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생존기
영하 15도의 기록적인 1월의 한파였다.
아침 8시부터 시작된 이사는 좀처럼 정신이 없었다.
내 키만큼 자란 화초 녀석을 옮기느라 이삿짐센터 사장님은 전전긍긍이셨다.
이사를 모두 마친 며칠 뒤 화초는 시름시름 앓더니 허물 벗듯 입고 있던 모든 잎을 떨구었다.
마음이 아팠지만 그 바쁜 이사 속에 너까지 어찌 챙기니 하는 마음으로 위안을 삼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던 시점.
너무 추웠던 탓일까.
화초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했다.
혹시나 하고 한 가지를 부러뜨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마른 장작이 되어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점점 잘라나가다 보니 어느새 내 허리길이 까지였다.
겨울의 한파 덕분인지 빛이 잘 들지 않는 북향집 탓인지,
유난히도 봄이 느껴지지 않던 4월 초 일요일 아침.
회사 내 직장상사의 말도 안 되는 차별과 야비함에 만신창이가 되어 멍하니 티브이를 보는 내 눈으로
여리디 여린 잎이 날아들었다.
별 기대 없던 화초 녀석이었다.
당연히 죽은 줄 알았던 그 녀석의 여린 잎 앞에 나는 주저앉아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나 아직 살아있어. 그러니까 당신도 힘내.'
툭하고 눈물이 터졌다.
직장상사가 내게 준 상처, 그로 인해 짓밟힌 내 자존감만 보이던 나에게 화초는 내게 따져 묻지 않았다.
굳이 그 추운 날 나를 옮겼어야 했느냐고.
따뜻한 차 안에 나를 실어 옮길 순 없었느냐고.
내가 영하의 온도에서는 죽어버린다는 걸 알면서도 대체 왜 그랬느냐고.
결국, 나는 내가 그토록 야비하기 짝이 없다 여기던 상사의 입에서 듣고 싶었던
그 한마디를 내 입으로 하고 있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