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판] 7화 : 떠나간 친구, 남은 흔적

Before My Breath is Scattered•Kimisoo K.

by 잠시 동안

인생이라는 것,


인연이라는 것,


살아 있는 동안 우연히 다시 만날 확률이라는 것…

뉴욕에서 학교 수업으로 처음 만났던 그 친구.


술을 위해 안주를 고르던 그 친구.


하얀 피부에 깡다구가 있던 그 친구.


드문드문 연락을 이어가던 그 친구.


나보다 먼저 결혼했던 그 친구.


우연히 같은 산부인과를 다니게 되었던 그 친구.


같은 공간에 말이 없어도 어색하지 않았던 그 친구.

그 친구는 아들을 낳았다고,
시아버지에게서 독일브랜드의 세단을 선물 받았다며 행복을 자랑했다.


남편 집안이 부유하다고,
받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그 친구에게는 말하지 못한 아픔이 있었다.


남편의 외도.

“차라리 그전에 다 알았으면… 왜 그렇게 많은 것을 받았는지…”

윗집 여자, 아랫집 남자가 아니었다고 했다.


앞 콘도 빌딩의 여자, 옆 콘도 빌딩의 남편이었다고.

그 친구는 더 이상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친구는 더 이상 넘길 수 없었다.


부유한 시댁, 이미 준비된 변호사팀,
양육권을 포기하는 대신 안정된 위자료.
합의 이혼.


그리고 새로운 비자 신분으로, 자신이 살고 싶어 하던 외국으로 떠났다.

나에게 마지막 연락을 남기고.

그 후로, 그 친구의 소식은 완전히 끊겼다.


딸아이를 데리러 초등학교에 갔던 어느 날이었다.


몇몇 엄마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아빠가 파우치를 들고 걸어왔다.
키가 크고 눈에 띄었다.

동네 소식에 빠른 캐리 엄마가 말하기 시작했다.
재력가라고, 사업체가 몇 개나 된다고.
재혼했고, 본인의 아들과 같이 산다고.

그런데.

그 사람이,
그 친구의 전남편이었다.

그냥 놀랐다.
황당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감정이 전부였다.

세상이 넓다고 하지만
어떻게 이곳에서,
내 딸이 다니는 같은 학교에,
그 친구의 아들이 다니고 있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전남편과 아들을 마주쳤다.

우리 집 타운 빌라 옆 빌라에 살고 있었다.

아이들끼리는 아는 듯 인사를 나누었다.
나 역시 어쩔 수 없이 가볍게 인사를 했다.

그는 말했다.
“아침에 딸과 걸어오시는 걸 봤습니다.
괜찮으시면 저희 아들과 같이 라이드를…”

나는 태연한 얼굴로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알아보았다.


이후에도 그의 소문은 들려왔다.

시부모가 손자를 함께 돌본다고 했다.
특히 시어머니는 손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었다고.

재혼 전까지 만났던 싱글맘이 있었다고 했다.
동시에 지금의 아내도 만나고 있었다고.

결국 싱글맘에게는
재혼을 이유로 일방적인 이별 통보.
대신 작은 가게 하나를 마련해 주었다는 이야기.

그 소문은 부동산 에이전트를 통해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싱글맘은,
그 충격 이후 건강이 나빠졌다고 했다.

그 사람이
내가 알고 지내던,
착한 하늘이 엄마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한동안 말을 잃었다.

그녀가 말을 어눌하게 하고
손을 잘 움직이지 못했던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 친구의 흔적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진 뒤였다.

같은 엄마가 된 나로서,
그 친구의 친구였던 사람으로서
나는 바란다.

그 친구의 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라기를.


6년의 캘리포니아 생활을 마치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온 어느 날.

오렌지 타운에서 몬테소리를 함께 다녔던 아이의 엄마에게
문자가 왔다.

“소문 아직 모르지?”

문자와 함께 찍어 보낸 사진의 기사 속에는
그 친구의 전남편 이름이 있었다.

이름이 알려진 여자 방송인과의 이야기.

어디까지가 끝일까.

말문이 막혔다.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
본능과 이성 사이의 선택.
그것을 개인의 성향이라는 이름으로 반복해 온 삶의 흔적들.

사람은 정말 바뀌지 않는 걸까.

친구의 전남편은,
착해서였을까.
정이 많아서였을까.
본능이 강해서였을까.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선택들을
쉽게 해 왔던 것뿐이었을까.

이제는 연결되지 않은 인연이 되었지만,
그 친구의 삶은
여전히 나의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있다.

인연은 끊어져도
흔적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오늘
그 친구를,
조용히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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