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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Jun 03. 2016

신도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마음 여행 이야기 02

  불우했던 어린 시절이 내게 준 남다른 경험들. 그 결과 고등학교 즈음부터 시작된 내면의 고통.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무기력 증상), 죽고 싶다."는 생각.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했었다. 등교도 하지 않은 채 연거푸 잠을 자버리거나 툭하면 학교에서 나와 거리를 방황하기 일쑤였다. 거리를 걷다 고층 건물이 보이면 무작정 올라가 한참 동안 아래를 내려다보다 오기를 반복했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인 것은 중학교 때부터 정기적으로 날 만나오던 대학원생(목회자) 멘토가 있었다는 것이다. 생사를 오고 가는 내면적인 갈등의 마지막은 멘토와의 전화통화였다. 그렇다. 고통을 함께 감당해 줄 만한 가족이 내 곁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때 나는 '죽고 싶다'는 생각과의 싸움보다 나의 이 고통을 알아주는 사람이 내 곁에 가까이 없다는 것 즉, 외로움이 가장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 중 하나였다.


  그렇게 하루가 천 년 같던 고통으로 고등학교 3년을 마쳤고, 기적같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라고 했던 기대와 달리 삶은 여전했다. 나를 괴롭히던 내면의 고통은 쉬는 법을 절대 알리 없는 일상의 반복처럼 찾아왔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기독교 학교였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고통의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그것은 바로 '신에게 매달리는 것'이었다. 나는 거의 매일 신 앞에서 내면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울며 불며 매달리고 쏟아냈다. 당시, 신이 내게 주는 위로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하루, 일주일, 길면 한 달은 그 마음이 계속됐다. 실제로 이때 나는 거듭남의 체험을 했고 침례도 받았다. 그렇게 대학 4년을 최대한 신을 떠나지 않기 위해, 내 고통이 다시는 나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참 열심히 매달렸다.


  그러나 신을 향한 마음을 지속하는 것은 여간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연약한 인간이었고, 신이 요구하는(꾸준한 기도와 말씀 보기)것들을 해내지 못할 때면 찾아오는 죄책감이 불편했다. 신의 은총을 입기 위해서는 꾸준히 뭔가 해 내야 한다는 의무감에 대한 반항심이 들었다고 하는 것이 가장 나다운 표현일 것이다.


  대학 졸업 이후, 나는 사회복지사가 되었다. 이후 사회복지사로서 4년은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사람을 직접 대면하며 하는 일이 많다 보니 내면적 소진은 상당히 빨랐다. 이유가 어찌 되었건 삶의 고단함은 내 삶을 점점 불만족의 상황으로 이끌었다.


  이런 불만족은 기본적으로 오랜 시절 함께한 내면의 고통에 더해져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고 더 이상 나를 신앞으로 이끌지 못했다. 때때로 이런 상황은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상황까지 계속되었다.


결국, 나는 신도 내 고통을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신을 향한 반감뿐이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인간적으로 20년 가까이 꾸준한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줬던 멘토(목회자)에서 이제는 나의 아버지가 된 그분을 향한 원망과 분노는 소위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말을 내 온 존재가 실현이라도 하듯 커져만 갔다. 나에게 신의 현현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도움을 주는 그의 헌신에 더욱 화가 났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손길마저 끊어질까 전전긍긍하는 나 자신이 너무 비참했다. 비참함과 분노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무한 반복되었다.


  살아내야만 하는 삶의 잔인함은 고통스럽다 해서 쉬이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과거와 달리 나는 나의 이런 고통을 덜어내기 위해 동료들과 수다 떨기, 일에 미쳐보기, 연애에 몰입하기, 죽자고 술 먹기, 운동 및 새로운 취미 갖기 등 나는 새롭고 다양한 활동에 나를 밀어 넣었다.


  결과는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오히려 뭔가를 해보았는 데 소용없었다는 좌절감에 절망과 분노는 더 깊어졌다. 나라는 사람이 일평생 살아온 삶의 방식(프로그램)은 쉬이 바뀌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앞서 나열한 저 활동을 통해 나를 구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철저하게 패배했고 구원은커녕 이젠 어디로 가야 할 지 방향감각 조차 잃어버렸다.


  나는 길을 잃었고, 그것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함을 의미했다.






To be Continued..

'왜 상담이어야만 했는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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