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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May 25. 2017

꿈_당신이, 당신에게 전하는 편지

열 다섯 번째 이야기

새벽 4시.


땀으로 흠뻑 젖어버린 몸.

아닌 밤중에 혼자서 100미터 달리기라도 한마냥 쿵쾅거리는 심장.눈가를 타고 흘러내린 눈물은 목과 얼굴 온 곳을 휘감는다.


물에 빠졌다가 건져진 사람처럼 거친 숨을 토해내며 깬다.  굳어버린 몸을 확인하고 한참이 지난 뒤에야...


그제야...

그제야...


꺼억.. 꺼억..


들썩거리며 흔들리는 어깨를 부여잡은 채,

혹, 누군가 들을까 싶어 입을 틀어막아본다.


처절한 흐느낌만이 그를 알아주는 것 같은 새벽이다.


왜 울었을까.

무엇이 그토록 그를 울부짖게 만들었을까.









1st.


평범한 누군가의 집이다.


예닐곱의 사람들은 친구의 초대를 받은 듯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겁게 이야기를 하던 중이다.


한참 열기를 더하던 그곳에 군홧발을 한 서너 명의 사내들이 쳐들어 온다.


"지금 이곳에 남한 동무가 있다는 것을 듣고 왔소. 이제부터 색출하갔소."


친한 친구로 보이던 옆 자리 사람이 그에게 말한다.


"지금부터, 넌 입을 열면 안 돼. 입을 여는 순간 죽는 거야."


심장이 몸 밖으로 나와 피를 토하며 뛰는 것 같다.



2nd.


대한 독립만세를 외치려던 순간이었다.


양쪽 겨드랑이 틈으로 얼음장 같은 차갑고 음습한 무엇이 느껴진다.


총이다.


여전히 두 사람의 얼굴은 볼 수가 없다.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다.


그대로 굳어버린다.











그가 내게 전해 준 꿈속 장면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일제시대와 북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상징과 같은 시간과 공간이다.




마치 귀신이 몸속 어디 하나 놓치지 않고 들어왔다 빠져나간 것만 같아요.




꿈 얘기를 하던 중 그가 내게 전해 준 절박함의 표현.

친절한 그의 설명 덕에 나 또한 그의 꿈속을 다녀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꿈 얘기를 하시고 나니 어떠신가요?"



가장 기본적인 질문으로 정신을 차렸다.  



"무섭죠."



"지금도 무섭나요?"



"그때만큼은 아니에요."



"아까, 누군가 00 씨를 헤칠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게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한참 동안 그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가 지금 어떤 사람을 생각하고 있을지...



그의 마음으로 초대받아 함께 여행한 지 어느덧 4년.



이따금씩 그가 어렵게 전해주던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영화 속 괴물 못지않게 잔인했으며, 끔찍함 자체였다. 그런 괴물 앞에서 그의 욕구와 필요는 철저하게 말살당했다. 15년 가까이 그는 그런 학대 속에 살았다. 어찌나 잔인하던지 어떤 날은 나 조차도 꿈속에서 얻어맞는 꿈을 꿀 지경이었다.




꿈 이야기를 한 이후,

1년이 다 되어가도록 그는 눈물로, 욕으로, 온갖 분노로 과거에 묻어 놓고 한 번도 대면하지 못했던 그의 아버지를 만났다. 때로 온몸을 벌벌 떨며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손 한번 잡아주지 못하는 상담사라는 직업의 한계가 참 야속하게만 느껴지던 날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이전만큼의 눈물과 욕과 분노 없이 담담하게 그의 아버지 이야기를 하는 그런 날이었다.



그날 밤 꿈속,

그는 정신병원에 갇혔고, 그곳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으며, 만약 빠져나가게 되더라도 죽은 목숨이 될 거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았다.




"또 똑같이 얘기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번에 저는 엄청 큰 목소리로 외쳤어요. 물론, 거기 있는 누구도 제 말을 듣지 못하더군요(웃음)."



"꿈속에 변화가 있네요?"



"여전히 무섭더군요. 그렇지만 전하고 달라진 게 있었어요."



"제가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소리치더군요."




그렇지.

하며 무릎을 탁 치고만 싶어 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그의 꿈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살려달라던 그의 목소리는 누군가 도와주는 이를 만들어 냈고 도움을 받았다.



꿈속 변화는 현실에도 영향을 미쳤다.



본인의 욕구와 필요를 표현할 때 자동으로 따라붙던 두려움과 불안이 줄었고, 그는 주변 환경과 사람들을 자신에게 맞게 활용해 나갔다.



물론 완전한 치유가 되진 못했다.

사실 완전무결한 상태는 신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싶다. 여전히 스트레스가 극심하거나 곤란한 상황을 만날 때면 그의 꿈은 억압받는 그의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꿈에 전복당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꿈을 활용하여 자기 자신을 치료하는 곳으로 가져간다.











"꿈은 인간에게 보내는 신의 편지"라고 칼 구스타프 융이라는 사람이 얘기했다고 한다.

인간이 어리석어 본인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해 고통의 신음하는 것을 안쓰럽게 여긴 신이 인간이 잠든 중에 편지를 써서 보낸다는 것이다. '너 치료 좀 받으라고..'




나는 융의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한 가지를 바꾸어 말하고 싶다.




꿈은 당신이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나를 포함한 내 내담자가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워 억압하고 가둘 수밖에 없던 기억들이 우리의 현실까지 갉아먹어가며 이유 없는 지침과 피로함으로 삶을 얼룩덜룩 더럽혀 나갈 때, 우리 일부는 더 이상은 견딜 수 없다 싶으면 꿈으로라도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잠 못 들게 하고, 꿈속에서라도 "나 좀 살자."하고 몸부림 쳐 보는 것이다.




끔찍하고 찜찜한 꿈을 꾸었는가?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을 빌어 축하를 보내고 싶다. 드디어 당신은 당신에게 편지를 받았으니 말이다. 예고치 않은 편지를 열어보는 일만큼 가슴 설레는 일이 있을까?




부디, 오늘 밤 깊어가는 새벽녘 당신으로부터 꿈이라는 편지를 받기를 나의 신께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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