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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학교사 체 Mar 21. 2021

방구석에서 오르셰 미술관을

조원제, 『방구석 미술관』

단편적인 미술 입문서인 줄 알았다. 사실 그랬다. 뭉크부터 뒤샹까지 짧은 분량에 화가의 생애와 작품 이야기까지 아크로바트처럼 치밀하고도 예술적으로 꽉 들어차 있다. 선천적으로 류머티즘과 열병을 앓아 죽음을 두려워하며 80살 넘게 장수한 뭉크의 절규에서 시작해 프리다 칼로, 고흐, 클림트, 실레, 고갱, 피카소 … 학창 시절 미술 시험에 한 번씩은 출현했을 인물들이 한 책에 빼곡히 들어 있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는 선물세트 같다. 그림을 보고 화가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덟 살 난 큰아들과 둘이 오르셰 미술관에서 한나절을 보냈던 시간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둘이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멀리 파리로 여행을 갔다. 보슬보슬 겨울비가 내려 아이랑 갈 데가 마땅찮아 버스를 타고 미술관으로 갔다. 준비없이 간 여행이고, 그때까지만 해도 애 둘 키우고 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 책 읽을 여유가 없었다. 오르셰 미술관이 어떤 곳인지도 몰랐다. 미술관에 들어섰을 때 첫인상을 잊을 수 없다. 갓 상경한 시골처녀마냥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림에 문외한인 내 눈에도 아름다운 그림들이 즐비하고 사람들은 서두르거나 찌푸림없이 너무나 평온하고 우아하게 움직였다.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은 그림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우리는 미술책에서나 보는 그림을 실제로 보며 선생님 설명을 받아 쓰고 따라 그리는 모습이 참 부러웠다.


로트렉의 부드럽고 감각적인 그림을 앞에서 보고 뒤로 물러나 보고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로트렉의 그림을 실제로 본 건 감동적이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는 정말이지 고흐가 좋아했던 샛노랑이 캔버스 밖으로 새어나왔다. 아들은 세잔의 피리 부는 소년 앞에서 피리 부는 포즈를 취했고 피리 부는 소년도 그림을 즐길 줄 아는 아들도 예뻤다. 미술관 정면에 보이는 시계 뒤편에 레스토랑이 있어 쉬기도 하고 밥도 먹으며 미술관에서 여행의 하루를 보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지금 불과 7, 8년 전의 일이 까마득한 옛날처럼 느껴진다. 책 표지가 오르셰 미술관인 줄 한참 읽다 깨닫고는 옛날 사진을 찾아보며 잠시 추억을 소환하여 감상에 젖어도 본다.     


『방구석 미술관』은 오르셰 미술관을 그대로 책 속에 쏙 집어넣은 것 같다. 그림만 봐도 좋지만 그런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는 화가에 대해, 그의 친구와 애인과 가족에 대해, 그의 사랑과 불안과 절망과 환희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나니 평면의 캔버스에 들어 앉은 그림이 말을 걸어오는 것 같기도 하고 아프다고 울기도 하고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것 같기도 하다. 특히 클림트, 실레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 황금 갑옷을 입은 아테나의 거칠고 뇌쇄적인 눈빛에 압도당했고 실레의 누드는 외설적인데도 드로잉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눈으로 '' 색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낀' 색을 표현한 마티스의 그림은 진품을 꼭 한번 보고 싶다.    

 

방에 누워 뒹굴대며, 거실 테이블에 책을 펴들고 느긋이 앉아, 쉬는 시간 틈틈이 쪼개 『방구석 미술관』을 감상하면서 어느새 그림과 많이 친해졌다. 가끔 친구를 만나 수다 떨 듯 가끔 책으로, 미술관으로 그림을 만나러 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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