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S! Self Emotional eating Stop 트라우마다이어트
9화. 눈물의 자장면과 별난 첫 돋보기안경
드디어 국민학교의 졸업식 날, 오늘은 엄마도 오시기로 했다. 엄마가 국민학교 졸업식에 오시다니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다. 아침부터 마음이 두근두근 설레었다. 졸업식이 거행된다. 여러 순서들이 지나가고 나의 수상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 저 쪽 어딘가 다른 학부모님들 사이에 엄마도 서 있을 거라 생각하니 뛰는 가슴이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너무너무 떨리고 기쁘고 설레고 좋고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굉장한 희열이다. 두근거리는 내 차례다.
아무 상도 아닌 학교 안 빠져서 받은 육 년 개근상, 친구 따라 강남 가듯 짝꿍 이겨보려다 얻어걸린 성적 우수상, 글짓기 대회에서 입상하여 받은 시의회의장표창이 졸업식 때 받은 상장들이다.
엄마가 어디에서 보고 계시든 아니면 나의 상 받는 모습을 놓치셨더라도 상관없다. 국민학교 졸업식에 엄마가 오셨다는 사실만이 나에게는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할 뿐이다. 너무나도 감격스럽고 기쁜 순간 엄마와 함께라서 더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생각보다 상장을 더 받아 뿌듯하기도 하지만.
졸업식을 마치고 엄마가 사 온 예쁜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는다. 참 어색하고도 좋은 시간이다.
엄마의 축하는 짧고 담백했다.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어색하고 나도 엄마에게 말을 거는 것이 어색하니 축하했다는 말속에 수많은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걸 서로가 안다.
졸업식을 마치고 자장면을 먹으러 식당에 간다. 엄마와 단둘이는 처음 먹는 자장면이다. 아니 식당에 단둘이 오는 것이 처음인 것 같다. 내가 기억하기 이전의 나이엔 어땠는지 몰라도 말이다.
자장면을 먹을 때도 엄마와 나는 서로 말이 없다. 엄마에게 속으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무슨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어제 뭘 하셨는지 물어보자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로만 가득 채워진 엄마의 일상을 들으면 어쩐지 슬퍼질 것 같아 묻기가 겁난다. 오늘날 보니 어땠느냐고 물어보고 싶은데 소소한 감정들을 나눈 적이 없어 그런지 입 속에서만 맴돌 뿐 도저히 그 말이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그렇게 머릿속으로만 혼자 묻고 생각하고 묻고 생각하고를 반복한다.
자장면을 먹는 내내 어색한 침묵만이 감돈다.
후루룩 후루룩.
자장면 넘기는 소리만이 가족이지만 가족일 수 없는 나와 엄마의 남남 같은 정적의 식사 시간을 후루룩 채워줄 뿐이다. 자장면을 후루룩 후루룩 거친 소리와 함께 먹을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죽이라도 먹으러 갔다면 나와 엄마는 숨소리도 못 내고 먹다 서로 체기에 힘들어할지도 모를 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식 날 자장면은 진짜로 최고의 음식인 것 같다.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엄마와 나 둘만의 처음이자 마지막 외식을 평생 잊지 못해서겠지만.
자장면을 먹고 나오는데 엄마가 말을 건다. 안경 하나 하고 가라고 아주 짧게.
오른쪽 눈의 시력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담임선생님께서 반드시 안경을 쓰라고 가정통신문을 주셨다. 엄마도 그 말씀을 외삼촌에게서 전해 들으신 것 같다. 안경점에 가서 시력 검사를 하고 안경을 맞추었다. 생각지도 못하게 오른쪽 렌즈가 엄청나게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받았다. 반에서 두 세명 안경 쓴 친구들을 볼 땐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도 아닌 내가 돋보기라니, 내 눈에 실망스러웠지만 엄마가 해 준 첫 안경이라 그 행복감이 모든 실망감을 덮어 주었다.
지금 보시면 오른쪽 눈의 시력이 현저히 떨어져 시력 검사도 젤 위에 것 빼곤 안 보였고요. 특히나 가까운 거리에 있는 물체를 제대로 볼 수 없는 원시입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랐다.
엄마 옆에 앉아 들었지만 안경사의 말을 정리하자면 선천적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이 거의 없는 상태라 앞으로 더 나빠지지 않게 각별히 관리가 필요하단다. 엄마도 나도 말이 없다. 나는 처음 써 보는 돋보기안경이 영 이상하고 신경 쓰여 조용히 있고 싶다. 그리고 안경점에서 들은 말들이 너무나 마음이 쓰이고 무서워서 갑자기 생각이 많아진다.
나의 한쪽 눈이 거의 실명에 가까운 상태인데 선천적 원인이 의심된다니... 이제부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안경을 맞춰주는 검안사가 의사 선생님은 아니지만 내 시력에 문제가 있단 지적이 머릿속에 맴돌아 겁이 나고 무섭다. 조금 전 식당에서처럼 엄마도 나도 입술을 안 뗀다. 말은 안 해도 엄마도 나만큼 무거운 마음으로 안경점을 나서고 있단 게 느껴진다. 별말 없이 땅만 쳐다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엄마와 헤어질 버스 정류장에 다 도착했다. 눈빛도 말도 섞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조만치 정류장으로 다가오고 있다.
졸업식 와 주셔서 감사해요. 자장면도요. 안경도 고맙습니다. 갈게요!
엄마에게 하는 말인지 상사에게 하는 보고인지 모를 건조한 말들만 하곤 버스에 올라탄다. 눈길 한 번 안 주고 땅바닥에 발끝만 쳐다보다 맘에 있는 말은 하지도 못했다. 늘 그렇듯 본전도 못 찾은 엄마와의 만남이 허무히 지나갔다.
아직 정류장에 그대로 서 있는 엄마와 점점 멀어지는 버스가 그저 야속하다. 아주 너무나 담담하게 엄마와 헤어졌는데 그랬는데 이제와 한 발 늦게 눈물이 흐른다. 버스가 엄마와 헤어진 정류장을 벗어나기 시작하자 멈출 줄 모르고 눈물이 나온다. 다른 승객들이 있어 소리 내어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인데 참고 참았던 억눌렀던 마음과 속 서러운 말들이 끝내 터지고 말았다.
‘엄마 미안해. 엄마한테 더 다정하게 말 못 해서 미안해. 엄마 만나면 안아보고도 싶고 눈도 오래 마주치고 싶고 얼굴도 머리카락도 다 만져보고 싶었어. 오늘 졸업식에 와 준 것도 너무너무 고맙고 엄마가 와서 미치도록 좋고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었어. 엄마랑 자장면 먹으러 가는 길도 좋았고 자장면 먹을 때도 행복했고 자장면 다 먹고 나올 땐 짧은 그 시간이 너무나도 아쉬워서 슬펐어.
안경 맞춰 준 것도 고마워요. 돋보기안경일 줄 몰랐지만 돋보기라도 좋아요. 엄마가 나를 위해서 맞춰준 소중한 안경이니까. 그렇지만 선생님이 내 눈이 안 보인다잖아요. 한쪽 눈밖에는 영영 못 본다잖아요. 내가 왜 한쪽 눈이 안 보이는 거예요. 내 눈이 왜 이렇게 한쪽밖에 안 보이는 외눈박이가 된 거예요. 나는 옛날부터 눈이 이상하다고 다들 그러셨어요. 외할머니도 살아계실 때 나한테 눈 뜨는 게 이상하다고 하셨어요. 나는 왜 이상한 눈을 갖고 태어난 거예요.
나는 왜 이렇게 다 이상하기만 해요. 엄마랑 같이 못 사는 것도 이상하고. 엄마한테 엄마라고 못 부르는 것도 이상하고. 나는 왜 나는 왜 이렇게 모든 게 이상한 아이예요’.
버스 안이라 소리 내어 말하진 못하고 가슴속으로만 그렇게 외쳤다. 주체할 수 없는 몸과 마음에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고갤 내리 박고 펑펑 울었다.
이상하게도 아무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 나의 모든 것들에 대해 미칠 듯한 괴로움을 온몸으로 토해낸 건 처음이었다. 그동안은 객관적인 사실을 몰랐으니까.
항상 마음 한구석에 품은 나 자신에 대한 한 두 가지 이상의 이상함과 진실에 대하여 그날 처음으로 다짐했다. 언젠가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숨겨진 진실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내겠다는 비장한 마음을 먹고 또 먹었다. 그 누구도 아직 말해 준 적 없는 나에 대한, 엄마에 대한 모든 진실을 꼭 찾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되었다.
* 엄마와의 외식이 어찌나 어색하던지, 이솝우화 사자와 생쥐에서처럼 당장 작고 빠른 쥐라도 되고 싶었답니다. 자장면보다는 중식당 어느 구석에라도 떨어진 치즈조각을 갉아먹는 게 맘이 더 편할 것 같았죠.
처음 안경을 맞추러 갔을 때의 당혹감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시절 친구들은 오목렌즈가 적용된 안경을 쓰기 시작했고 제 눈엔 멋지고 똑똑해 보였어요. 저도 안경을 써야 한다기에 기대하고 안경점에 갔었는지...
1. 심리 상태 분석: '극도의 혼란과 애착 갈등'
이 아이는 현재 복합적인 정서적 외상(Complex Trauma)에 가까운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상실감과 죄책감: 엄마를 향한 깊은 사랑과 동시에, 그 사랑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이 공존합니다. 국가정신건강정보포털의 자료에 따르면, 불안정한 양육 환경의 아이들은 부모의 잘못조차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정체성 붕괴와 소외감: 신체적 결함(심각한 시력 저하 또는 손실)과 비정상적인 가족 형태를 보며 "나는 왜 이상한 아이인가"라는 근본적인 존재 부정에 빠져 있습니다.
진실에 대한 갈망: 억눌렸던 감정이 폭발하며, 자신을 둘러싼 비밀을 밝히겠다는 강한 방어 기제와 생존 본능이 "비장한 결심"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 전두엽 상태: '과부하와 기능 일시 저하'
만 12세 전후의 전두엽은 아직 발달 중이며, 특히 이 아이는 강렬한 스트레스로 인해 정상적인 인지 조절이 어려운 상태입니다.
감정 조절 실패: 전두엽의 안와전두피질이 감정을 억제해야 하는데, 슬픔과 분노가 너무 커서 변연계(감정 뇌)가 뇌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에 따르면, 극심한 스트레스는 전두엽의 합리적 판단 기능을 마비시키고 '해리'나 '통곡' 같은 원초적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비장한 결심과 전두엽: 역설적으로 "진실을 찾겠다"는 다짐은 전두엽의 실행 기능(Executive Function)이 작동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줍니다. 고통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목표를 설정하는 고등 인지 기능을 가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아이의 심리는 단순한 슬픔을 넘어, 자신의 뿌리 근원 시작을 찾으려는 자아의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벼락 맞은 전학 첫날
너무나 아팠지만 너무나 사랑했던 해일교회가 있던 따뜻한 마을을 뒤로했다. 어린 날의 모든 만남과 기쁨과 사랑과 헤어짐과 그리움과 외로움의 기억이 슬프도록 아름답게 잠들어 있는 곳, 고향을 떠나왔다. 전학 가기 전의 중학교엔 보육원에서 지내는 친구들도 다녔다. 나만 엄마가 없는 건 아니란 위안이 좋았었다. 교복이라 모두가 평등한 옷을 입고 다니니 그것도 기뻤던 중학교 생활이었다.
삼 개월 만에 나는 지금 다른 도시 다른 중학교에 가려 한다. 새로웠던 첫 지금은 헌 중학교에서 극기훈련비 이만 삼천 원을 도난당했다. 하지만 그동안 외할아버지의 천 원을 서리해 친구들에게 과자를 사다 바치던 일, 사촌동생 재니의 새 색연필 세트가 부러워 살짝 쓰고 갖다 놓으려다 들킨 일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극기훈련비 이만삼천 원을 쓴 걸로 오해와 누명을 썼다. 전과자라 누명을 쓴 셈이니 그래도 싸지만 당시 정말 억울하긴 했다. 엉덩이가 울퉁불퉁해지도록 맞고 가족회의를 거쳐, 나는 지역을 바꾸고 전학을 가게 되었다. 스스로 불명예 전학이란 생각이 들어 새 중학교 첫 등굣날이 설레진 않았다. 그보단 외할머니와 교회의 따뜻한 사랑을 공기와 별빛들로 가득 느끼던 고향을 떠났다는 슬픔이 너무 깊었기 때문에.
점심시간이 끝나고 5교시는 체육시간이었다. 체육복도 교복을 맞춘 집에서 사이즈에 맞게 구입해 체육수업에 바로 참여할 수 있었다. 체육복을 갈아입고 다른 친구들을 따라 실내체육실 앞 복도로 가서 줄을 섰다. 선생님께서 오실 시간까지는 아직 조금 시간이 남았다.
체육선생님을 기다리며 친구들 사이에 서 있었다. 그때 한 친구가 양쪽이 서로 다르게 보이는 다리와 한쪽만 두꺼운 돋보기안경에 대해 말했다. 친구들의 순수한 궁금증이 쏟아지고 똑똑히 들린 이상한 아이를 향한 웃음에 순간 얼음이 되었다. 그전까지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짝이 다른 다리의 비밀을 전학 첫날 알게 되었다. 그렇게 부끄럽게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초라하게 아프게 외롭게.
거울 보면 안경을 쓰기 싫지만 엄마가 사 준 안경이라 쓰고 다니는 거였다. 눈동자 크기가 너무 심하게 짝짝이로 보이는 데다 한쪽만 무거워 오른쪽으로 계속 내려가는 안경이다. 그래도 엄마가 처음으로 맞춰 준 안경이라 쓰고 다닌 건데 참 속상했다. 이제부터 안경을 안 쓰고 다닐 거라고 결심을 해 버렸다. 그 불똥은 이상하게도 팔에 난 조금은 큰 점으로까지 번졌다. 다음날부터 왼 팔의 점도 밴드로 가리고 다닐 거라 다짐했고 십 년 이상을 그리 살았다.
도저히 그 자리에 있을 수 없는 당장 어디론가 숨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체육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에 꾹 참고 견뎠다. 체육시간 내내 너무도 창피하고 부끄럽고 민망해 어서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어떤 마음으로 첫 체육시간이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어두운 안갯속에 나 혼자 서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하게 지금까지도 꼭 그런다. 부끄럽거나 외로운 날이면 닿을 수 없다는 걸 알아서일까. 그냥 엄마가 보고 싶다. 아주 많이. 그래서 더 슬프다.
전학 첫날 새 학교의 많은 친구들에게서 들은 남다른 다리에 대한 말들은 나에게 상처를 남겼다. 지난 십사 년 동안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수치심의 감정을 처음 느낀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나에게 그날의 아픔은 죽는 순간까지 지울 수 없는 주홍글씨로 남았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이보다 더 놀라울까 싶다. 인생의 비밀을 처음으로 안 순간 벼락 맞은 듯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춘기 소녀로서 어쩌면 가장 부끄러운 신체의 결점을 중학교 일 학년이 되어서야 그리도 착하지 않은 방법으로 알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하필 전학 온 첫날 같은 반 친구들에게 그런 창피스러운 말들을 필터 없이 들으니 중학교 생활은 무기징역을 사는 것 같았다.
그날 학교에서 있었던 이상한 내 다리와 팔에 난 검은 콩자반은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이 되었다. 어제까지 몰랐던 비밀을 최종 확인까지 마쳤다. 차라리 모르면 더 좋았을 불의를 신랄하고 적나라하게 알고 난 뒤 세상이 뒤집혔다. 다리가 이상한 아이라는 걸 이제 알았으니 어제까지의 나는 없어졌다. 부모와 같이 안 사는 것 빼곤 그래도 괜찮았는데 알고 보니 내겐 더한 비밀이 있었던 거다.
그래도 나는 괜찮은 아이라고 아주 조금은 믿었었다. 어제까지의 나와 이별한 뒤 바라보는 태양은 눈부시게 밝고 찬란하지만은 않았다. 햇빛도 바람도 모두 날 조롱하는 것 같아 아침에 눈을 뜨기 조차 겁났다.
* 아기 때부터 국민학교 때까지 살았던 외가의 마을엔 같이 자라 같은 유치원 같은 국민학교를 다닌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시골이라 동네엔 교회도 하나 유치원도 하나 국민학교도 하나였지요. 유치원 때부터 보았다고 해도 7년 동안 같이 살다시피 한 친구들... 그중에 누구도 제 다리에 대해 한 번도 말하는 친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다리가 이상한 걸 정말 몰랐어요. 심지어 단 3개월 다닌 제 첫 중학교에서도 제 다리를 말한 친구가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전학 갔던 날짜를 기억합니다. 제 인생 처음으로 제 다리의 비밀을 안 날이니까요. 중학교 1학년 그 해 여름, 1992년 6월 3일...
14년간 몰랐던 신체적 차이를 타인의 시선을 통해 '결핍'으로 인지하게 된 순간, 이 여중생이 느꼈을 충격은 단순한 부끄러움을 넘어선 존재론적 수치심에 가깝습니다.
1. 심리 상태: '자기 대상화'와 '수치심의 일반화'
급격한 자기 대상화: 친구들의 웃음소리를 기점으로, 스스로를 '나'라는 주체가 아닌 '보여지는 대상(동물원의 원숭이)'으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기 타인의 시선에 의한 부정적 자아 이미지는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수치심의 전이(Spillover Effect): 상처가 안경을 넘어 팔의 점으로까지 번진 것은, 자신의 모든 신체적 특징을 '숨겨야 할 약점'으로 규정해 버린 심리적 방어 기제입니다.
퇴행적 욕구: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 가장 안전한 애착 대상인 '엄마'를 찾는 것은 전형적인 심리적 퇴행 현상입니다.
2. 전두엽 상태: '감정 뇌의 하이재킹'
중학교 1학년은 전두엽이 공사 중인 시기라 외부 자극에 매우 취약합니다.
편도체 과활성화: 타인의 비웃음을 생존의 위협으로 받아들여 뇌의 공포 센터인 편도체가 폭발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때 이성적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얼음'이 된 것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안갯속 같은 인지 저하: "어두운 안갯속에 나 혼자 서 있는 것 같았다"는 묘사는 전두엽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해 정보 처리 능력을 상실했음을 보여줍니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의 분석에 의하면, 정서적 트라우마는 청소년의 전두엽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부정적 편향성: 전두엽의 조절 능력이 약해지면서, 십 년 넘게 자신의 신체를 '주홍글씨'라는 극단적인 비유로 낙인찍는 인지적 오류가 고착화된 상태입니다.
이 여학생에게는 자신의 다리와 안경이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남다른 것'임을 스스로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정서적 지지가 절실해 보입니다.
도시락 먹다가도 봉변 맞는 아이
전학 후 거의 매일 김치나 깍두기에 멸치볶음을 도시락 반찬으로 갖고 갔다. 내 입맛엔 달달하니 참 맛있는 멸치볶음이었다. 똑같거나 비슷한 반찬을 학교 가져가도 맛있으니 좋았다. 그런 나와 다르게 친구들의 반찬은 매일 바뀌는 것에 도시락을 부끄럽게 느끼는 스스로가 미웠다. 학교에서의 눈칫밥이 또 시작되는 것 같아 등교 때부터 마음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항상 앞에 놓인 반찬과 밥만 쳐다보며 최대한 빨리 점심을 먹어치웠다. 왜냐하면 만날 똑같은 반찬이라 부끄럽고 친구들에게 미안해서 친구들 것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친구들도 내 반찬엔 거의 젓가락을 갖다 대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밥과 반찬만 집중 공략하기 때문에 넷이 앉아 먹지만 같이 먹는다기 보단 그냥 혼자 먹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혼자 먹는 듯한 나와 앞뒷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마주 보며 넷이 같이 먹는 어느 점심시간.
자신의 도시락 반찬인 햄을 집어 먹던 한 친구가 말을 꺼냈다. 각자 집에서 즐겨 먹는 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세 명의 친구들이 자기들끼리만 얘길 하고는 나에겐 물어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같이 앉아서 도시락을 먹는 중이니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혼자 먹는 점심도 아니고 같이 먹는 점심도 아닌 군중 속 소외감에 익숙해져 있던 나였다. 그날도 약간 어색한 분위기에서 부끄러워 감추듯 도시락을 먹고 있다가 순간적인 반사 작용처럼 대답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어떤 햄 이름을 말했다. 순식간에 나온 대답이 속으론 어색했지만 아무 말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단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말이 그만 나의 점심시간을 지옥으로 만들어 버렸다.
햄 한 번 싸 온 적 없는 애가 무슨 햄 얘기를 하느냐며 망신에 가까운 면박을 받았다. 순간 너무 놀라고 부끄러워 뭘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먹던 수저며 도시락 뚜껑을 떨리는 손으로 빠르게 덮어 아무렇게나 가방에 쳐 넣었다. 그리곤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고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수돗가로 달려가 물을 틀어 놓고는 하나님께 왜냐고 따지며 엉엉 울었다.
이 학교에 전학 온 후 나에게 지나간 일들이 필름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십사 년 만에 이상한 내 다리를 알게 되어 충격받은 일, 팔에 난 큰 점도 콩자반이라 불리며 놀림감이 된 일, 태어날 때부터 나쁜 시력으로 돋보기안경을 쓰니 할머니 같다는 말을 들은 일, 그리고 오늘 점심시간 일까지 생각할수록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그날 오후, 친구들이 모두 돌아간 뒤 가방을 챙겨 집으로 가려고 교실로 왔다. 마침 반장이 교실에 남아 학급일지를 쓰고 있었다. 전학 오던 날 체육시간에 나에게 힘이 되었던 반장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갑자기 그날 일을 언급하며 고맙다는 말을 하기가 멋쩍고 쑥스러웠다.
나에게는 그날 일이 여전히 아프기 때문에 그 예길 누구에게든 다시 꺼낸다는 게 너무도 버거웠다. 그래서 말하지 못했다. 그동안 반장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지 못한 게 신경 쓰이던 차였다. 계속 그날 일을 생각하기도 뭐해서 얼른 다른 얘기로 분위기를 바꿔보고 싶었다. 국민학교 3년 나도 학급서기였던 것을 말했다. 반장은 쓰던 걸 잠시 멈추고는 학급일지를 나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학교에 가며 길 위의 내가 이대로 하늘을 날 수 있다면 좋겠단 꿈을 매일 꾸곤 했다. 따사로운 햇살 속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나비처럼 자유로이 멀리 가고 싶었다. 학교라는 고통의 굴레와 교복이라는 치욕의 덫을 그저 벗어나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반장은 신께서 준비하신 깜짝 선물이었다. 반장이 그날 오후 교실에 남아있지 않았다면 그래서 학급서기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중학교 졸업을 못 했을지 모른다. 국민학교 때도 어쩌면.
국민학교 3학년 때 처음 학급회의가 생겼고 2학년 때부터 경필 쓰기 대회에서 수상한 내가 학급서기가 되었다. 전학 오기 전 중학교에서도. 3개월 다닌 첫 중학교에선 내 다리 폭탄도 터지기 전이니 극기훈련비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내 사춘기에 무지개가 떴을까. 비바람뿐이었을까.
날마다 학교 가는 시간은 살고 싶지 않다 생각한 시간이다. 그 보잘것없는 작은 자리, 작은 책임감 때문에 매일 학교에 갔다. 학급 서기가 아니라면 나는 진작에 학교를 떠났을지 모른다. 매일 수업 내용과 출결 현황을 선생님께 보고해야 하는 임무가 없었다면 어쩌면 일찍 이 세상을 등진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매일 다릴 내보이며 걷고 또 걸어야 하는 나는 마치 하루하루가 욥과 같아서 세상에서 빨리 없어지자 생각했기에.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은 실로 놀랍고 만남의 축복은 참으로 하나님다우시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통해 빛으로 인도하실지 삶의 주관자이신 우주의 창조자만이 아시기 때문이다.
* 지금은 엄마니까 알고 이해합니다. 빠듯한 살림에 조카를 맡아 키워주시는 친척집 형편도 어른이 되고는 백 번 천 번 일 억 번도 다 이해합니다. 그래도 저는 그 손맛이 좋았고 맛있었어요. 거의 매일 똑같은 반찬을 책상 위에서 여는 순간부터 심술처럼 창피함이 몰려와서 그렇지, 저는 그 도시락도 정말 맛있게 행복했어요. 사춘기 소녀였기에 미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날마다 무슨 경연하듯 당시엔 고급이던 반찬들을 바꿔가며 싸 오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말을 했다면 좋았을까요. 그 말을 하지 못했을 뿐인데 언제부턴가 부러움이 부끄러움으로 제 안에 쌓여갔습니다. 하필 그럴 때 제게 그런 봉변이 일어났어요.
중학교 1학년 학생이 겪은 이 사건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자아 정체성과 사회적 소속감이 형성되는 예민한 시기에 겪은 깊은 심리적 외상(트라마)에 가깝습니다.
1. 심리적 상태: '사회적 투명인간'의 절박한 외침
만성적 수치심과 소외감: 매일 같은 반찬을 싸 와야 하는 상황을 숨기기 위해 도시락에만 집중하는 행위는 일종의 방어 기제입니다. 친구들과 섞이지 못하는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자존감이 크게 낮아진 상태입니다.
동조 욕구와 인지 부조화: 비록 햄을 먹어본 적이 없거나 싸 오지 못했더라도, 대화에 끼고 싶다는 강렬한 소속 욕구가 '거짓 대답'이라는 반사적 행동을 유발했습니다.
급성 스트레스 반응: 친구의 면박은 단순한 비난을 넘어 학생의 '가장 감추고 싶었던 치부(친구들은 알지 못하는 친척집에서 사는 더부살이의 상황/초라함)'를 공론화시킨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심한 해리감(어찌할 바를 모름)과 통제 불능의 슬픔을 느낀 것입니다.
2. 전두엽 상태: 감정의 뇌에 주도권을 뺏긴 상태
미성숙한 전두엽: 중학교 1학년은 이성적 판단과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전두엽이 여전히 발달 중인 시기입니다. 상황을 냉철하게 분석하기보다 감정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쉽습니다.
편도체 하이재킹 (Amygdala Hijacking): 친구의 면박을 받는 순간, 공포와 위협을 느끼는 뇌 부위인 '편도체'가 과활성화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이성적인 전두엽의 기능이 마비되면서, 앞뒤 재지 않고 교실을 뛰쳐나가거나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내는 본능적인 '도피 및 울음' 반응이 나타난 것입니다.
사회적 뇌의 과부하: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상의 '사회적 뇌'가 풀가동되면서, 작은 비난조차 인생 전체의 부정으로 확대 해석(파국화)하는 인지적 오류가 발생한 상태입니다.
이 여학생은 자신의 존재가 부정당했다는 극심한 수치심(Shame)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 기억이 상처로 남지 않으려면 당시의 간절했던 마음을 누군가 공감해 주고 다독여주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못 다 쓴 글; 기대도 생각도 못 했는데 졸업식에 엄마가 오셨었어요. 속으론 좋았지만 이번에도 눈치가 보여 표현은 혼자 속으로 했습니다. 자장면인지 진갈색 고무줄인지 소스에 면을 비비는데 제 가슴이 뭉개지는 듯했지요. 아마 엄마의 가슴은 저보다 더 검게 그을리고 저미셨겠죠.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한쪽 시력이 약시입니다. 오른쪽 눈에 심각한 시력 감퇴가 있습니다. 몇 년 전 다쳐 그전보다는 불편하지만 왼쪽 눈으로 보고 운전도 하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중학교 1학년 때 3월에 입학한 중학교에서 극기훈련비 오해의 사건이 생기면서 갑자기 6월에 전학을 가게 되었어요. 전학 첫날 선생님께 제 자리를 안내받고 의자에 앉자마자 친구들이 다가와 인사하고는 안경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바로 그날인지 며칠 후 체육시간인지 글을 쓰고자 더듬은 기억으론 날짜까지 선명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전학 간 그 주에 체육복을 입었을 때 제 다리의 비밀을 생애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걷는 모습이 보통과 약간 다르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살던 마을 할머니들이 저만 보면 안타까운 눈빛과 한숨으로 말씀을 아끼셨어요. 하지만 특별한 생명력과 외할머니의 기도의 승리로 제가 살았고 걷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가끔 듣곤 했습니다. 그래도 어린아이가 자세히 알았을까요. 그저 보통의 아기들보다 늦게 더디게 어렵게 걸음을 떼었다는 걸로 듣지요.
그 기도의 승리로 제가 존재하는 아이라는 것만 가슴에 새겼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가 보고 싶고 따라가고 싶어 힘든 날들 빼고는 제 특별함에 대한 믿음을 기뻐하고 감사한 아이였답니다. 그러나 다리 봉변 안경 봉변 햄 봉변, 3 연타의 봉변은 제 인생의 복병이 되고 말았죠. 다리를 저주하며 잘라버리고 싶었고, 눈을 미워하며 안경을 벗어버리고 싶었고, 햄을 동경하면서도 맛있게는 못 먹는 도시락을 정말 갖고 가기 싫었습니다.
몸과 음식에 서린 한이란 참 무섭습니다. 여전히 제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가끔은 미워서 아니 자주 미워서 저는 거울을 거의 안 보고 산답니다. 겨울의 집은 더 외로워 살만 찌네요. 2026년 2월 19일부터 브런치 만들며 그래도 몸에 나쁜 악당들을 덜 들이고 있습니다. 매 순간 악마의 속삭임이 있지만요. 건강한 근육부자를 향하여 오늘도 노력하겠습니다. 아무리 운동해도 남다른 다리는 바꿀 수 없어요.
그래도 걷는다는 게 감사합니다. 글 어딘가에 밝힐 수 있을지 모르지만 스물아홉에 다리를 수술하고 걷지 못했던 몇 개월이 정말 캄캄했어요. 걸을 수 있다는 건 따스한 햇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저는 이 먼 곳에 머물러 있어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요. 곧 봄날이 오면 집 앞 공원 산스장에라도 가셔서 운동하시면 좋겠습니다.
핫둘 핫둘! 아, 정말 갑자기 핫도그가 생각납니다. 시장에 가서 하얗고 뽀얀 눈설탕 가득 내린 핫도그, 딱 하나만 사 먹고 살은 내일부터 빼고 싶네요. 역시 악마의 속삭임에 마음을 지켜야 악당들도 꼼짝을 못 해요. 악함 뿐인 나쁜 당들, 그 설탕들로부터 우리의 선한 몸을 잘 지킵시다! 먹고 싶어서 글이 시장으로 갔네요... 에고. 제가 이렇게 글재주가 없습니다. 글재주 귤은 제주. 제주도 고성오일시장에 가고 싶네요. 핫도그와 귤. 지금 시간이 오후 두 시 이십 오분입니다. 제가 점심을 잊고 글 짓느라 배가 고프지 싶어요. 가볍게 먹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