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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Jun 23. 2016

왜 상담이어야만 했는가? 02

마음 여행 이야기 04

  우연히 들판에서 칼을 발견한 잔, 전쟁에 참여하라는 신의 계시라 여긴 그녀는 전쟁에 참여한다. 그 후 전쟁에 대한 책임으로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곳에서 신의 사자를 만난다. 신의 사자는 잔에게 묻는다. '그 칼은 아이들이 놀다가 두고 간 것이거나 길을 지나던 군인 중 한 명이 실수로 떨어뜨렸을 수도 있었다는 등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었을 텐데, 무슨 근거로 대체 그걸 전쟁에 참여하라는 신의 계시로 이해했지?' 영화 잔다르크의 한 장면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본다'는 것에 대해 이만큼 잘 보여주는 장면이 있을까? 멀리 잔다르크까지  갈 것도 없다. 나 자신 조차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의 마음을 연구한 많은 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살아온 시간, 인간관계, 다년간의 양육방식 등에 의해서 마음의 창이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 창을 통해서 타인과 본인을 둘러싼 환경을 본인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한 번 이해되어져 들어온 정보는 이후에 변화되기가 어지간해서는 쉽지 않다. 이 마음의 창이 부정이냐 긍정이냐에 따라 삶의 에너지 방향은 전혀 다른 결과물들을 만들어 낸다.


  상담을 받은 지 3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나만의 창을 가지고 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나의 인식과 판단이 만들어내는 결과에 대해서 직면했다. 그제야 비로소 나는 내 마음의 창으로 신을 가두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에게 갇힌 신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 여행 이야기 01에서 밝혔듯이 게으름을 모르고 반복되는 일상처럼 고통은 계속되었다. 오히려 꾸준히 업데이트되었다. 업데이트되는 고통 앞에 나의 대처방식은 나 조차도 당황스러울 정도로 원초적이었다.


  '오직 신만이'라고 고백하며 내 뜻은 전부 포기했다고 했지만, 실상은 오히려 내 뜻을 반드시 이루어주어야만 하는 대상으로서 신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온전히 신의 존재를 인정했다기보다 도구화했다.


  원하는 것을 충분히 가져 보지 못했던 경험으로 가득했던 나의 성장기. 그런 나에게 신은 내가 원하는 것을 갖게 해 주는,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가져가 주는 존재로서 이상화되는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내가 생각하는 고통을 없애주는 신을 포기할 수 없었다. 솔직히 포기라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배워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신과 나 사이에는 맞닿을 수 없는 평행선이 계속되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되어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왔다. 신에 대한 분노는 다른 활동으로 대체되었지만 의미 없는 몸부림에 불과했다. 이러한 결과는 어쩌면 내가 내 마음의 창 안에 그 많은 활동들의 의미들을 가두었기에 당연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 이쯤에서 누군가는 나에게 묻고 싶어 질 것이다. '그렇다면 상담은 당신의 고통을 없애주었습니까?'


상담은 당신의 고통을 없애주었습니까?

  어떻게 들릴지 모르지만 내 대답은 '아니오'이다. '아니오'도 그냥 '아니오'가 아니다. '철저하게'라는 부사를 붙이고 싶을 정도이다. 오히려 상담은 내 고통을 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고 인정하게 해 주었다. 나아가 고통으로 바라보는 내 인식이 고통을 더욱 극대화하고 있다는 것까지 알게 했다.


   이 곳에서 모두 밝힐 수 없지만, 또 고통이라는 문제가 지극히 주관적일 수 있지만, 나는 산전수전도 모자라 공중전까지 겪은 한 마디로 불량품 인생을 내 부모로부터 받았다. 그들은 불행했고, 불행했던 그들이 나에게 줄 것이 행복 일리는 만무했다.


  상담 시간 내내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내가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왜 20-3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렇게 또렷이 기억이 나 자다가도 벌떡 벌떡 일어날 만큼 울화가 치미는지,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는 건지,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신이라는 게 있다면 어떻게 나한테 이런 고통을 주는 건지.. 슈퍼바이저(상담 선생님)에게 거의 모든 것을 쏟아놓고 또 쏟아놨다. 그리고 이해받고 싶었다. 이해받을 수 없을 만큼 이해받고 싶었다.


이해받을 수 없을 만큼 이해받고 싶었다.

  마음 여행을 시작한 지 3년 조금 지나는 시점이었다.

  슈퍼바이저(상담 선생님)가 내게 물었다.


'제가 00 씨 이야기를 잘 이해하는 것 같나요?'

'아니요..'

'네, 전 잘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아요.'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다. 내가 배운 상담에 이런 반응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그(상담 선생님)가 한참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어떻게 이해하겠어요. 00 씨가 당한 그 고통을.. 이해한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내가 00 씨 상대로 사기 치는 거죠...'


  상담을 받으면서 의미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나는 이때를 유독 잊지 못한다. 왜일까? 세상 어디에서도 받아본 적 없는 공감과 이해가 그 시간,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역설적일 수 없는 장면이다. 누군가의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그 순간만큼은 가장 이해받는다는 느낌을 나에게 갖게 했으니 말이다.


 이처럼 상담시간은 내가 갖고 있는 나만의 고유한 마음의 창에 대해서 인정과 이해로 가득 채워졌다. 더불어 그 아픔의 순간들을 상담사와 함께 재 경험하며 지나왔다. 추후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 작업은 때로 죽음을 경험하는 것만큼 고통스럽고 끔찍했다. 그리고 나에겐 변화가 생겼다. 그건 바로 '받아들임(수용)'이다.


  상담사의 날 향한 이해와 수용은 내가 나란 사람의 독특성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경험은 타인과 나를 둘러싼 환경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창에 아주 조그마한 변화를 가져왔다.


 그건 바로, 고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변화이다. 슈퍼바이저(상담 선생님)는 시시때때로 내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행위에 대한 동의는 아님)'라고 공감해 주었다. 슈퍼바이저(상담 선생님)의 이런 반응은 나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이분법에서 '세상사 이럴 수도, 저럴 수도, 그럴 수도 있지..'라는 여유 있는 사고로 변화되게 이끌었다.


  일례로, 나에게 고통을 준 내 부모를 향해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었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거였어!'라는 원망이 '그래, 당신도 불행한 사람이었고, 그런 당신이 나에게 주었던 아픔들은 그냥 사고였다고 생각할게..'라는 자발적인 받아들임으로 바뀌었을 때 나는 내가 그들과 화해하고, 나 자신과 화해하고 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여기에 '신'에 대한 이해 또한 달라졌다. 신은 나를 억제하고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만 골라 시키는 것 같았던 과거와 달리 요즘 나에게 신은 '자유와 기다림'이다. 나는 신을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내가 그(신)를 선택해 주길 누구보다 원한다. 그러나 내가 선택하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이게 내가 이해한 신의 사랑방식이다. 이런 인식의 변화는 나로 하여금 오히려 신의 곁에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자라나도록 이끌었다.


  상담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지금껏 내가 가지고 있던 마음의 창을 잠시 내려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상담실에 앉아있는 사람이 가장 건강하다'는 말이 있다. 내 마음의 창이 슈퍼바이저(상담 선생님)에게 받아들여지니, 나 자신과 타인 나아가 환경을 이전과는 다르게 인식할 수 있는 조금 더 넓고 변화된 마음의 창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변화된 마음의 창은 이전에 갇혀있던 좁은 세계에서 조금은 더 넓어진 곳으로 나를 확장시켰다. 고통 앞에 어제 보다는 오늘 조금 더 편안한 얼굴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러한 편안함은 삶의 풍요로움으로 이어진다. 전에는 고통만 주는 것 같던 순간들이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진귀한 보물이었다고 고백하게 해준다. 과거의 고통이 현재 삶 에너지의 원천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요즘도 이따금씩 예고편 없이 고통이란 녀석이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 그 녀석과 대화를 나눈다. 슈퍼바이저(상담 선생님)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그러고 나면 그 속에서 나란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람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다양한 가르침을 건져내는 나를 발견한다. 고통 속에 끝 모를 수동성으로 삶을 대하던 나에게 희미하게나마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가 자라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지금껏 상담을 통해 경험한 것들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상담실 의자에 앉는다.


진정한 발견은 새로운 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
-소설가, 마르쉘 푸르스트-


  

나와 나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이, 아울러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내일이 오늘보다 더 편안해질 수 있기를...







'저자의 변'
그저 쓰는 것만으로 만족하자는 취지로 썼던 제 글이 적지 않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구독자가 생기는 것을 보며 '왜 상담이어야만 했는가'에 대해서 내용을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제 글이 부디 여러분에게 유익함의 경험이길 기원합니다.

마음 여행 이야기 05 '상담과 좋은 상담사란 무엇인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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