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무리들 3
이 글은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야기를 하나쯤 품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시기도 합니다.
누군가 그 마음을,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그 사람의 삶 한 조각을 따뜻하게 받아들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플러튼 오렌지카운티- 민이 엄마 결혼 5년 차 며느리
몬테소리 근처 작은 카페 •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난 엄마들이 하나둘 모여 앉았습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오늘 뭐 먹을까?”로 이어졌습니다.
엄마들이 모이면 늘 하는 얘기였습니다.
“난 오늘도 샐러드 먹어야겠어. 요즘 탄수화물 너무 많이 먹었더니 얼굴이 붓더라고.”
제니 엄마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그럼 우리 근처 파스타 집 갈래? 거기 새로 나온 트러플 파스타 맛있대.”
준이 엄마가 맞장구쳤습니다.
그때 민이 엄마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나는 그냥 떡볶이 먹으려고요. “
순간 테이블이 조용해졌습니다.
몇몇 엄마들이 눈빛을 주고받으며 입꼬리를 올렸습니다.
“떡볶이? 민이 엄마 • 진짜 떡볶이밖에 몰라?”
조롱 섞인 말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들의 표정에는 살짝 비웃음이 담겨 있었습니다.
민이 엄마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냥 떡볶이가 좋더라고요. 그 쫄깃한 떡이랑 매콤한 양념이…”라고 말했지만 • 끝까지 말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엄마들이 끼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이제 좀 더 건강한 거 먹어야 하지 않겠어? 애들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유빈이 엄마가 말을 꺼냈습니다.
“떡볶이는 저만 좋아해요. 민이는 당연히 아직 어려서 안 먹이죠”
민이 엄마가 말했습니다.
“맞아 가끔씩 먹는 건 괜찮지만 • 요즘 프리미엄 떡볶이니 뭐니 해서 비싸게 파니까.”
준이 엄마가 맞장구를 치며 • 비아냥거리는 웃음소리가 이어졌습니다.
민이 엄마는 속에서 밀려오는 감정을 느꼈지만 • 그저 미소만 지었습니다.
그녀는 그저 떡볶이를 좋아할 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길거리 포장마차나 시장에서 먹던 그 매콤 달콤한 맛이 그리웠고 • 미국에서 살면서도 스트레스를 풀거나 기분이 울적할 때면 떡볶이 한 접시가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이해해 줄 엄마는 없었습니다.
민이 엄마의 핸드폰이 울려 잠시 자리를 비우자 • 대화는 조금 딴 길로 새었습니다.
“근데 민이 엄마네 친정이 판사 집안이라면서?”
건이 엄마가 들은 소문을 꺼냈습니다.
“진짜? 판사 딸이 떡볶이만 좋아한다는 건 좀 의외인데?”
준이 엄마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민이 엄마 판사 집 딸 맞아요. 우리 시아주버니가 한국 로펌에 계신데 남편 통해서 들었어요.”
제니 엄마가 아는 척을 했습니다.
“그런데 취향은 좀 의외네.”
유빈이 엄마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친정이 판사 집안 이면 뭐 해! 그냥 우리랑은 좀 다르잖아. 음식 고르는 수준• 우리는 좀 더 세련된 거?”
준이 엄마가 덧붙였습니다.
민이 엄마가 돌아오자 • 성격 급한 건이 엄마가 묻습니다.
“민이 엄마! 자기네 친정이 판사 집안이라면서? 왜 떡볶이만 먹어?”
민이 엄마는 속으로 의아했습니다.
자신이 말한 적도 없는데 • 도대체 어떻게 다른 엄마들이 집안 사정을 그렇게 잘 알고 있는 걸까?
마치 어느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꿰뚫고 있는 듯한 그들의 정보력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민이 엄마는 짧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냥 내가 좋아하는 걸 먹으면 되는 거죠.”
그녀의 대답은 단순했지만 •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습니다.
친정이 판사 집안이라는 것과 그로 인해 남들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이미지…
하지만 그녀는 그런 틀에 자신을 맞추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남들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꾸미기보다는 •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 원하는 걸 먹으며 살아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대화는 유행하는 음식 핫플레이스로 넘어갔지만 • 민이 엄마는 더 이상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떡볶이 생각에 웃음이 나왔습니다.
엄마들의 얄팍한 평가도 • ‘친정이 판사 집안‘이라는 꼬리표도 그녀의 떡볶이에 대한 애정을 흔들 수는 없었습니다.
혼자 먹든 다른 엄마들과 함께 먹든 • 편안한 마음으로 좋아하고 • 먹으면 행복해지는 음식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엄마들 사이에서 겉모습이나 남의 기대에 맞춘 음식 • 그저 보여주기 위한 • 자랑하기 위한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이 엄마는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잠시 후, 민이 엄마는 먼저 자리를 떠나겠다는 말을 남기고, 차를 몰아 몬테소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떡볶이집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서 민이 엄마는 뜻밖의 얼굴을 마주쳤습니다.
줄리 엄마. 혼자 와 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고, 그 우연한 순간은 스쳐 지나갈 수도 있었던 인연을 반가운 대화로 이어주었습니다.
사람 사이의 인연은 때로 참 신기합니다.
아이를 통해 만난 관계일지라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는 어느 공간, 어떤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곤 합니다.
이날 민이 엄마와 줄리 엄마가 나눈 건 그저 떡볶이 한 접시였을지 모르지만, 그 자리엔 작은 공감과 웃음, 그리고 편안한 기운이 함께 있었습니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음식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떡볶이 때문이 아니라, 그날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기에 그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은 특별함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