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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Jun 14. 2016

왜 상담이어야만 했는가?

마음이야기 03

  인간 내면에 대한 공부를 처음 접했던 학부 시절부터 상담을 받고 싶다는 바람은 늘 있었다. 부끄럽지만 막상 상담하는 일을 하면서도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사회복지사 두 명이 결혼을 하면 국민기초 생활 수급권자를 면치 못한다는 형편에 주 1회 50,000원 매월 200,000~250,000원씩 부담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렇게 미루어왔던 상담을 받기로 마음을 먹고 몇 가지 기준을 세워 주변 지인분들께 부탁해 슈퍼바이저(상담 선생님)를 추천받았다. 슈퍼바이저를 선택하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었지만 '비밀보장'과 '주 1회 자기분석'(이 부분이 왜 중요하다고 여기는 지에 대해서는 추후 다룰 예정임)이라는 두 가지 원칙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 주시는 분이라면 나의 마음 여행을 맡겨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막상 상담을 받기로 마음을 정하니 순조롭게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무엇보다 앞서 말 한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6개월 정도를 생각하고 상담을 시작했었다. 어느덧 4년째 이렇게 지속하고 있는 나를 보면 새삼 대견하면서도 신기하다. 돌아보면, 이런 시간이 있었기에 상담이 무엇인지, 왜 상담이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나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마음 여행 이야기 02에서 밝힌 것처럼 다양한 많은 활동(36시간 잠자기, 영화보기, 술 마시기, 등산, 마라톤, 연애, 독실한 영성생활, 글쓰기, 음악 듣기 등등) 들로 내면의 고통의 짐을 덜어내려고 했다. 그런데 철저하게 실패했다. 심지어 신도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찾을 수 있다.


   당시 나는 나의 고통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고 함께 해 주기' 원했다. 그 어느 곳에서도 내 고통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온전히 담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내 마음속 깊은 무의식이 나를 살려보고자 보내는 긴급요청 즉 SOS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바람에 대해서 나는 다른 활동들 심지어 신앙의 영역으로 내 고통을 밀어 넣어버렸다. 한 마디로 억압해 버리고 다른 활동으로 대체해버리면서 고통이 사그라들어 내가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세상에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더불어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그러나 그 바람은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쉽지 않았다. 나를, 내 고통을, 나란 사람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잘 모르겠다'는 것이 그때 그 상황을 표현하는 데 가장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누군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내 마음은 아프고, 아픈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더 이상 숨고 싶지 않았다. 아니 무엇보다 시간이 더디 걸리더라도 내 마음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었다. 내 마음 한편이 아프다는 것과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니 더 이상 숨을 만하고 대체할 만한 활동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다른 활동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결국, 나는 나와 내 마음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보기로 결단했다. 그렇게 2013년 어느 여름날, 나는 한 상담실 문 밖에 서 있었다. '똑똑'하는 소리와 함께 내 마음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더하고 싶다. 꼭 상담만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들 주변에서 누군가 힘들어하면 기분전환을 위해서 취미활동이나 여행 등을 권하고는 한다. 가끔 여행 에세이 등을 통해 본인을 치유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곤 한다. 신앙서적도 마찬가지다.


  다만 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 모든 활동들이 우리 마음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로 가져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 활동들이 우리 마음 깊은 곳 무의식에서 올라오는 고통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훗날 더욱 원초적인 모습으로 어려움을 표현하며 우리네 삶을 난감하게 만든다.


  때로는 너무 원초적이어서 당황스럽기까지 한 마음 아픈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어쩌다 이지경까지 자기 자신을 방치했을까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축복일 수 있다.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에밀 시오랑 저서)는 말이 있다. 내가 그랬듯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느낀다면 그것은 이제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언제가 되면, '그때 내가 참 많이 아팠어.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다. 솔직히 차라리 상담을 받기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때도 있다. 과거 내가 너무 아파 남겨두고 온 마음의 상처들이 곪아 터져 지금의 내 삶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들을 발견할 때면 다 자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변변치 않다는 사실에 당황하고는 한다. 그럴 때의 무력감은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 온전한 나의 몫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나를 발견한다. 왜일까? 이제 다 끝났으려나 싶으면 그때마다 반복되는 포기를 모르는 나의 고통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듣고 또 들어주며 함께하는 존재가 늘 동일한 시간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날 향한 따뜻함과 그래도 나의 내일이 오늘보다 아주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주는 시선이 있기 때문이다. 그 시선 속에 머무르며 목놓아 울기도 하고, 어쩔 땐 삶의 역설적인 모순들을 마주하며 어이없어 함께 껄껄 웃기도 한다.


  그리고 그 시선은 고스란히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기'라는 그 어려운 걸 해내게 한다. 처음엔 1초, 30초도 어렵던 것들이 1분, 2분 이렇게 늘어나는 것을 본다. 그 속에서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어떤 형태의 힘이 자라는 걸 느낄 수 있다. 더불어 그 힘이 나를, 내 주변 사람을 이전보다 조금 더 편안하게 하는 형태의 에너지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한 변화가 마음같이 빠르지 않아 답답할 때도 있지만 결국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 것처럼 언젠가 마음 여행 정상에 올라 진정한 평화를 누려보는 나를 기대하며 오늘도 상담실 의자에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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