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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Aug 25. 2017

무조건적 사랑

열일곱 번째 이야기

참 어이없는 게요..

마치 저를 때리는 것이 그 삶의 목적인 것처럼 사는 아버지를 보면서도,

전 단 한 번도 '저 사람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아니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보다, 그 사람이 절 버릴까 봐 두려워 떨었어요.

그리고 때론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기도 했죠.


개 패듯 때리고 나를 망가뜨려도 좋으니, 아니 그보다 더 한 것도 해도 좋으니,

제발, 제발 부탁이니, 날 버리지만 말아달라고요..


그때는 그 사람이 절 떠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게 제 삶의 전부였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저를 버리기 위한 정보수집을 했고, 제 나이 열 살이 채 되기도 전에 집에서 3시간이나 떨어진 곳에 절 버리는 것으로 목적을 달성해 냈어요.







가슴이 아팠다.


듣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 속 그녀의 담담함에 아팠고,

온갖 짓밟힘도 괜찮으니 옆에만 있게 해 달라는 그녀의 절절함이 충분히 느껴져 아팠다.


어떤 몸짓과 언어로도 내가 지금 그녀와 함께 아파하고 있다는 걸 전달할 수 없었다.



참 우습죠?


......


오히려 말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나를 걱정하는 듯 침묵 속 여백을 웃음으로 자연스럽게 채워가는 그녀였다.


도박과 여자 문제와 절 때리는 것 밖에 모르는 그런 인간에게 매달렸던 제 모습이...








얼마 전, 두 살배기 아이가 있는 지인이 아이가 짐처럼 느껴져서 버거울 때가 있다며 고민을 토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맞벌이에 육아에 살림까지 하려니 힘든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앞서 이야기했던 내 내담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지인은 절대적 사랑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아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 내담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런 것만도 같지 않다.


그녀가 무조건적으로 사랑했던 존재, 철저하게 짓밟고 처참하게  버렸던 아버지.

더 가슴이 아픈 건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그가 남긴 과거의 잔상들이 삶 곳곳에 스며들어 그녀를 괴롭힌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때만큼은 온몸과 마음을 다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그 부모 옆에 있고 싶었다고 한다.


나는 이따금씩 내담자들의 어렸을 적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부모를 향한 맹목적일 만큼 위험해 보이는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을 본다.








일주일 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더 생기 있어 보였다. 그녀의 기운이 나에게 전달되어져 참 좋다고 느끼던 순간이었다.


선생님, 예전에 제가 했던 이야기 생각나세요?


무슨..?


무조건적 사랑을 받아 보고 싶다고요..


아, 네.


지난번 선생님께 제 아버지에게 버리지 말아달라고 매달렸던 이야기를 하고 난 뒤, 일주일 간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




생각해 보니, 전 이미 무조건적 사랑을 받았더라고요..(짧은 침묵)

전 제 아버지를 무조건적으로, 절대적으로 사랑했어요. 그 얘기는 저는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무조건적 사랑을 갖고 태어났던 거죠.. 그리고 누군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그 말 같지도 않은 제 생물학적 아버지를 사랑했던 거죠.


그 생각을 하니 그 사람을 향한 분노가 연민으로 바뀌더군요. 제 생물학적 아버지는 어떠한 이유인지 모르지만 저의 그 사랑을 받지 못했던 거죠.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당신도 참 안됐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내가 자라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어쩌면 나를 버리던 그때 당신은 이미 가장 큰 형벌이자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어찌 보면 나는 당신이 나를 버려주어서 많은 것을 마음으로 배울 수 있었다고..'


....


그 말을 끝으로 하염없이 우는 그녀앞에 어떠한 말도 건넬 수 없었다.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힘겨운 이야기를 삶으로 살아내느라 고통 속에 있던 그녀였다. 어떠한 말도 행동으로도 내담자의 아픔을 담아낼 수 없을 때가 있다. 어쩌면 상담실이 떠나가라 엉엉 울며 통곡하는 지금 이 순간을 두고 하기에 딱 적당한 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상담실에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의 아픈 이야기는 무조건적 사랑이 거부당했던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상담실에서 나를 향해 용기 있게, 때론 과감하게 그 사랑을 드러낸다. 때로는 그 표현이 왜곡되고 서툴러 나로 하여금 어찌할 줄 모르게 만든다. 그럼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것, 약속한 50분이라는 시간 동안 무조건적 사랑으로 그들을 향해 서는 태도뿐임을 기억하며 애써 볼 뿐이다.



부디, 당신과 나의 내일이 오늘보다 더 무조건적 사랑으로 가득하길 빌어본다...

















p.s.

그만할까 싶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저에게 글을 쓰도록 원동력이 되어주는 소울메이트 민트 향기와 어느덧 80명이 된 구독자 여러분에게 특별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 가을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길...





그림출처: http://bgh.ogqcorp.com/share/h/qYxvu3TPRlc3y6ENmf9G0BYlfaXhsv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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