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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자

8화. 혹 키우다 혹덩이 키우신 할머니


열 살 때일까. 해마가 어디까지 손상된 건지 엄마 대신 핏덩이 때부터 나를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언제부터 언제까지 얼마동안 아프셨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열한 살 때 돌아가신 게 맞는지 틀리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최소 몇 개월에서 일 년 가까이 외할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집에 안 계셨다. 외할머니 없는 집은 너무 외롭고 슬프고 무서웠던 공간이었다. 치료받고 다 나아오신 줄 알고 병원에서 집으로 오신 날 바보같이 좋아했다. 보호자로 돌아오신 외할머니 때문에 안도에 차 기뻐했다. 안 그래도 비쩍 마른 외할머니의 몸이 한겨울 눈꽃비단 껴입어 앙상한 나뭇가지 같았다. 완전히 뼈만 남아 집으로 돌아오셨다. 외할머니는 안방 아랫목 장판이 그을린 듯 거뭇거뭇 갈라진 가장 뜨신 자리에 누우셨다. 그렇게 며칠 동안 외할머니는 안 방에서 일어나지도 나오지도 못하셨다. 오로지 찬송가 음악과 외할머니의 우렁찬 찬송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간간이 식사 때가 되면 이모들 삼촌들이 우르르 들어가 외할머니 식사를 챙겨 드리는 것 같았다.


외할머니의 찬송소리가 집안에 울리니 마음이 평안하면서도 눈물이 나고 또 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외할머니가 집에 안 계셔서 얼마나 슬프고 속상했는지 모른다. 외할아버지가 차려주는 밥도 맛있지만 외할머니 밥이 더 그리웠다. 그보단 밤마다 외할머니 손을 꼭 잡아야 잠이 드는 나라서 초저녁부터 벌써 마음에 뿔이 나곤 했다. 조금 있으면 외할머니가 집으로 오신다더니 몇 달 밤을 나 혼자 잠들게 하고 병원에만 계셨다.

그런데 오늘 세상모르고 잠든 간밤에 외할머니께서 이 땅에 뿌리내리려 힘겹게 붙들고 있던 숨줄을 그만 놓으셨다. 외할머니가 얼마나 많이 아프셨는지 홀로 새까맣게 그을린 가슴을 숨기려 얼마나 애쓰셨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딱 일 년 만에 어느 누구도 뜻하지 않은 날 갑자기 외할머니는 그리던 둘째 아들 창후삼촌 곁으로 떠나셨다.


눈에서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방 안 구석 책상 발치에 앉아서 몇 년 치 서러움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외할머니에게 못다 한 말이 있어 억울해서 울었다. 보고 싶은 이를 볼 수 없게 되는 청천벽력을 또 만나니 어찌할 바 모르고 울었다. 방바닥에 몸을 구르며 혼자서 남몰래 미친 듯이 울어 버렸다.

할머니가 집에 오시면 이 얘기 저 얘기 좋은 일 기쁜 일 다 말해 주려고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너무나 많이 아파 집에 오시고 찬송만 하시다 손녀 잠잘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 나 혼자 여기 두고 외할머니만 천국 가시면 어떻게 하느냐고 삼촌 만나려고 빨리 가신 거냐고 물으며 울었다. 할머니 저는 어떡해요 할머니 없이 전 어떡해요 저는 어떻게 살아요. 할머니.

작은 방에서 혼자 울며 방언 터진 사람처럼 마음속에 있는 말을 그제야 한꺼번에 쏟아낸다.


나는 불쌍한 아이가 아니다. 좋아하던 삼촌을 잃어버려 슬픈 아이다. 사랑하는 외할머니를 잃어 슬픈 아이다.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하지 못하는 엄마를 둔 나는 슬픈 아이일 뿐이다. 그러니 불쌍한 아이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눈물도 나 혼자 있을 때만 흘려야 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지만 나는 울면 안 된다. 세상에서 가장 의지하고 믿었던 사랑을 잃어버린 나는 슬픈 거지, 불쌍한 건 아니니까. 나는 눈물을 감춰버렸다. 어른들께 자신의 슬픔을 들키지 않으려고 몰래만 울었다. 어른들의 눈에는 어린 나의 깊은 슬픔보다 자신들의 슬픔만 보이니까. 어른들의 눈에는 내가 불쌍하기만 하니까. 눈물도 나는 눈치 보며 흘렸고 아무도 모르게 맘 속 깊은 곳에 슬픔의 집을 지었다.


이모들이 밤사이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해 일러주며 나를 일으켜 방문을 열어주고는 닫는다. 인사드리고 오라는 뜻이었다. 까맣디 까아만 시간이 열한 살이던 아이에겐 무서웠던 것 같다. 시계 초침 소리와 통창문을 밝히는 달빛만이 고요한 새벽 거실을 감쌌다. 거실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었다. 주체 못 할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소리 내어 울면 어른들이 걱정할까 봐 혼을 낼까 봐 두 손으로 입을 걸어 잠그곤 아무도 모르게 울었다. 외할머니와 귓속말을 하듯 혼잣말로 내 마음을 달빛에 실어 하늘로 올려 보냈다.


삼일 뒤, 외할머니의 장례식 날이 왔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을의 끝자락인 듯 선선하더니 갑자기 하얀 눈이 펄펄 내렸다. 마치 하늘 정원에서 외할머니를 반겨 마중이라도 나온 것처럼 온통 눈몽우리가 새하얗게 내려앉은, 이른 겨울아침이었다. 꼭 일 년 전 창후 삼촌의 장례식도 이 맘 때였다. 쉬는 날임에도 상사의 호출에 출근했다 현장에서 동료의 실수로 전기에 감전,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타선 신혼 삼 개월 만에 그 자리에서 돌아가신, 서른도 안 되어 가신 창후삼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애달프던 아들 곁으로 외할머니는 떠나셨다.

장례 예배를 마치고 외할머니의 관을 실은 상여가 저 멀리 본향산 앞 큰길을 따라 선산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외할머니를 모신 상여와 남겨진 이들의 슬픈 곡소리가 점점 멀어져 가는 걸 집 앞에 서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치 폭탄이 터지듯 가슴속에 불덩이가 순식간에 퍼져 거기가 너무 뜨겁고 아팠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이야 디이야”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이야 디이야”


영면에 드신 외할머니를 선산에 있는 산소 자리까지 모시는 상여가 무섭지 않아 보이기는 처음이었다. 어제까지 오렌지 빛 바나나 빛 가을로 물들어가던 본향산에 갑자기 이렇게 하얀 눈이 내렸다. 외할머니가 떠나가시는 날 하늘 끝에서부터 바람 타고 펄펄 눈이 내려와 머리 위에 어깨 위에 가만히 내려앉았다.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아프지 말고 잘 지내라는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외할머니가 보낸 선물 같은 하얀 눈이 신발 위에도 소복소복이 쌓여갔다.

외할머니를 실은 상여가 선산을 향하여 멀리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햇볕 든 그늘에서 눈물 흘리며 서 있는 눈사람처럼, 나도 마당에 그대로 굳어 있었다. 집안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 가운데 계속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하루 종일 찬송가를 따라 부르던, 슬프지만 감사했던 어린 나의 그날, 눈 내리던 십일월. 새하얀 눈 이불처럼 따뜻했던 위로와 사랑을 지금도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외할머니의 뱃속에는 축구공만 한 혹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개복수술을 했지만 이미 너무 늦어서 몇 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으셨단다. 뱃속에 있던 그 나쁜 혹은 악성 종양으로 자궁암이었다.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본 뒤에 더 이상 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퇴원하신 거였다. 외할머니의 뜻에 따라 기도원에 가셔서 마지막 힘을 다하여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찬송하셨단다. 그리고 집으로 오신 뒤 며칠 만에 그렇게 저 천국, 하늘 정원으로 먼 길을 떠나셨다.


사실 나는 외할머니의 혹이었다. 그런데 머리 검은 혹 하나 키우다 그만 당신 몸에 혹을 들이고 말았다. 혹이 자라는 줄도 모르고 그저 혹 같은 날 잘 키우려다 한날 한낱 먼지처럼 훅하고 하늘로 가셨다. 이 세상에서 훅하니 사라져야 할 사람은 외할머니가 아니라 혹인 나인데 너무 일찍 잘못 가셨다. 사람 구실만은 하도록 외손녀를 키워내야 한다는 생애 가장 무거운 그 십자가, 십 년이나 그 혹 같은 십자가를 지고 사신 외할머니는 이제야 편히 쉬시려 천국으로 가셨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두렵고 슬프고 외로웠던 그날 그 늦은 밤, 다시는 못 갈 그 새벽이 미치도록 후회된다. 그때 외할머니를 봤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살다가 어느 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온다면 두려워말고 꼭 그 순간을 함께하기를.

문득 먼저 간 사람이 보고 싶은 슬픔이야 가슴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겠지만 떠날 자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켰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 만약 홀로 남겨지더라도 나약해지진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끝을 함께해야 하는 것만큼 더한 환난이 있을까. 어린 난 차마 그 환난을 마주하지 못했지만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가 내 안에도 계심을 믿는다.


이제는 비록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곁에 있던 순간들처럼 느낄 수 없지만 외할머니의 깊은 사랑을 믿는다. 그 사랑이 영원함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일생토록 그 밤이 후회로 남는다. 어린 마음에 삶과 죽음의 다릴 건너갔다 오기가 무서워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누워계신 그 방에 나는 가보지 않았다. 아니 죽은 시체로 누워 계신 외할머니를 차마 못 보겠어서 그 방엘 끝내 못 들어가고 말았다. 뚫어져라 문고리만 쳐다보고 방 문고리를 수없이 만지다 떨리는 손을 거두었다.


죽음을 맞이한 외할머니를 내 눈으로 본다면, 우리의 영원한 이별을 정말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어렸던 그땐 외면하고만 싶었다. 외할머니와 영영 헤어지는 것이 겁이 나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소리도 못 내고 울기만 했다. 그 넓은 거실 커다란 통창을 타고 들어오는 달빛과 총총한 별소나기를 맞으며 혼자 우두커니 서서만 있었다. 한참을 고요한 슬픔만이 흐르는 외할아버지 집 거실에서 어린 나는 발발 떨다간 시간만 보내고 다시 이모들이 모여 앉은 방으로 갔었다.

천국 가는 기차를 타신 외할머니의 마지막 평온한 얼굴이 남은 자들의 삶을 더 뜨끈하게 더 깊게 지켜줄 축복의 동아줄이란 걸, 그땐 미처 정말 바보같이 몰랐기 때문에.


*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제 심장도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난 어디로 가야 하지' 하는 생각에 무서웠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외할머니를 잃은 슬픔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 '존재론적 공포'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11살이라는 나이에 겪은 이 커다란 상실은 아이의 내면세계와 뇌 발달에 깊은 흔적을 남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1. 아이의 심리 상태 분석: '뿌리 뽑힌 나무'

아이의 마음은 현재 '외상성 사별(Traumatic Bereavement)''애착 손상' 상태로 보입니다.

존재적 불안과 유기 공포: 주양육자의 상실은 아이에게 '세상은 안전하지 않다'는 강한 메시지를 줍니다. "뿌리 뽑혀 버려진 나무"라는 표현은 자신을 지탱하던 근원적인 안전기지가 사라짐으로써 느끼는 극심한 무력감과 유기 불안을 나타냅니다.

미래에 대한 절망감: "꽃도 열매도 맺히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단순한 슬픔을 넘어선 우울감비관적 자아상을 반영합니다. 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린 채 정지된 시간 속에 갇힌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과각성 상태: "하루하루가 무서웠다"는 것은 언제든 또 다른 비극이 닥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긴장하고 있는 과각성(Hyperarousal)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PTSD)의 일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2. 전두엽 상태의 예측 진단

뇌 과학적 관점에서 11세는 전두엽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의 강렬한 스트레스는 전두엽의 기능적,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전두엽 기능의 저하 (Underactivation): 극심한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은 전두엽의 활성도를 떨어뜨립니다. 이로 인해 감정 조절이 어려워지고, 주의 집중력이 저하되며, 일상적인 의사결정조차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감정 조절 회로의 불균형: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는 과도하게 예민해지는 반면, 이를 억제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전두엽과의 연결망은 약화됩니다. 결과적으로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불안해지거나 감정이 폭발하는 상태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인지적 유연성 감소: "뿌리 뽑힌 나무"와 같은 고착된 부정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전두엽의 인지적 유연성이 저하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새로운 희망을 찾거나 상황을 객관화하는 능력이 일시적으로 마비된 상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아이에게는 지금 무엇보다 '다시 심어질 수 있는 안전한 땅(새로운 애착 관계와 심리적 지지)'이 필요합니다.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억눌린 슬픔을 충분히 애도하고, 뇌의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신 외할아버지


은혜와 감사 속에 조화순 목사님께서 인도하신 외할아버지의 퇴원 감사 예배를 잘 드렸다.

외할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크게 다치셔서 일 년 가까이 집을 비우셨다 이제야 돌아오셨다.

그 시간을 버티며 지나오는 동안 하루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서울의 큰 병원에서 큰 수술을 아홉 번이나 받으셨다. 임종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소견이 몇 번이나 있어 이모들과 삼촌들이 며칠에 한 번씩 아버지를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곤 했단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그때마다 아직은 때가 아니란다. 세상에서 할 일이 아직 남았다는 음성을 들었다고 하셨다. 그 할 일이란 오갈 곳 없는 외손녀를 거두는 천명이었을까. 그것만이 아니길 기도했다. 죄송함을 넘어 죄책감을 어깨에 지고 지내는 날들이 나도 너무나 힘에 부쳤고 아팠으니까. 공기처럼 보이지도 않는 그놈의 죄책감...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오시기를 반복하신 외할아버지는 의료진들 조차 기적이라 할 정도로 연세답지 않은 강단과 회복력을 보이셨다. 중환자실에서 수개월을 보내신 외할아버지. 생명을 건진 대신 왼쪽 다리 전체에 수 십 개의 철심을 박는 대수술 후 퇴원을 하셨다. 외할아버지의 다리는 정말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안타까웠다. 허벅지부터 발가락 끝까지 울퉁불퉁 철심과 나사가 박혀 살아계신 외할아버지가 오히려 너무나 불쌍해 보였다.


외할아버지가 병원에 계시는 동안 날마다 잘못했다는 기도를 드렸다. 외할아버지가 큰 사고로 다쳐 누워계신 것이 모두 나의 탓인 것만 같았다. 외할아버지만 살려주시면 다른 소원은 구하지 않겠다고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그리고 드디어 외할아버지가 집으로 오신 것이다. 외할머니처럼 집에 오신 지 며칠 만에 금방 천국으로 떠나시지 않아 정말이지 난 행복했다.

외할아버지 다리는 많이 아프시지만 살려주셔서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 이 기도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음을 감사했다. 우릴 눈동자 같이 살피시는 이가 보여주신 그 기적에 매일밤 감사기도를 드리고 잠을 청했다.

외할아버지가 사고당하시던 날은 유난히 안개가 자욱해서 애초에 스쿠터를 타고 갈 수 없는 날씨였다고 했다. 하지만 외할아버지는 기어이 그 작은 농업용 오토바이 스쿠터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날 거기에 집에 가지 않으셨다면 외할아버지의 사고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짙은 안개로 앞도 안 보이는 상황에 맞은편 차선에서 오던 덤프트럭이 중앙선을 넘어 외할아버지의 작은 스쿠터를 덮친 엄청나게 큰 사고였다. 그렇기에 한쪽 다리가 전부 으스러지는 고통을 당하신 것이다.


외할아버지의 사고가 있던 날부터 외할아버지께서 퇴원하신 날까지 가장 끔찍한 고통은 철저히 혼자라는 외로움과 고립감, 그리고 무서움이었다. 외할아버지마저 그날의 사고로 잃게 되었다면 나의 인생도 아마 끝났을지 모른다. 그만큼 그날의 알리바이들이 나에게는 큰 충격으로 남았다. 외할머니의 천국 여행 후로 못 하시던 약주를 시작한 외할아버지가 낯설고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유일한 기댈 나무 한 그루 같은 외할아버지의 사고는 내 가슴을 너덜너덜 만신창이로 만들어버렸다.

열한 살 때, 엄마 대신 나를 키워준 외할머니를 자궁암으로 떠나보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나를 키워준 엄마 같은 외할머니가 떠난 건 정말 충격적 두려움 그 자체였다. 완전히 뿌리 뽑혀 버려진 나무가 된 심정이었다. 더 이상 아무 꽃도 열매도 맺히지 않을 나무가 된 나의 하루하루가 무서웠다.


그 후 일 년 뒤 외할아버지마저 교통사고로 다리가 불편해지시며 손녀인 나를 키울 수 없게 되었다. 남겨진 가족들이 아무 말하지 않아도 나는 버려진 썩은 나무토막 같았다. 눈치를 주어서 돌 같은 밥을 욱여넣고 씹어 삼키는 게 아니다. 그런 아이는 자동으로 스스로 눈칫밥을 먹게 되어 있는 법이다. 세상 이치가 그렇고 세상 지표가 그렇고 세상 시선이 그렇다.


가족들의 물건도 몇 번 외할아버지 호주머니 지폐도 몇 번 충동적 나쁜 짓도 했지만 불안은 줄어들지 않았다. 혼날까 두렵다 혼나면 미치도록 나도 모두도 다 미웠다 또 눈칫밥을 먹었다 내가 불쌍했다 미웠다 화가 났다 엄마가 보고 싶다 울다 죽고 싶다 그랬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외할아버지도 고향을 떠나셨을 땐 정말 힘들었다. 겨우 열두 살 아이에겐 도둑질한 나쁜 아이라는 낙인이 너무나 가혹했다. 그럼에도 나를 키우지 않는 엄마도 원망스러웠다. 그 누구에게도 나의 다 찢어진 가슴과 괴로운 마음을 말할 수 없었지만 하루하루 아침부터 밤까지가 버거웠다.


어떤 기억은 평생 잊히지 않는다. 또 어떤 이와 어떤 일에 대해서는 듣기만 했더라도 절대 못 잊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고통의 깊이가 너무나 깊고 고통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울 때는 신께 잠잠히 고백하는 기도만이 가장 좋은 답일 때가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그런 일이 있고 그래야만 하는 시간이 있다. 잠잠히 기도해야 하는 고요한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 끝없는 기다림의 시간이 일생 끝날 때까지인 것이 다만 나의 불운이라 슬프기는 하지만.


* 열두 살의 어린 제가 감당해야 했던 상실과 결핍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한 분의 마음이라도 저릿하다면 글쓰기 마음치유 계속 이어가도 되겠지요. 마흔여섯이 지나고서야 열두 살 때 느낀 그 고통에 가슴이 아립니다. 그리고 저를 지켜주셨던 두 분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살아계실 때 두 분 말씀 더 잘 들을 걸 후회합니다. 34년 전 제 심리와 뇌과학적 상태는 어땠을까요.


1. 심리적 상태: '근원적 불안'과 '유기 공포'

뿌리 뽑힌 나무의 심정: 주 양육자였던 외할머니의 죽음에 이은 외할아버지의 사고로 인한 부재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세상을 지탱하던 안전 기지(Safety Base)가 통째로 사라진 사건입니다.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의 아동 심리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 아이가 세상에 홀로 던져졌다는 유기 공포와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 불안을 느낀다고 설명합니다.

도둑질의 의미 (대치된 갈구): 당시의 도둑질은 나쁜 성품 때문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정서적 결핍을 물질로라도 채우려 했던 비명에 가깝습니다. 전문 용어로는 '사랑에 대한 상징적 갈구'라고 보기도 합니다.

자기혐오와 원망: 엄마에 대한 원망과 동시에 "나는 버려질 만한 아이인가?"라는 낮은 자존감이 형성되어, 스스로를 낙인찍고 무력감에 빠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2. 전두엽 상태: '생존 모드'로 인한 기능 저하

전두엽의 기능 마비: 11~12세는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에서 강조하듯 전두엽이 폭발적으로 발달하며 감정 조절과 충동 억제를 배워야 하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눈칫밥은 전두엽을 마비시키고, 공포를 담당하는 편도체만을 과활성화시킵니다.

충동 조절 장애: 당시 이 아이의 뇌는 '이성적인 판단'보다 '당장의 불안 해소'를 우선하는 비상 생존 모드였습니다. 도둑질은 전두엽의 브레이크 기능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일시적으로 고장 났음을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인지적 과부하: 불안을 잠재우는 데 모든 뇌 에너지를 소모하느라 학습이나 미래를 설계할 여력이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의 이 어린이는 '나쁜 아이'가 아니라, 너무나 무서워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쓰던 '아픈 아이'였습니다.


못 다 쓴 글; 유년기가 아동기가 얼마나 아팠든, 나쁜 짓을 한 횟수가 몇 번 있다. 생각나는 나쁜 짓들이 몇 번일 테니 생각나지 않는 나쁜 짓들까지 합하면 백 번 이상일지 모른다.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을 수도 있다.

메모로 일기로 노트로 컴퓨터에 그동안 몇 백 페이지의 글들을 썼는지 셀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날의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 때문에 차마 아무렇지 않은 글로 당신 앞에 나설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이 떠날까 불안해 외할아버지의 양복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찰랑이던 천 원 오백 원에 손을 댔습니다. 나는 안 먹어도 된다고 먹고 와서 배부르다고 그때마다 둘러대고 친구들에게 간식을 사 주는 착한 친구였습니다. 반만이라도 착한 친구가 늘 항상 언제나 되고 싶었고 되어야만 했습니다.

외가의 모든 가족들에게는 저는 검은 손녀 검은 조카 검은 딸이었습니다. 하지만 많지도 않던 친구들을 한 명이라도 곁에 두기 위해 집 밖에서는 학교에서는 하얀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 추하고 더러운 죄들이 덕지덕지 붙은 가슴으로는 차마 공식적인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수년 동안 수도권 어느 지역의 주간지 기자로 활동하며 많은 공담을 신문에 실었습니다. 한국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에는 지역 계간 문학지에 동시부문이 당선되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타국으로 와서 저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끈질긴 트라우마와 하루하루 싸우며 영혼이 완전히 타들어갈 때 온라인 신문에 잠시 기고했습니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글을 쓰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참 정말 진짜 차마 자신이 없었습니다. 글 짓는 사람의 가슴은 갓 삶아 햇볕에 뽀송이 말린 새하얀 모시 같아야 한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살지 못한 시간들이 있기에 부끄러운 비자격 글꾼이라고 다그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글도 저도 가면을 쓴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아 가는 곳마다 캄캄했고 그 길을 걸으며 수없이 비틀거렸습니다.

하지만 용기내고 싶어요. 47년 동안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 온몸이 검게 탔지만 숯이 되어 연기로 사라질 수는 없었습니다. 아직 너무나 저는 먹고 싶은 게 많아요. 배가 고픕니다. 마음을 하얗게 세탁하고 비우고자 금식도 해 보았기에 물배는 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정말 글배가 너무 고픕니다.


고해성사라도 좋습니다. 부디 당신이라도 저를 한 번만 열 번만 백 번만 천 번만 용서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이제부터라도 깨끗한 글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네 송이 우리 집 꽃들에게 화욱이를 쏘지 않고 꿀보다 달콤한 사랑을 쏘고 또 쏘는 작가엄마 벌이 되고 싶습니다. 벌이를 하는 엄마이고 싶기에 벌은 제발 이제 그만... 이만하면 됐다고 충분하다고 벌 받을 만큼 받았다고 하늘이 제게 노여움을 거두시길 바람 합니다. 어느 날 어느 순간 그 모든 잘못들은 모두 제가 연약한 탓입니다. 하늘도 또 짧았거나 오래 거나 스치면서라도 일초 일분 십 분이라도 저로 인해 아프거나 다치셨던 모든 이들에게 감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저를 용서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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