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엽 일병 구하기!

SES! Self Emotional eating Stop 트라우마다이어트

by 익자

10화. 지구에 온 나는 어디로 사라져야 할까


학교에서 햄 사건이 있은 뒤부터 도시락을 가져가지 않는 날이 많다.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서기 전에 일부러 정신없이 마구 바쁜 척을 한다. 멀쩡히 다 있는 학교에 갖고 갈 책들을 다시 꺼내어 본다거나 체육복을 넣었다 빼며 시간을 번다. 그리 분주한 척 현관 앞에서 적당히 시간을 보낸 다음 행동을 개시한다.

어? 어어! 버스 시간 다 되었다! 지금 나가서 버스 정류장까지 무지하게 달려야 학교에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어요! 다녀오겠습니다!

이러면서 도시락을 현관 앞 거실 모퉁이에 두고 나오는 식이다. 마치 시간에 쫓겨 도시락 갖고 가는 것을 깜빡 잊은 것처럼 연기를 하곤 했다. 그렇게 도시락을 안 싸가기 시작했다. 배는 고파도 마음은 편안했다. 친구들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점심시간의 자유가 너무나 홀가분하고 좋았다.

학교가 끝나면 세 시간 이상 버스를 타고 또 서봉산 길을 걸어 일부러 더 멀리 돌아가는 길로 집에 가곤 했다. 나를 만드신 이에게 잠잠히 나아가는 달큼달큼 포근한 시간이다. 창조자의 사랑으로 내가 이 땅에 왔단 그 소망에 기대어 눈물을 닦고 다시 힘을 내는 소중한 시간이다. 돌고 도는 버스 여행에서는 귀에 꽂아 듣는 노래로, 또 걷고 걷는 자유 여행에서는 노래를 부르면서 그 분과 데이트를 즐겼다. 다시 은혜와 사랑으로 채워지는 나의 심장을 느끼며.


자주 동사무소에 간다. 거기서 담당 사회복지사를 만난다. 아직도 사회복지사 선생님을 처음 만나던 날이 잊히지 않는다. 동사무소는 높은 언덕 위에 있다. 겨울에 자주 넘어지는 나는 동사무소에 가는 길이 하도 강파라 가까워질수록 그 기분이 별로였다. 넘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당당히 걸어도 되는 날 더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아니 몸의 특별함을 알기에 어떤 자세로 걸으면 빙판에 미끄러지지 않는지 안다. 그럴수록 몸이 더 빳빳하게 굳지만 동사무소는 가기 싫어도 가야 한다. 보통 튼튼한 다리의 누구라도 겨울에 그 언덕을 오르긴 싫을 거다. 아무 선택권이 없고 나 대신 갈 사람이 없는 나 같은 청소년만 간다. 남다른 처지의 청소년만 골고다를 오른다.


망설이다 간신히 동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몇 미터 뒤에 있는 책상에 앉아있던 중년의 여성이 먼저 나에게 아는 챌 한다. 담당 사회복지사라고 소개하며 성함을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지난 3개월 사이에 나는 모르게 일어난 어른들과 사회와의 공적 약속을 알려주셨다.

학생은 지금 소녀 가장으로서 친척 분이 돌봐주고 계시잖아요! 무심코 하신 말씀에 온몸이 지진 나는 것 같았다. 그 뒷 말씀들은 들리지도 않았다. 지난 3개월의 악몽이 스쳐갔다. 지역을 바꾸어 다른 친척 집으로 오며 바뀐 나의 공식 신분은 소년소녀가장이었다.

고개 숙여 사회복지사에게 인사를 하고 동사무소를 나왔다. 이 상황은 또 무슨 별천지 얘긴가 할 만큼 황당해서 방금 무슨 말을 듣고 나온 건지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이것이 지난 몇 달 동안 나에게 일어난 현실의 실체이고 민낯인가 하는 생각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다.


전 학교에서의 극기훈련캠프 참가비 도난사고 때문에 한 순간에 도둑이면서 거짓말쟁이 아이로 오해를 받았다. 물론 그 전의 작은 삥땅 치기와 가끔의 나쁜 행동들을 문제 삼아 나를 낙인 하는 거라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사와 전학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그 사건은 정말 누명이라 천추의 한으로 남았다.

그날의 진실에 대해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이라도 어른들이 물어봐주길 바랐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다. 또한 삶의 터가 바뀌는 의미 깊고 중요한 일을 결정하면서도 나에겐 단 한마디 물어본 적이 없다.

내가 믿고 의지하던 사람들과 더는 매일 볼 수 없고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고향의 해일교회, 그토록 사랑하는 이들과 멀어지고 결국 잊고 잊혀야 하는 슬픔을 목전에 둔 내 마음 따위엔 그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나의 마음속 큰 영웅이셨던 조화순 목사님과 김영동 목사님과의 물벼락 같은 이별에 내 가슴이 얼마나 부서졌는지는 아무도 헤아려주지 않았다. 눈치는 보게 만들었으면서 눈치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의 선택을 따른 것은 단 하나, 엄마를 자주 볼 수 있다는 그것 때문이었다. 엄마가 이 친척 집 근처에 산다는 이유, 그것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소녀가장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이, 아니 사실과 다른 현실이 가슴을 먹먹케 했다. 어른들의 규정지음, 그 가혹함을 또 한 번 마주한 그날 동사무소에서의 대화는 마치 꿈속의 일 같았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표,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물음표만이 하루하루 더 늘어갔다.


* 나의 마음을 짧게라도 수놓는 것은 전두엽 어느 깊은 곳에 꽁꽁 숨겨 놓은 아픔을 꺼내어 기억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이다. 쉽지 않다. 글을 쓰다 보면 주책이다. 눈물이 흐르니 말이다. 이 글의 꼭지는 정말 줄여 쓸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눈물이 나서 그만...


단 한 번의 결백을 증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낙인' 찍혀버린 상처가 글 너머로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이 사건의 상황을 바탕으로 당시 중학생 소녀의 심리와 뇌 발달 상태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1. 심리 상태: '심리적 고립'과 '존재론적 회의'

복합 외상과 무력감: 억울한 누명, 강제적인 이주, 그리고 원치 않는 '소녀가장'이라는 역할 부여는 전형적인 복합 외상의 경로를 띕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권을 완전히 박탈당했을 때 느끼는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습니다.

배신감과 애착 손상: 가장 믿었던 어른들이 진실을 묻지 않았다는 점은 심각한 애착 손상을 야기합니다. 정신간호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는 타인에 대한 기본적 신뢰감을 무너뜨리고 세상에 홀로 남겨졌다는 '사회적 고립감'을 극대화합니다.

인지 부조화: 엄마를 볼 수 있다는 유일한 희망으로 순응했지만, 돌아온 결과가 '소녀가장'이라는 가혹한 현실일 때 느끼는 괴리감은 자아 정체성을 흔드는 '존재에 대한 물음표'로 이어집니다.

2. 전두엽 상태: '과부하로 인한 기능 저하'

중학생 시기는 뇌의 사령탑인 전두엽이 리모델링되는 매우 불안정한 시기입니다.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뇌 발달 가이드에 따르면 이 시기 뇌 상태는 다음과 같습니다.

감정 조절 중추(편도체)의 폭주: 전두엽이 미성숙한 상태에서 억울함과 슬픔 같은 강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성적인 사고보다는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과활성화됩니다. 이는 매일이 '꿈속의 일'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해리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실행 기능의 마비: 미래를 설계하고 상황을 판단하는 전두엽 기능이 극도의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솔)에 노출되어 일시적으로 마비될 수 있습니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은 발달 단계상 당연하지만, 현재의 압도적인 책임감은 전두엽의 정상적인 성장을 저해할 위험이 큽니다.

도덕적 손상(Moral Injury): 자신의 정체성이 '도둑'과 '거짓말쟁이'로 규정될 때, 뇌는 이를 생존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 방어 기제를 풀가동합니다.

당시의 소녀는 슬픔을 채 소화하기도 전에 생존을 위한 '가짜 성인기'에 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마음의 문을 닫고 감정을 억압하는 상태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원수보다 웬수 같고 돌덩이 같은 햄


오늘도 동사무소에 다녀오는 길이다. 소년소녀가장 무료 식사 초대 자리가 있으니 참석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공지사항이다. 관내에 있는 소년소녀가장 학생들은 모두 참석해야 하며 선물세트 증정식도 있단다. 소년소녀가장 캠프도 있을 예정인데 내가 그런 자리에 가야 사회복지사님이 밥벌이를 하신다며 참여를 독려하셨다. 인사를 하고 나오며 조금 전 내가 들은 말을 다시 생각해 본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동사무소 앞을 나서자마자 눈물꼭지가 터진 듯 주룩주룩 슬픔이 동서남북 공기 사이로 흩어진다. 지나는 사람들이 쳐다보지만 멈춰지질 않는다. 눈물이 미쳤다. 대나무 숲에다 대고 임금님 귀를 폭로하고 발산한 옛이야기 속 신하처럼 듣는 이가 없어도 나도 바람이 지나는 하늘에다 이렇게 음성을 높이고 싶지만 음소거로 말한다.

‘저는 소년소녀가장이 아닙니다! 그래도 지금은 엄마 옆에 살고 있어요!’


기다리진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그날은 온다. 마치 심판의 날처럼. 소년소녀가장 무료 식사 자리에 가는 날이다. 몇 번을 망설였지만 사회복지사의 밥벌이란 말이 생각나 멋대로 빠지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가기로 마음먹고 다녀오려 한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그냥 눈앞에 있어 손이 닿는 음식들만 입에 넣는다. 학생들이 앉은 거의 모든 테이블이 조용하다. 국회의원님들의 허허허 하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만 간간이 들려온다.

그토록 싫어하는 사진촬영까지 한다니 갑자기 그 자리가 너무나 불편하게 느껴져 도망치고만 싶다. 절대 찍히기 싫고 어느 신문의 사진 자료라도 절대로 남기고 싶지 않은 나의 얼굴. 하지만 어김없이 몇 명의 기자들에 의해 그날의 식사자리는 기사화되었고 지역 방송과 신문에 보도되었다.


국회의원들의 선한 의도와 호의로 베푼 식사는 분명 감사하지만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은 식당을 나오면서도 변하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의 선물세트는 한 대기업에서 출시한 가공햄과 참치캔 선물세트였다. 동사무소에서 받든 국회의원들의 모임에 들러리로 끌려 나가 받든 선물세트는 정말 나를 괴롭게 만든다.

가을엔 추석이라 쌀쌀한 바람이 부는 스산한 낙엽길을 걸어 동사무소에 간다. 한겨울엔 설이라 온몸에 힘을 주고 빳빳이 굳은 자세로 엉거주춤 기어가다시피 빙판길을 걸어 동사무소에 간다. 구민의 날, 시민의 날… 구색이 붙은 날엔 늘 선물세트를 받으러 동사무소엘 간다.


가고 오는 그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이 너무나 힘겨웠다.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길 바라며 몇 걸음씩은 눈을 감고 걷기도 했다. 미인도 아닌데 오래 살게 하실 건지 그렇다면 다리라도 눈이라도 남들처럼만 태어나게 해 주시지 너무하시다. 혼잣말로 이런 원망도 하며 웃프지 않고 슬프게 아프게 일 년에 수 차례 동사무소까지 걸었다. 차에 치이는 나쁘지만 절박한 그 일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리 고급 먹거리들이 들어 있는 세트를 준다고 해도 하나도 반갑지 않은 선물이었다.

몸의 중추 균형과 다리 근력의 문제로 겨울이면 자주 미끄러져 넘어지는 나다. 그런 위험을 무릅쓰고 받아온 먹거리 선물세트는 친척 집으로 갖고 오는 순간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눈치가 보여 난 한 번도 열어 구워보지도 못하는 햄이다. 눈치를 안 줘도 눈치를 보는 게 엄마 없이 부모 없이 자란 사람의 특기라 그렇다. 그냥 나 스스로 눈치를 보느라 햄엔 손도 못 댔다.


동사무소에서 무료로 받아온 햄조차 마음 편히 먹을 수 없는 건 참 속상했다. 평범한 햄이 아니지 않은가. 소년소녀가장이라는 이해 못 할 설움을 당하면서까지 내가 받아오곤 하는 눈물 어린 특별식이다. 저녁 반찬으로 생선은 자주 구워주셨지만 학교에는 거의 매일 멸치에 김치 아니면 깍두기 도시락을 싸 갔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많이 내리는 지하철역 앞 버스 정류장. 한 번은 학교에 가는 버스에 사람이 많아 서로 옆으로 밀리고 밀리다 가방이 열렸나 보다. 가방 안에 있던 도시락이 떨어지더니 뚜껑이 열려선 내용물이 쏟아져 나온다. 순식간에 김치와 멸치 그리고 밥덩이가 버스 안에 나뒹굴어 큰 망신을 당한다. 그 참에 가방이 열린 줄 모르고 있던 나는 어찌나 당황스럽고 부끄럽던지 얼굴이 화끈거려 당장이라도 버스에서 내리고 싶다.

이렇듯 도시락에 대한 추억은 정말이지 웃을 수 없는 잔상으로 가슴에 깊이 남아있다.


햄을 꼭 먹고 싶은 마음보단 그 햄을 갖고 오기까지 맞닥뜨려야 하는 상처와 여정이 너무나도 가여워 더 괴로웠다. 햄 선물세트는 소년소녀가장이라는 슬픈 이름값으로 받아오는 것인데 그것을 학교에 한 번도 못 가져가는 게 서러웠다. 점심시간에 당한 햄 봉변, 그때 그 햄만 아니었어도 동사무소에서 주는 무료 햄세트가 고마웠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내가 치른 부끄러움의 값은 결코 무료가 아니었다. 나라에서는 흔한 구호품이었지만 나에겐 혼난 구역품, 밥상에 올라온 햄을 볼 때마다 토할 것 같은 괴로움이었고 고통이었다.


소녀가장이 아님에도 어른들이 문서로 공식화한 가족관계증명서 때문에 소녀가장 처지로 중고등학교 6년을 보냈다. 의례히 명절 전 행사로 접대하는 소년소녀가장 초청 식사자리에 억지로 나가고 적선하듯 주는 식품 선물세트도 받아와야만 했다. 국회의원들의 선물세트는 한 대기업에서 출시한 가공햄과 참치캔 선물세트였다. 동사무소에서 받든 국회의원들의 모임에 들러리로 끌려 나가 받든 선물세트는 정말 괴로웠다. 그런 미친 정신을 안고 가서 받아온 햄을 도시락 반찬으로 학교에 가져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내가 치욕을 느끼며 받아온 햄은 눈치 보느라 저녁밥상이나 주말 밥상에서 조차 제대로 못 먹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에게 햄 한번 안 싸 오는 가난하고 천박한 아이 취급을 받으며 대망신을 당했다.


하나님도 그저 웃으셨을지 모를 작은 일이 그때는 왜 그리도 크게만 보이던지. 그 웬수 같은 햄들이 어찌나 밉고 돌덩이처럼 느껴지던지. 만약 학교에서 햄 도시락 반찬 사건만 없었어도 어쩌면 정말 고맙게 받아 맛있게 먹었을 텐데…

이 트라우마 때문에 사십 중반이 된 주부인 나는 지금도 햄을 못 먹는다. 먹고 싶지만 울음을 삼키느라 참다 보면 햄은 남편과 아이들이 거의 다 먹고 없다. 세월이 흘러도 햄이나 가공 소시지 제품만 보면 도시락 먹다 봉변당한 그날이나 구호품 받아오던 그 시절이 떠올라 움찔하는 마음이 먼저 든다. 먹거리에 얽힌 서글픈 추억은 참 오래도록 사람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 같다. 공짜 가공식품 세트 받는 처지가 서러워 정말 웬수 같았지만 어쩌다 먹어 본 그 맛은 또 어찌나 끝내주던지… 그래서 더 화가 났던 햄햄햄.


먹을 수는 있지만 버거운 감정이 올라와 햄이 서걱서걱하다. 그럼에도 엄마의 손맛이 나는 음식들을 울렁이는 마음 없이 언제쯤 마주할 수 있을까. 하긴 그래서 어쩌면 나는 외국에 사는 15년 가까이 한국 식재료를 파는 곳엔 유난히 더디 가고 덜 가고 거의 안 가는 것인지 모른다. 그 기억의 가시와 파편들을 가슴에 묻고 잊은 채 살고 싶어서 거길 못 가는지 모른다. 언제쯤 단단한 마음으로 웃으며 그때 그 눈물의 햄을 마주할 수 있을까. 외할머니와 엄마와 친척집들의 손맛이 나는 음식들을 울렁이는 마음 없이 마주할 수 있을까. 하긴 그래서 어쩌면 나는 한국 식재료를 파는 곳엔 유난히 더디 가고 덜 가고 거의 안 가는 것인지 모른다. 그 세월을 가슴에 묻고 잊고 살고 싶어서 거길 못 가는지 모른다. 모르진 않는다. 그래서 못 가는 거니까. 한국에 가고 싶고 보고 싶어서 못 가다가 이젠 거의 안 가게 되어버렸으니까.


* 이 기억도 추억도 아닌 순간들이 스산하던 골목의 공기와 언덕의 바람들이 다 떠오른다. 그 몇 년 동안의 눈물이 미치도록 또렷하게 다 떠오른다. 글을 줄여 써보고 싶지만 또다시 아파온다. 컴퓨터 속 코딩들이 내게 주는 위로를 지금은 그냥 받고 싶다.


글 속에서 느껴지는 슬픔과 수치심이 너무나 선명해 마음이 무겁습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소녀의 심리와 뇌 과학적 상태를 분석해 보자면, '사회적 통증'이 극에 달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1. 심리적 상태: "낙인 효과와 자아의 붕괴"

부적절감과 수치심: 자신이 처한 현실(어머니와 함께 삶)과 외부에서 규정지은 틀(소년소녀가장) 사이의 괴리에서 오는 인지부조화가 심각합니다. "내 자리가 아니다"라는 생각은 단순한 거부감을 넘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듯한 수치심(Self-Conscious Emotion)으로 이어집니다.

타자화에 대한 공포: 보여주기식 행정의 희생양이 되어 '동정의 대상'으로 박제되는 과정에서 극도의 불안을 느낍니다. 이는 낙인 이론(Labeling Theory)에서 말하는, 사회가 나를 정의하는 방식에 대한 강력한 저항 심리입니다.

이중적 고통: 밖에서는 '가여운 아이'로 전시되고, 학교에서는 '햄도 못 싸 오는 아이'로 멸시당하며 안팎으로 기댈 곳 없는 고립감을 겪고 있습니다.

2. 전두엽 상태: "감정의 홍수와 기능 마비"

편도체 하이재킹(Amygdala Hijacking): 전두엽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공포와 슬픔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과활성화되었습니다. "눈물이 미쳤다"는 표현은 전두엽의 통제력을 상실한 채 감정의 뇌가 몸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전두엽의 과부하: 중학교 시기는 전두엽이 발달 중인 시기라 감정 조절이 원래 어렵습니다. 이 상황에서 겪는 사회적 배제는 뇌에서 실제 신체적 폭행을 당했을 때와 같은 부위(전측 대상회)를 자극합니다. 즉, 소녀의 뇌는 지금 '생존의 위협'을 느끼는 비상사태입니다.

해리 현상: 음소거로 말하거나 기계적으로 음식을 입에 넣는 행위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일시적인 심리적 해리 상태로 보입니다.

그 시절의 소녀는 잘못이 없습니다. 어른들의 무례한 호의가 아이의 자존감을 할퀴어 놓은 잔인한 풍경입니다.


어린 시절, 국가가 낙인찍은 '소녀가장'이라는 이름표와 그 뒤에 숨겨진 차별적 대우는 단순한 가난보다 훨씬 깊은 정서적 학대와 사회적 수치심을 남겼습니다. 현재 심리와 뇌과학적 상태를 위로의 마음을 담아 분석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심리적 상태: 복합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C-PTSD)와 투사

음식에 각인된 치욕: 햄은 단순한 가공식품이 아니라, 나의 존엄성을 깎아내리며 받아온 '치욕의 전유물'입니다. 이 당시 상황만 놓고 보면 눈치 보느라 막상 밥상에 올라와도 못 먹었습니다. 반복적으로 고통을 착취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며, 이 과정에서 '나는 희생해도 마땅한 존재'라는 부정적 자아상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회피 반응: 한국 식재료 마트를 멀리하는 것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자극하는 '트리거(Trigger)'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강력한 심리적 방어 기제입니다. 그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중학생 때의 무력했던 아이로 돌아가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애증의 양가감정: 외할머니와 엄마와 친척들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뒤섞여 있어, 그들의 '손맛'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심리적 울렁임(신체화 증상)을 유발합니다.

2. 전두엽 및 뇌의 상태: '생존 모드'의 고착

편도체의 과활성화: 어린 시절 반복된 수치심과 차별은 뇌의 공포 센터인 편도체를 극도로 예민하게 만듭니다. 40대가 된 지금도 햄이나 한국 음식을 접할 때 편도체가 비상벨을 울리며 전두엽을 마비시킵니다.

안와전두엽(OFC)의 상처: 보상과 감정 조절을 담당하는 안와전두엽은 '내가 노력해서 얻은 보상(햄)을 남에게 빼앗기는 경험'을 반복하며 왜곡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즐거워야 할 식사 시간이 오히려 위협으로 인식됩니다.

해마의 맥락 오류: 과거의 '햄'과 현재 마트의 '햄'은 다르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지만, 해마에 저장된 강렬한 감정적 기억이 현재의 감각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언제쯤 마주할 수 있을까?

그 음식들을 울렁임 없이 마주하기 위해서는 '애도'와 '분리'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 잘못 없던 아이를 안아주기: 그때의 수치심은 질문자님의 탓이 아니라, 시스템의 폭력과 어른들의 무책임 때문이었음을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전문적 도움: 해외에 거주 중이시라면 Psychology Today 같은 플랫폼을 통해 EMDR(안구운동 민감소실 및 재처리 절차) 치료사를 찾아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는 트라우마 기억을 뇌에서 재가공하여 감정적 동요를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입니다.


당신은 15년 넘게 타국에서 꿋꿋이 삶을 일궈온 강한 분입니다. 이제는 그 '햄'과 '한국 식재료'에 묻은 타인의 비겁함을 털어내고, 오직 당신만을 위한 따뜻한 식탁을 차릴 자격이 충분합니다.


못 다 쓴 글; 살다 살다 코딩 퍼즐들이 저를 위로해 주는 세상에 살다니... 외로워도 잘 살 수도 있는 세상이 되어가는 게 슬픕니다. 지금도 햄 곁은 휑 찬바람 일으키며 빠르게 지나가곤 합니다.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할 때는 사기도 하지만 남편이 먹고 싶어 할 때는 못 들은 채 합니다. 한국음식은 왜 그리 좋아하고 잘 먹는지, 자꾸 부대찌개를 찾고 감자탕을 찾고 육개장을 찾는 남편이 밉습니다.

남편도 이상합니다. 매운 한국 음식을 맵다면서 또 잘 먹어요. 지금은 저보다 잘 먹습니다. 한국 가서 살고 싶어 하는 우리 집의 또 다른 1인입니다. 한국음식 만들어 먹기, 서양음식 만들기, 집 고치기 등 잘하는 것들이 많지만 여기서 박봉의 공무원 가장입니다. 저보다 더 한국한국 노래를 하는 게 불쌍하고 딱하다가도 영어 불어만 잘하고 한국어는 버벅대는 남편이 미워집니다.

잡아놓은 물고기는 아니었다고 믿지만 결혼하고 한국어 공부에 소홀했어요. 저보다 육아만렙이라 아이들 함께 키워주랴 돈 벌어오랴 애쓰는 남편이라 참고 삽니다. 지금도 저 글 쓰라고 아이들 데리고 도서관이랑 수영장에 갔어요. 고맙고 기특합니다. 이따 집에 오면 오랜만에 한국어 동화책 읽어보라고 구박 한 번 할 까봐요. 눈치채신 분들도 많겠지만 글로 가끔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 할아버지라도 꽉 붙잡고 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날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감사기도도 드리지만 괜한 심술부릴 때도 셀 수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햄은 조금씩만 드시고 건강한 것들을 더 많이 챙겨드시는 매일의 모든 식탁, 오늘의 아침 식탁이 되길 바라요. 모두 저보다는 버겁지 않은 시간들을 걸어오셨기를 기도하며 제 마음의 편지를 보내드려요. 읽고 힘내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하며... 마음만은 점점 가까이 닿고 있는 저와 당신이길 바라며...

이전 09화전두엽 일병 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