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fore My Breath is Scattered•Kimisoo K.
대부분 아기와 집안에만 머물던 어느 토요일이었습니다.
유난히 창문틈으로 스며드는 바깥공기가 버겁게 느껴질 만큼 몸도 마음도 지쳐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아기를 돌봐주기로 하고, 천천히 무거운 발걸음으로 뉴포트 아파트 근처의 하나뿐인 네일숍을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만났습니다.
“한국 사람이세요? 아기 엄마이세요?”
낯가림이 심해 먼저 말을 거는 법이 없던 나에게, 그 한국 엄마는 마치 나의 조심스러움을 알아챈 듯 따뜻하게 다가와 주었습니다.
잠깐 대화를 나누다 보니, 우리 아기들은 고작 4월, 5월 한 달 차이로 같은 해에 태어난 동갑내기였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엄마라는 막연한 동질감이 생기고, 엄마로서 비어있던 마음은 공감대로 채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녀는 다가오지만 과하지 않은 배려 같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호구 조사’는 없는 시작이었습니다.
그녀는 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아들 하나를 둔 엄마였고,
출근하시는 도우미 아주버니가 있는 집이었습니다.
나는 회사에 다니는 남편과 딸 하나를 둔 엄마였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시작된 만남은 자연스레 가족 간의 인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느 날, 한국 엄마가 남편이 맨해튼 리복센터로 운동을 가니 같이 맨해튼에 가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나와 한국 엄마, 두 아기 그리고 유모차 두대를 싣고, 한국 엄마에 남편의 차를 타고 맨해튼 소호에, 우리들은 내려졌습니다.
유모차를 밀며 오래간만에 걷는 소호 거리, 노천카페에 앉아 나는 수유 천을 두르고, 그녀는 젖병을 물린 채 우리는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결혼 전 전공 했던 그녀는 미술 그리고 나는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나는 일본어와 영어를, 그녀는 중국어와 영어를 오가며 살아온 시간들.
좋아하는 미술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봉사 활동에 마음을 나누었으며,
각자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것들을 조심스레 꺼내놓았습니다.
그렇게 나누는 시간은 마치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듯, 서두르지 않고 부드럽게 흘러갔습니다.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있어도 괜찮은 시간, 어쩌면 서로의 현재를 솔직하게 바라봐 주는 자연스러움이 이유였는지도 모릅니다.
주말이면 그녀의 집으로 우리 가족은 초대받기도 했습니다.
베이욘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어피타이저로 시작하는 포도와 치즈, 크래커를 안주 삼아 와인을 마시며 소소한 일상을 공유했습니다.
그 후에도 그녀의 남편과 나의 남편은 종종 포카 게임도 같이 즐기며 만났습니다.
보통의 만남이었지만, 일상 대부분은 나와 한국엄마 그리고 두 아기와 함께 보내는 인간적으로 편안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국 방문 중 제주도에 잠시 다녀오겠다는 전화를 끝으로, 그녀의 목소리는 멈췄습니다.
그저 바쁜 일이 있겠지,
육아가 더 힘들어졌을까,
돌아왔다면 연락을 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문득 연락을 하려던 순간, 저장되어 있던 전화번호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 설명도 없이.
예고도 없이.
그녀와의 연결은 묘하게 사라졌습니다.
안 좋은 일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만 남긴 채, 시간은 그렇게 몇 년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렇게 어느덧 몇 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어느 오후, 무심코 켠 인터넷 창 앞에서 나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화면 속에는 내가 알던 ‘그 한국 엄마’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 곁에 붙은 수식어들은 내가 기억하는 그녀와 너무나도 이질적이었습니다.
그녀는 한국의 유명 기업 대표인 유부남과 연인 관계인으로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인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극적인 기사와 수많은 댓글, 낯선 사진들…. 믿기 힘든 현실 앞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습니다.
안타까운 이 당혹감은, 어쩌면 처음 ‘엄마’라는 이름으로 나누었던 진심이 기억 한편에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