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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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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Lee Jan 29. 2019

사랑이 아니었다.

지구별 생존기

네, 감사합니다. 00 사무실입니다.


아, 네. 거기 000 씨 계신가요?


네, 전데요..



뚜뚜뚜 소리만이 남은 전화기를 쉬이 내려놓지 못했다. 전화기를 들던 순간부터 멈출 줄 몰랐던 가슴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다'







고등학교 1학년,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전부였던 시절.

자원봉사 동아리 모임에서 만난 그였다. 열여덟이 되던 해부터 남자와 여자로 만나기 시작해 대학 1학년이 되던 해 헤어진 내 첫 연애의 주인공.


이후 우리는 서로의 생사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연락도 만남도 없었다. 이따금씩 꿈속에 찾아와 내게 안부를 전하던 그였다. 그와 헤어진 뒤 시원찮았던 연애들이 스물아홉까지 이어졌다. 그가 그리웠고 나는 그를 찾아보기로 했다.


몇몇 동아리 친구에게 수소문했지만 알 길이 없었다. 그 날 새벽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의 이름과 주소가 일치하는 청첩장을 발견했다. 그렇다. 그해 그는 결혼을 했다. '딱 한 번만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던 마음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사랑과 전쟁의 내연녀가 된 것 같았다. 심지어 그와 나의 직장이 걸어서 채 5분도 되지 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땐 내가 마음만 먹으면 그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어찌나 아찔하던지...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무엇 때문인지 물을 겨를도 없이, 그 후로도 그는 내 꿈에 자주 나왔다. 연이은 연애 실패로 그에 대한 그리움은 더해져만 갔고, 그가 나를 어떻게 사랑해 주었었는지, 얼마나 순수했었는지.. 등등 기억 속 그에 대한 이미지가 걷잡을 수 없이 다채로워졌다.


당시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나는 사무실 한 복판에서 실신을 했었다. 눈을 떠보니 병원이었다. 환자복을 입고 맨 정신에는 차마 허락하지 않았을 것 같은 굵기의 바늘이 내 팔에 꽂혀있었다. 그제야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처치를 하는 간호사의 명찰에 적힌 병원 이름 때문이었다. 일전에도 실신을 많이 했었고 만약 회사에서 실신을 하게 된다면 이 병원으로 올 것이라는 내 머릿속 나름의 시뮬레이션이 역시나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순간, 빨리 이 병원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일어나 로비로 나갔다. 그때였다. 15년의 세월 속 끼지 않던 안경, 익숙하지 않은 가운 등 알아보지 못할 이유가 여럿이었지만 단번에 내 눈으로 뛰어든 사람. 시 공간을 초월해 망부석이 되어버린 내 앞, 환자 침대를 빠르게 움직여 가로지르는 그였다. 그 짧은 찰나, 나는 분명 보았다. 그의 눈을 똑바로. 그러나 내 시선은 그의 마음에 가 닿지 못했고, 그렇게 그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날 이후 진행된 여러 검사를 하기 위해 찾은 그 병원에서 차라리 잘 되었다 싶은 마음으로 나는 편안했다. 그에 대한 그리움은 여전했지만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던 간절함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리고 1년.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조금 전 수화기 너머 들려오던 단 한 마디 만으로 또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만나자.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와 똑같았다. 그는 여전히 거침이 없었다. 나는 분명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결혼을 한 당신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한 가정의 파괴범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 편치 않다는 이유였다.



나 이혼했어.



그 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나이였다. 하지만 확실히 하고 싶었다. 이틀 뒤로 시간과 장소를 정했다. 10분 먼저 도착했다. 야구점퍼를 입고 들어오는 그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신기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주문했던 차가 나왔지만 그도 나도 채 한 모금을 넘기기 어려웠다. 그의 야구점퍼를 보며 야구는 7회 말에 가면 공짜로 볼 수 있다는 것, 야구 배트 잡는 법, 야구공 던지는 법 등 그에게 처음 배웠던 잔상들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잘 지냈지?


응..


이렇게 가까운지도 모르고.. 참...


그러게..


난 아무리 찾아도 널 찾을 수가 없어서.. 딱 한번 얼굴만 좀 봤으면 좋겠다 싶었거든... 사실 몇 년 전부터는 꿈에도 니가 그렇게 수시로 보이더라구.. 근데 찾을 수가 있어야지..



그의 말에 왈칵하고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겨우내 막아냈다. 그의 결혼도, 직장도 알고 있었다는 나의 말에 그는 잠시 동안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너 진짜 나쁘다. 끝낼 때도 그러더니.. 진짜 잔인하다.



그는 15년 전 나의 일방적인 이별통보를 말하고 있었다. 결혼을 빨리 하고 싶다던 그의 말에 덜컥 겁이 났고, 말 그대로 달아났다. 그렇게 나는 그를 버렸었다. 하지만 그가 결혼하던 해 내 나이 스물아홉, 내 인생에서 그처럼 나를 사랑해 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를 찾았던 것이다. 시간은 내편이 아니었고, 그에 대한 내 마음을 단념했었다.


이후 그는 힘겨웠던 결혼생활과 이혼 과정에 대해 털어놓았다. 내 질문에 대한 답들이었다. 더 이상 막아지지 않는 눈물이었다. 한 동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울고 있는 나였다.



너 이러면 나 더 이상 말 못 하겠다.



잘 살지 그랬어. 좀 잘 살지.



탄식에 가깝게 터진 입술은 덜덜 떨고 있었다. 이내 터져버린 눈물은 한 없이 날 아껴주었던 그의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사랑 앞에 늘 헌신적인 그였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익숙해하던.. 날 향한 그의 헌신이 커질수록 두려웠고 겁이 났다. 그래서 도망친 나였다. 그런 그가 인생에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결혼생활이 깨어져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어떤 말로 그를 위로해야 하는 것인지 그도 아니면 내가 당신을 참 많이 그리워했다고 보고 싶었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나도 당신 꿈을 그렇게 꾸었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도통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이후, 그와 나는 두세 번 얼굴을 더 보았지만 만남을 더 이어가진 못했다. 그가 처한 상황이 나를 만날 수 없다는 이유로 말이다. 15년 전 그가 나를 향해 울고 매달리고 떼쓰던 것을 내가 하고 있었다. 나에게도 기회를 달라며...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그의 병원 앞을 지날 때면 그를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날 펑펑 울었던 내 눈물은 사랑이 아니었다. 내 가장 순수했던 시절과 장면 속 주요 등장인물이 망가지는 것을 볼 수 없었던 내 나르시시즘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류근 시인이 그러지 않았던가.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아마도 나는 이렇게 애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때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해 주었던 한 존재에 대한 떠나보냄을 말이다. 오늘은 이 지구라는 별, 이별 이후 애도하느라 힘겨워하는 모두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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