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엽 일병 구하기!

SES! Self Emotional eating Stop 트라우마다이어트

by 익자


또 하나의 번외. 세상 모든 82년생 김지영 님들께!

복 담아 글 짓는 익자가 되기를 바라며, 80년생 땡땡이의 일기...


얼마 전 짧지만 취업을 했을 때의 일기를 들춰본다. 그때 마음의 공기가 참 신선하고 산뜻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는 이렇게 써 놀을 수가 없다. 새벽 달리기가 모처럼 아침 달리기가 된 오늘, 너무나 아름다운 해 떠오름을 보았다. 새벽마다 또 낮 동안에도 자주 걷고 달리던 자전거와 보행자 통행로에서 얼마 전에도 비슷한 햇빛을 만났었다. 생후 이삼 개월 즈음의 갓난아기가 목을 가누기 시작하듯 그날이 그랬다. 아주 처언천히 느리잇해서 더 짜릿한 경이로움을 그 새벽 두 눈 가득 담았었다. 마음속으론 새롭게 충만히 채워질 미래의 은혜를 혼자 상상하며 감사기도를 드렸다.


꼭 그 새벽 그 하늘의 해오름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성탄절에도 거의 빈 양말뿐이던 삶이 드디어 반짝이기 시작했다. 불과 한 달이 채 안 되었지만 마치 한 여름밤의 꿈처럼 기적 같은 선물이 툭하고 삶에 찾아왔다. 우주 만물과 해와 달과 별을 돌보시는 하늘에서 가장 높은 계급장을 단 유일하신 분께 눈물의 편지들이 잘 전달되었나 보다. 하늘정원사이신 그분을 짝사랑하며 그동안 셀 수 없이 많은 감정 상자들을 하늘로 띄워 보냈었다. 지구인 모두의 감정들을 흐트러짐 없이 쌓고 모아 하늘까지 배달하려면 정말 눈코 뜰 새가 없으신 건 안다. 택배 기사님도 어찌나 바쁘신지 늘 후순위 아니면 꼴찌로 배달된 것 같다. 아니면 나의 감정 상자들은 온통 어둡고 너무 무거워 하늘에 도착하기도 전에 어느 별똥별 마을에서 분실되고 말았던가. 마흔 다섯 해 가까이 눈물 담은 감정 상자를 거의 매일 그분께 접수했지만 도통 하늘에선 감감무소식이었다.


솔직히 하늘정원사로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가장 바쁜 분이신 건 익히 안다. 하지만 수없이 보낸 편지와 감정상자들에 답장이나 회신을 보냈다는 송장조차 딱히 받은 적이 없다. 새끼손가락에 나와 똑같은 빨간 실이 묶여 있는 파란 눈의 지구인, 그를 나와 만날 수밖에 없는 타이밍에 내 앞에 데려다 놓고 가신 것 말고는. 날마다 하늘에 도착하는 별과 같이 많은 편지와 감정 상자들 가운데 하필이면 가장 눈물 자국이 많아 이미 너덜너덜해진 것을 콕 집으셨다. 그리고 구름 이불속에서 달콤하고 딥하게 디비자던 내게로 터억 떨어뜨려 놓고 가셨다. 아마도 그날 크게 피로감이 느껴져 깜빡 졸기라도 하신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늘로 전상서를 올려 보내는 나 같은 미생 때문에라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 하늘정원사신데…….


결혼이란 구속과 책임의 투구가 구원의 동아줄처럼 느껴지던 나의 스물여덟아홉 시절, 시베리아 벌판에 발가벗겨진 채 서 있으면서 눈앞에는 다시 또 올라야만 하는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정상이 있는 것만 같았던. 너무나도 춥고 시려 그저 생을 놓고 싶던 그때의 나. 하필이면 이토록 완벽한 타이밍에 그의 감정상자와 눈물 젖은 편지도 하늘에 도착했다. 그분께 픽업이 되어 내게 배달되었다.

서른 해의 삶을 어떻게든 버티고 견뎌내라는 듯 무 자르 듯 나의 기도엔 응답하지 않으셨던 분! 그보단 크고 작은 돌부리들을 촘촘히도 나의 걸음걸음마다 놓으셨던 분. 기뻐할 만한 비둘기의 편지보단 무언의 응징으로 가득 찬 잿빛과 먹빛의 비구름만을 내 삶에 드리우셨던 분.

딱 한 번! 그분은 전지전능한 완전함을 하필이면 그때에 내게 진짜로 보여주셨다. 콩깍지가 억 겹은 씐 까만 안경과 함께.


빨주노초, 다행히 파남보는 없다. 넷색깔 무지개가 매일 다름하게 뜨고 지는 우리 집. 작은아씨들처럼 네 자매를 키우며 캐나다에 살고 있다. 하지만 차마 우리 딸들을 아씨라고는 못 부르겠다. 왁자지껄 우당탕탕 하니 아씨 대신 아저씨가 하루에도 수 십 번씩 다녀가는 것 같다. 도시인 듯 시골 같고 시골이라기엔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작은 타운에 우리 가족의 뜰이 있다. 코스트코도 로컬 마켓도 몇 곳이 있으니 이 정도면 소도시 정도는 되지 않을까? 히힛 웃음이 나온다. 다운타운에 사는 것 아니면 그냥 시골인 것을.


해방이란 구속이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과 자유는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해방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가 실현될 수 있다. 나는 왜 이토록 해방을 맞고 싶어 했으며 자유로워지고 싶어 했을까. 무엇이 나를 구속하고 억압했을까. 앞서 어느 글담으로 담았을지 모를 질문을 다시 던져본다. 답은 내 안에 나의 전두엽 안에 이미 있다. 답을 알지만 한국으로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또 살랑인다. 여기서 잘 살라한다. 이렇게 지난 늦가을의 일기에 살을 붙이며 위로와 안도를 애써 찾아 느껴본다.


행복의 처음과 끝이 한 꼭지에서 만나 비로소 매듭이 지어지는 것과 같이 가족이 완성되었다. 연애할 때 달콤한 약속을 했던 우리는 네 아이들을 낳아 키우길 꿈꾸었다. 넷째 딸을 낳은 날 꿈꾸던 인생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딱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그토록 소중하게 받은 선물들이 우리 아이들 넷이다. 그런데 줄기에서 여린 잎이 돋기도 전에 그 햇나무들에게 엄마로서 무엇을 했는가. 이제 겨우 파릇파릇 새 싹이 올라오는 이 아기 나무들에게 엄마로서 어떻게 했는가. 과연 그토록 바라던 나의 엄마와 다른 따뜻하고 부드러운 엄마였는가. 엄마 반성문은 매일 쓰고 또 쓴다.


대체 어떻게 이토록 빛나는 네 그루의 나무들을 사랑으로 가꾸지 못했는가. 참 단무지 엄마였다. 단순 무식 지룰(지 룰이 중요한 자) 종합세트. 다른 단무지를 갖고 싶은데 나라는 전두엽 일병은 생존조차 왜 이리 쉽지 않을까. 단단한 무한 지혜를 가진 엄마이고 싶은데, 영혼을 다치지 않게 아이들을 키울 수는 없을까. 같은 언어로 육아에 공감할 수 있는 엄마들의 마을에 같이 산다면 상생일 텐데… 혼자 상상하고 생각했었다. 그 지겨운 외로움이 나를 더 단무지 엄마로 만든다. 참 곱지 못한 단무지 결로.


맑게 개인 높디높은 가을 하늘 아래서 갑자기 햇살 머금은 가는 비가 내린다. 고갤 떨구어 울고 싶은 순간 올려다본 하늘에선 곧 무지개가 뜰 것만 같다. 이상하고 별난 엄마가 미안함에 흘리는 눈물인지, 햇볕의 눈부심에 덴 무지개가 쏟는 눈물인지 모를, 맑은 날의 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간다.


다시 무직자가 되었지만 브런치북이 있으니 북 짓자. 북을 잘 짓자, 북을 짓는 자로 복을 깃는 자로 이제는 잘 살자고 맘의 끈을 질끈 묶어본다. 모든 생애를 작가로서의 행복만 기도했던 나니까, 마지막 생애의 쳅터는 혼담을 공담으로 글담으로 높이 쌓아가는 내가 되자 토닥인다. 82년생 김지영처럼 글로 절규하고 글로 속마음을 쏟아내자고 나를 일기장에 앉힌다. 어깨를 마음을 토닥토닥, 글로 한 번 더 글닦글닦… 이렇게 다독여야 사는 나이이고 나이다. 휴! 불행 중 다행이다. 늦게라도 브런치를 만나서. 복닥복닥 하는 집에서 투닥투닥하는 다섯 미생들과 살지만 글로 내 마음만은 반짝반짝 빛이 나게 닦고 또 닦아줄 수 있어서. 글닦글닦, 영혼을 닦는 나라서 좋다. 그냥 다 다행이다. 나보다 두 살 어리지만 훨씬 어른스러운 82년생 김지영이 세상에 다만 나 혼자만은 아니라서 다행이다. 나도 누군가의 글로 울며 추억하고 고마워하면서 그렇게 위로받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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