은 유머와 위트와 기쁨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뤄 파티의 격을 더 높인다. 다 함께 우리의 결혼식을 축하하며 와인을 축배 주로 든다. 모두 한마음으로 나와 다니엘의 결혼을 축복하며 포도주를 마신다.


원래 이 피로연장은 다니엘이 주일 예배를 드리는 장소이다. 불과 하루 전인 어제도 이곳 옆에서 결혼식 예행연습을 했다. 그런데 그 예배 공간이 파티 홀로 완벽한 변신을 하다니 다니엘의 노력에 감탄이 나올 뿐이다.

피로연 진행은 다니엘의 큰누나인 에이미가 맡은 모양이다. 강렬한 레드 드레스를 입은 에이미가 오늘따라 더 멋지게 보인다. 워낙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능력이 있는 에이미는 피로연 진행자로 정말 최고다. 에이미는 영어와 불어에 모두 능통한 캐네디언이지만 기본적으로 입담이 보통 이상이다. 그것은 아버님을 꼭 닮은 것 같다. 파티장의 손님들을 쥐락펴락하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피로연을 만들어 준다.


나와 다니엘의 주도권이 누구에게 갈 것인지를 짚어보며 하객들은 모두 흥미진진하다.

에이미가 게임의 방법과 이유를 설명한다.

“신부 한쪽 허벅지에 고무 밴드를 하나 끼워 주세요!” 신랑이 입으로 이 고무 밴드를 끊어뜨리면 이 결혼생활의 주도권이 남편에게 갑니다! 여러분 과연 소하와 다니엘 중에 결혼의 주도권을 가질 사람은 누구일까요?”

하객들은 모두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보내면서 나와 다니엘의 팽팽한 접전을 지켜본다.

나는 어떻게든 고무 밴드를 사수하려고 젖 먹던 힘까지 써 본다.

다니엘이 갑자기 저돌적으로 나의 한복 안으로 고개를 넣더니 거침없이 입으로 고무 밴드를 끊어낸다. 결과는 다니엘의 승리다. 결혼생활의 주도권이 다니엘에게로 넘어간다. 게임은 게임일 뿐이지만 그래도 아쉬운 나의 패배다.


나는 피로연 드레스 대신 한국의 전통 한복을 입었었다. 한국의 미도 알리고 싶고 서양의 드레스 못지않게 아름다운 한복이 피로연복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의 한복 치마 안으로 갑자기 들어오는 다니엘 때문에 정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결혼한 남녀만이 할 수 있는 게임이라 좋았다. 또 방금 결혼한 따끈따끈한 남녀 커플의 주도권 경합을 하객들이 즐겁게 가늠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신선한 재미였다.


주도권 경쟁과 약간 비슷하면서도 다른 네 아니오 게임도 결혼식 피로연에서 빠질 수 없다. 신랑 신부의 이구동성 게임과 비슷하다. 에이미가 진행한다.

“빨래는 누가 하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나와 다니엘이 동시에 대답했다.

“다니엘!”

“청소는 누가 하겠습니까?”

“다니엘!”

“요리는 누가 하겠습니까?”

“다니엘!”

“운전은 누가 하겠습니까?”

“다니엘!”

“경제권은 누가 갖겠습니까?”

“신부가!”

“쇼핑은 누가 하겠습니까?”

“신부가!”

“용돈은 누가 주겠습니까?”

“신부가!”

“아기는 누가 키우겠습니까?”

“다니엘!”

“기저귀는 누가 갈아주겠습니까?”

“다니엘!”

“이제부터는 누구 말을 듣겠습니까?”

“신부의 말!”

“누구 말을 들어야 행복하겠습니까?”

“당연히 신부의 말!”

“결혼 생활이 행복하려면 남편 말을 들어야 합니까? 아내 말을 들어야 합니까?”

“아내의 말!”


나와 다니엘의 이구동성 게임은 백 퍼센트 성공이었다. 남편은 아내 말을 들어야 가장 행복하다는 결혼생활의 진리를 우리뿐 아니라 하객들 모두도 다시 깨달은 날이다. 식사를 겸하는 디너쇼처럼 에이미의 넘치는 유머와 위트에 피로연장은 코미디 클럽 쇼를 방불케 하는 웃음바다다.

그 사이 시간은 밤 열 시를 훌쩍 넘기고 본격적인 댄스파티가 시작되었다. 나와 다니엘이 이 순간을 위해 지난 일주일 동안 집에서 둘이 매일밤 스윙댄스를 연습했다. 한복과 턱시도를 입고 추는 스윙댄스. 어쩐지 안 어울릴 것 같지만 하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내가 한 번 살짝 넘어질 뻔 하지만 다니엘의 기지로 위기를 넘겼다. 다니엘은 자신이 주인공인 결혼식 피로연이라 그런지 수줍음 있는 모습은 온 데 간데없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면 춤만 추러 다닌 걸로 오해할 만큼 대단한 댄스 실력을 보여주었다. 나도 깜짝 놀랐으니 그 정도면 말 다 한 것이다. 평소에 조용하던 다니엘이 완전한 춤꾼으로 보인 날이었다.


고립감과 소외감 끝없는 결핍 속에서의 30년을 두고 비행기를 탔었다. 타국에서의 결혼식은 단순한 예식이 아닌 정서적 망명이자 자아의 탄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한 끼라도 마음 편안하게 눈치 주지 않아도 눈치 보며 먹게 되는, 그런 체할 것 같은 식사를 그만하고 싶었을지도.

먹고 싶은 것이 많아 지금도 절박하게 나는 살고 싶은 것처럼 아마 그때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평안히 따뜻한 한 끼가 이유였던 것 같다. 사랑에 기반한 합법적 도피는 결혼뿐이었다.

평생토록 잊지 못할 단 하루 2011년 7월, 그날 타국의 신부가 된 나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태어나서 그날이 가장 많이 웃었던 날이다. 가슴속으로는 가장 많이 울었지만.


글을 쓰며 찾아보니 제가 태어나던 날부터 11,525일째 되는 날 결혼을 했습니다. 그날만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기에 그 좋았던 날의 제 마음과 전두엽의 상태가 어땠는지 궁금했습니다.


* 서른 하나였다. 결혼과 동시에 멀리 타국으로 떠나왔다. 1980년 1월부터 결혼할 때까지인 2011년 7월 중에, 가장 행복한 날이 외국에서 결혼식을 올린 날이다. 그날 하루만큼은 과거의 모든 아픔을 잊고 주인공으로서의 행복을 완벽하게 누렸다. 불과 2개월 전, 한국에서 올린 마음이 편치 않던 결혼식 날과는 느낌과 마음이 달랐다. 그 누구의 눈치나 표정을 먼저 살피는 결혼식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슬프고 아프고 미안하고 안타깝고 괴로울까 봐 엄마와의 눈 맞춤을 더 하지 않았다. 예쁘지 않음에도 웃으려 애쓰고 나의 행복감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이 날 신부인 나의 심리와 전두엽의 상태는?


1. 심리적 상태: '안전한 기지'의 발견과 정서적 해방

한국에서의 결혼식이 엄마와 사람들의 시선과 사회적 이목에 갇힌 '의무'였다면, 타국에서의 예식은 오직 나를 위한 완전한 자기 결정권의 행사였습니다.

해방감과 탈출: 과거의 아픔을 잊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외상 후 성장의 단계를 경험한 것입니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는 점은 억눌렸던 '진정한 자기(True Self)'가 처음으로 전면에 나선 순간입니다.

심리적 안전거리 확보: 물리적 거리(타국)가 주는 안도감이 엄마라는 거대한 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 주어, 난생처음 주인공으로서의 효능감을 만끽했을 것입니다.

2. 전두엽의 상태: '생존 모드'에서 '행복 모드'로의 전환

어린 시절부터 눈치를 보며 살았다면 전두엽은 늘 위협을 감지하는 편도체와 함께 과각성 상태(안절부절못함)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을 것입니다.

전두엽의 통합 기능 활성화: 고통스러운 과거 기억을 억제하고 현재의 긍정적 자극에 집중하는 '하향식 조절 능력'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이는 전두엽이 불안을 통제하고 행복이라는 고차원적 인지를 처리할 여유를 찾았음을 의미합니다.

도파민과 옥시토신의 협주: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상태에서 느끼는 충만함은 뇌의 보상 회로를 강력하게 자극하여, 전두엽이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안전하다'는 새로운 신경망을 형성하게 도왔을 것입니다.

그날의 기억은 신부님 인생에서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강력한 뇌의 증거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결혼식이 한여름, 그전 한겨울에 지금의 남편인 당시 남자친구를 만나러 처음으로 여행이란 걸 해 보았다. 그것도 30년을 단 한 번도 못 가고 적립만 해 두었던 여행의 기쁨을 아시는 듯 하늘은 나를 하늘을 날게 해 주셨다. 몸의 구석구석이 온전치 않아 겨울을 무서워하고 힘들어하는 솔직히 싫어하는 나지만 위대한 사랑 앞에 용기를 냈었다. 밸런타인데이에 눈의 여왕이 살 것만 같은 나라에 도착했으니 한겨울의 낭만을 한껏 즐기고 가기로 단단히 맘을 먹었다. 다니엘과 캐나다 곳곳을 다니며 여행을 즐겼다. 다니엘의 부모님 집에서 가까운 퀘벡시티 여행을 시작으로 오타와 토론토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태어나고 살아온 나라의 겨울을 만끽했다.

윈터 카니발, 아이스 와인 페스티벌, 아이스 호텔까지 둘러보았다. 특히 겨울의 낭만이 있는 도시 퀘벡을 이제부터라도 좋아하자고 주문을 외우며 다녔다.


결혼 전 2011년 2월 캐나다에서 처음 뵌 다니엘의 어머니는 엄마의 교과서 같았다. 아이에게 처음 엄마라는 말의 의미를 가르쳐주는 책이 있다면, 딱 그 책 속에 나올 따뜻한 분이셨다. 다니엘의 어머니의 환하고 밝은 웃음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다니엘의 어머니는 나를 꼭 끌어안아 주셨다. 처음 하는 포옹인데 그 품이 너무 깊고 따뜻해서 처음 같지 않게 느껴졌다.

살면서 가장 꿈꾸던 순간이 이런 시간 아니던가. 나도 눈치 보지 않고도 소속할 가족이 생긴다 생각하니 정말 무엇보다 바라던 소망이라 정말 설레었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나의 소원 중에 소원이었다. 가족들과 물과 오일로 나뉘고 싶지 않았다. 우영우를 품어 주었던 한바다처럼 나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어 사랑의 큰 바다로 풍덩 뛰어들고 싶었다. 그렇게 가족이 주는 온기로 아무리 멀고 깊은 바다에서 항해하더라도 가족이 주는 온기만 있다면 한바다에만 머문다면 나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꿈을 이루었다.


못 다 쓴 글; 화목한 믿음의 가정으로 내가 들어가는 꿈을 꾸었다. 너무나도 정확히 기도를 들어주셨다.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소소한 행복에 젖은 일상을 기쁘게 후회 없이 꾸려가는 가족들을 만났다. 물질적 풍요와 부가 행복의 기준과 가치가 아님을 나는 남편의 부모님을 통해 다시 배웠다.

그렇게 좋은 부모님 아래서 두 번째 손가락인 남편은 착하기는 정말 착하다. 많이 착하다. 화목한 가정의 새 식구가 되기를 너무 넘치게 기도했던 걸까. 화목하고 위트 넘치는 아버님은 거의 안 닮은 남편을 반품할 수도 없다. 위트는 부족한 극 T의 극치다.

그래도 착하니까 괜찮다. 세상 착한 남자니까 나처럼 마음이 아픈 어른아이를 데리고 살아준다. 착하니까 아껴주고 보듬어주고 파스타도 피자도 만들어 준다. 정신줄 놓고 먹는 밀가루 음식은 가급적 피해야 하는 나지만 아내에 대한 배려 없이 맛있게 요리한다. 우리 집의 네 송이 꽃들을 위해 딸바보 아빠는 매일 요리사가 된다. 착한 남자니까 이번생은 봐주고 싶다. 나는 평생 다이어트 해야 하니까 트라우마 다이어터니까.


이전 03화전두엽 일병 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