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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Feb 27. 2021

새 학년을 준비하며

김선호, 『초등 사춘기 엄마를 이기는 아이가 세상을 이긴다』


2월 끝자락, 몸은 방학인데 마음은 벌써 개학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는 어떤 아이들을 만날까? 첫 시간에 어떤 얘기를 해야 재밌을까? 머릿속으로,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을 앉혀두고 이런저런 구상을 해본다.  

   

올해 초등 4학년이 되는 둘째 때문에 볼 거라고 사두고 보지 않은 책이 자꾸 눈에 걸리적거린다. 책장을 정리하다 보면 책이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저 좀 봐주세요!’ 그럴 때 본 책들은 어김없이 메시지를 남긴다. 책도 주인과 교감하는 것 같다. 이 책도 그랬다. 초4 남자 아이 학부모로서 교육에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책 속에는 국어교사이자 담임인 내가 있었고 고2 우리반 아이들이 있었다.     


초등학생은 일상적으로 학교에 등교했을 뿐인데도 자존감이라는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리 어렵지 않다. 담임이 학교 수업 시작 5분 동안 머리 한 번 쓰다듬어주고, 마치는 시간 5분 동안 눈 한 번 마주치면 된다. 122p   
 

등교만 하면 자존감을 선물 받는 학교! 아, 상상만 해도 좋다. 중학교까지는 학교 생활이 재밌다. 초등부터 중1까지는 시험이 없고 수업도 강의식이 아니라 학생 참여를 중시하며 흥미로운 수업이 다. 내가 보기에 우리 아이들의 즐거움은 최대한 길게 보아 중학교까지가 끝이 아닌가 싶다.


고등학교에서 자존감은 1등급부터 9등급까지 줄 세워져 있다. 1등급이면서 자존감이 낮은 아이를 못 봤다. 9등급이면서 자존감이 높은 아이? 멋지거나 제정신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학교는 1등급의 IN SEOUL을 위해 각종 대회를 만들고 상장을 주고 나머지는 그들만의 리그를 관람한다. 프리미어리그는 재미라도 있지 학교에서 그들만의 리그는 재밌지도 교훈적이지도 않다. 내신 경쟁의 한복판에 있는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과 나는 대학 입시라는 전장의 최전방에서 총알받이로 열심히 뛰었다.      


어느 해든 학급에 꼭 개그맨 수준의 웃기는 아이가 몇 명 있다. 그들의 웃기는 순발력은 타고난 듯, 천부적 재능으로 보이기도 한다. 종종 바보스러운 모습으로 웃길 때도 있고, 말마디를 가지고 재미있게 풀어내기도 한다. 그들을 보면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가 떠올라 흐뭇해진다. 그 아이들 덕분에 교실이 알아서 즐겁게 굴러간다. … 그런데 이 아이들이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가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자물쇠로 채워버린다. 138p    

지난 해 우리 반은 성적이 top class였다. 전과목 1등을 1년 내도록 놓친 적이 없었다. 화생지(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선택 반이라 그렇다지만 학교에서 꼼수로 특설반으로 편성한 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의사 지망이 과반이었고 참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는 모습이 대견했다. 내 평생 1등은 처음이라 나도 1등의 영예를 느긋이 누려보자 싶었다. 십수 년 동안 꼴찌 학교, 꼴찌 반을 떠돈 보상이다!


그런데 공부 잘 하고 착한 우리 반에 없는 게 꼭 하나 있었다. 하느님, 부처님은 어쩜 그렇게 웃기는 아이들을 한 명씩 점지할까 싶게 해마다 웃기는 아이들이 한두 명씩 있었는데 그 한두 명이 우리 반에는 없었다. 웃기는 아이들이 잠재력을 자물쇠로 채워버린 채 엎드려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올해는 1등 반보다 재밌는 반이면 좋겠다. 다행히 고1 담임이라 가능성이 좀더 열려 있을 것이다. 웃기는 아이들이 있다면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도록 앞장서 도와주리라.     


서울교육연구정보원 정책연구소의 연구(연구 최용완)에 따르면 봉사활동보다 두 배 더 인성교육에 효과적인 게 바로 독서활동이라고 한다. 128p    


이렇게 반가운 통계가! 독서가 봉사활동보다 2배나 더 인성교육에 효과적이라니! 국어교사로서 이렇게 뿌듯할 수가! 그런데 고등학교에서 참 힘든 게 독서다. 작년은 코로나로 아침 자습시간이 없어 10분 독서를 할 수도 없었다. 모둠별 독서토론을 할 수도 없어 2학기 독서 시간에는 수업 시작 10분 정도 책 소개 겸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의외로 잘 들어주었다. 올해는 정상 등교가 되면 아침독서 10분을, 수업 시간에는 모둠별 독서를 꼭 해보리라. 그리고 하교는 이렇게 김 선생님처럼 해보리라!    


3분이면 서른 명의 아이와 모두 눈을 맞추는 데 충분하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교실 앞문에 서서 한 명 한 명 악수를 하고 보내준다. 단순한 행위지만 그 악수의 순간에 학생들로부터 많은 메시지를 받는다. 학원에 늦어서 빨리 가야 하는 아이의 바쁜 손길, 오늘 선생님한테 더 많은 사람을 받고 싶어 했던 아쉬움의 눈길, 친구와 말다툼한 마음속 응어리가 아직 남아 있는 슬픈 미소 등, 아이들은 교실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내게 메시지를 남긴다. 자신을 알아달라는 것이다. 1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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