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별 생존기
부재중 전화 목록
익숙한 이름이 보인다.
한 달 전, 자신하며 나와의 상담을 종결한 내담자였다. 1년을 만났고, 워낙 죽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강했던 그였다.
사실, 나는 유독 12월 말과 1월 초를 싫어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잘 만나오던 내담자들과 만남이 정리되고 그들과 함께했던 감정의 여운들이 마음 안에 여전히 진동하기 때문이다. 이 업을 그만두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쉽지 않은 시간들이다. 무엇보다, 그들과 헤어지는 과정 속 내가 미처 보내지 못한 애도의 감정들이 올라오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꾸준히 만나오던 내담자들이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
종결 이후 2년 동안 사적인 연락은 취하지 않는 것이 상담 윤리기에 상담사 혼자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
단, 내담자가 먼저 연락을 해올 때 난 그마저 거부하진 않는다. 혹시 그가 오랜 고민 끝에 내게 SOS를 보낸 것이거나 아니면 다시 상담을 받고 싶다 하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화기 화면 속 익숙한 그 이름을 눌렀다. 얼마간의 신호음이 울리고 수화기 너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선생님."
"전화하셨길래요. 00 씨, 잘 지내고 있어요?"
"네. 그럭저럭요..."
이전 통화에서 새로 취직을 했다며 이제 선생님보다 돈 더 많이 벌 것 같다며 들떠있던 목소리와는 거리가 느껴졌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
"........."
".........."
쉬이 대답이 없는 그였다.
나 또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하지 않았다. 내담자도 나도 말이 없는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뭘까.
그 1분도 채 안 되는 짧은 순간,
알 것 같았다.
지금 그가 어떤 마음일지.
집 떠나 타향에서 하는 직장생활이 어떨지, 워낙에 심리적으로 우울해하는 그에게 새로운 세상이 주는 새로움으로 가득 찬 만큼 얼마나 큰 두려움에 짓눌릴지...
하지만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를 통해 내가 판단하는 지레짐작이니..
끝내.. 그는 종결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버거워하던 그 모습처럼, 지금 일하는 중이라 통화를 길게 할 수 없다는 말로 통화를 끝냈다.
상담을 업으로 삼으며, 가장 원망스러운 부분이 종결이다. 그렇다고 나의 마음대로 종결을 미룰 수도 없다. 떠난다는 내담자를 집착적으로 붙잡을 수도 없다. 담담하게 보내준다. 그리고, 그 후 밀려오는 허탈함과 허전함, 버려진 것 같은 기분, 쓸모가 없어진 것 같은 허무함.. 등은 오롯이 상담사의 몫이다.
내담자를 만나고 나면, 이런 후폭풍들이 이렇게 생생할 것이라고 누군가 알려주었다면 상담을 업으로 삼진 않았을 것 같다. 상담과정 중 겪어내는 고통은 헤어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심리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말했다.
어떤 치료도 사랑 없이 불가함을...
내담자와 헤어짐 이후 오는 이별의 후폭풍은 거리낌 없이 과감하게 치료의 상황 속으로 나를 던져 내담자를 사랑했다는 반증이라 여기며 나와 내 내담자에게 위로를 건넨다.
사랑했다, 아주 많이, 그대를.
그러니 그대여,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던 늘 기억하기를.. 내가 이토록 그대를 사랑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