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것은 결코 당연하지 않다

by 또영

무엇이 나의 삶을 의미 있게 할까? 지난 삶 속의 이런저런 의미 있는 경험을 꺼내보았지만 결국 이것만큼 큰 의미를 지니는 일은 찾을 수 없었다. 만약 당신이 평소처럼 출근 준비를 하다 가슴에서 불편감이 느껴져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의사가 하는 말이 “죄송합니다만, 암입니다. 큰 병원에 가셔야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어떨 것 같은가?


사람들은 죽음을 목도 했을 때 크게 성장한다. 주변에서 유난히 어른스럽거나 생각이 깊은 친구들을 들여다보면 죽음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제 막 요양병원으로 취직해 나이가 같은 20대 환자를 첫 환자로 돌보고, 산소호흡기 챙겨서 바다까지 보여준 환자의 마지막을 지켜본 친구가 그랬고, 가까운 절친을 하늘나라에 보낸 초등학생 동생이 그랬다.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은 본인의 삶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도 짧다는 것을 그 순간 깨닫게 되나보다. 하물며 옆에서 지켜봐도 그러한데 죽음을 본인의 눈앞에서 마주한다면 어떨까?


직접 겪어보니 암은 사형선고 같은 것이라서 처음에는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어떤 드라마 같은 데서 본 장면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고 나서는 반항심이 든다. 이게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화가 난다. 정확히, 한 단계도 틀림없이 <죽음과 죽어감>에 나오는 죽음의 5단계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을 밟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죽음을 수용하는 과정은 이때까지의 생각과 태도 거의 모든 것을 바꿔 주었다. <죽음>의 의미도 있지만 <새로운 탄생>이라는 의미도 있는 타로카드의 Deth(죽음) 카드처럼 이때를 기점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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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마주하고 가장 먼저 고개를 든 감정은 삶에 대한 뜨거운 갈망이었다. 이전에는 종종 ‘왜 살아야 하지?’ 같은 생각을 하곤 했다. 삶의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무지 때문이었다. 그냥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을 하며 결혼하고 아이 낳고 늙어가는 것은 싫었다. 그것은 내게 정말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일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매달렸다. 그런데 삶의 의미는 특별한 곳에 있는 걸까?


생각해 보면 삶은 인간에게 너무나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라 의미를 찾을 수 없다. 당연한 것들이 사라지면 그제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독립하기 전엔 집값이 이렇게 비싼 줄 몰랐으며, 매 끼니 직접 밥 차려 먹는 것이 힘든 일인 줄을 모르는 것처럼. 삶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의사선생님이 일깨워 주었을 때야 비로소 삶에 큰 열정이 있는 사람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싫어하던 회사 사람과 신경전을 벌이고 스트레스받는 일조차도 축복이었다. 죽으면 그조차도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싸우고 골머리 앓는 삶도 소중했고, 경험하고 싶고, 살아가고 싶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선물이었다.


두 번째로 깨달은 것은 인생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이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 건, 좋아하는 일을 뒤로 미뤄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필요 없는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하는 것도 본인이다. 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신을 괴롭히면서 사는 걸까? 만약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최고로 행복하게 살다 가고 싶지 않을까?


얼마의 생이 남았을지 신만이 알고있는 유한한 삶에서 인제는 원하는 대로 하기로 결심했다. 싫은 건 못 하겠다고 하자. 심플하게. 돈을 못 벌어도 남들 눈에 잘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괜찮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자. 예쁜 꽃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이 세상 속에서 나를 가장 아껴주는 건 제일 행복한 일이다.


세 번째 깨달음, 사람은 믿는 대로 된다는 진리이다. 아마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은 사랑이 아닌 믿음이 아닐까 싶다. 암 치료를 하면 다양한 사람을 본다. 현대의학을 믿는 사람, 자연치유를 믿는 사람, 자기만의 민간요법을 믿는 사람. 모든 사람은 각자의 믿음에 대한 결과를 받게 된다. 그것이 좋은 결과이든 나쁜 결과이든 말이다. 오히려 자신의 선택을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은 어떤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해 늘 불안의 쳇바퀴를 돌린다.


“당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든, 당신의 생각이 옳다”라고 헨리 포드가 그랬듯, 자신의 믿음은 그 사람의 세계 속에서는 항상 참이고 옳은 결과다. 그러니 어떤 것이든 믿자. 마음 깊이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정말로 그렇게 된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믿음을 마음 깊이 심어주는 것이 기도이고 명상이다. 나는 그제야 종교의 존재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다행히 일도 하고 이렇게 경험담을 글로 쓸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하다. 발전한 현대의학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도움 덕분이다. 어쩌면 아직 삶에서 해야할 것들이 더 많이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괴로운 경험이었다기보다는 오히려 감사하다. 이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불행속에 살고있었을 것이다. 건강한 식습관, 감사와 사랑,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 등등 사실 얻은 게 더 많은 것 같다.


너무 건강해진 탓에 요즘은 다시 현실의 번뇌속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괴로움 속에서 배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여러분도 한 번쯤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길. 아마 많은것이 바뀔지도 모른다. ‘당신은 내일 당장 죽어도 괜찮은 오늘을 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