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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Jun 23. 2017

내담자와 헤어진다는 것.

열여섯 번째 이야기

영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기 3일 전,

가까운 지인은 단기간이지만 내가 그토록 원하던 상담은 실컷 할 수 있는 자리를 소개해 주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24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서류를 접수했다.

다음 날 면접을 봤고 영국에서 돌아온 지 4일.

근 1년 만에 상담으로 밥을 벌어먹는 기회를 잡았다.


시차 적응은 출근을 하고 이틀 만에 완벽하게 끝났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 6시에 출근을 준비하는 삶의 피곤은 상상 이상이었다.

3개월 동안 정말 상담은 원 없이, 아니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실컷 했다.


그리고, 어제.

약속한 3개월의 시간이 끝났다.


그동안 만나왔던 내담자들 중 몇몇은 눈물을 보이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나는 비교적 이전의 내담자들과 헤어지던 것에 비하면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찌나 가벼운 지 그들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다.





퇴근길, 저녁 시간.

매주 한 번 있는 가족 식사 모임을 갖기 위해 본가에 들렀다.

부모님은 마지막 출근일인데 어땠냐며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지셨다.

두 분의 궁금증과 걱정되는 마음들이 어떤 힘도 발휘되지 않을 만큼 나는 건조함 자체였다.




그때였다.

쩍쩍 갈라진 땅에 예고되지 않은 비가 내려 촉촉이 적시듯,


왈칵..

세상에 있는 어떤 단어로도 지금 내 마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울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나 조차도 당황할 만큼 쿨했던 내 마음이었는데..

분명 아 이제야 비로소 헤어짐 앞에 의연해지는구나..

많이 컸구나.. 하며 스스로 뿌듯해했는데..


그 모든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슴속 가장 밑바닥의 뜨거운 피가 올라온다던 가을방학의 노래 가사처럼 나는 힘겹게 내 안의  끓어오르는 그 뜨거움을 게워내고 있었다.  


그제야 내 앞에서 울먹이며 아쉬워하던 내담자들과

그들과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했던 저릿했던 그 장면들이 봉인 해제되어 내 마음 구석구석을 날아다녔다.


너 많이 슬프구나.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모든 인생사가 그렇겠지만,

상담일을 하며 내담자와 헤어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과 헤어진다는 것이 참 어렵다.


그들의 마음으로 초대받아 3개월 간 배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그들의 의지에 감탄했다.


상담실, 그 안에서 줄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나 자신뿐.

여기서 재미난 점은 내담자 그들 또한 그 자신만 내게 줄 수 있을 뿐이다.


마음, 그것 하나 서로 공평하게 주고받을 수 있을 뿐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에서야 그 마음 하나 주고받은 것의 대가를 치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내담자 그들은 어느 때처럼 순수하고 용감하게 내 앞에서 마음껏 그것을 표현했다.

반면, 소위 사람 마음을 배웠다는 나는 그들만큼 솔직하지도 용감하지도 공평하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내담자와 이별 앞에 의연함으로 내가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찌질하지 않은, 쿨한 전문가로서의 뒷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얻었을까?


아니면 그들에게 차가움만 남긴 것은 아닐까?


차라리 나 또한 그들처럼 슬프고 아쉽다고, 헤어지고 싶지 않다 했으면 어땠을까?


그럼 지금 좀 덜 슬퍼하고, 덜 복잡할 수 있었을까?


아마 당분간은 이 슬픔과 복잡한 마음을 덜어내는 데에 최선을 다 하지 싶다.


간절히 빌어본다.

그대들의 내일이 부디, 어제와 오늘보다 더 나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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