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쉬어야 할 때

by 나나꽃

욕실에서 미끄러져 팔이(손일 수도) 욕실 용품을 담은 바구니를 내리쳐 뒤엎고 머리통이 타일 벽에 부딪히며 나동그라지는 순간, 한 문장이 이마를 긋고 지나갔다.

‘이게 내 마지막이야?’

입에서는 유치한 외침이 터져나왔다.

“하느님, 저 좀 살려주세요!”


머리 감고 샤워하고 타일 바닥을 닦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엎드리기가 귀찮아 수세미를 발로 밟고 신나게 타일을 문지르던 중이었다. 왼손, 왼팔에 열이 오르고 통증이 밀려왔다. 골반은 안 부서졌네? 머릿속은 괜찮나? 가슴이 쿵쾅쿵쾅 다리가 후들후들 정신은 번개를 맞은 듯... 머리카락도 못 말린 채 택시를 잡아타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뭔가 열 받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대학병원 응급실을 체험해보시라.

엑스레이, CT 촬영에 다치지 않은 쪽 팔과 손까지 촬영해야 한다고... 여기서 문제제기를 했고 웃음이 터질 만한 대화가 오갔다.

“멀쩡한 쪽을 왜 찍나요?”

“양쪽을 비교해 봐야 해요.”

“다친 팔과 안 다친 팔을 비교하면 당연히 다르죠. 글구 사고를 당해 팔이 한 쪽밖에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요?”

비교를 한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인체 조직에 문제가 있고 없고를 다른 쪽과 비교를 해보며 판단한다니, 그리고 같은 사람이라도 양쪽이 복제한 듯 똑같을 수가 있나? 내가 들은 대답은 이랬다.

“환자분은 양쪽 팔이 다 있잖아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대학병원 레지던트 맞나? 블라블라 대화가 좀 더 이어지는데 내 입을 막는 선고가 내려졌다.

“하기 싫으면 다른 병원으로 가시는 수밖에 없어요.”

한 번 더 버텨봤지만 결국 멀쩡한 팔과 손도 엑스레이를 찍었다.


머리 CT에 이상이 없는 것 같다는 것에 감사하며 원무과에서 진료비를 결제하고 진통제 받아 밤 1시에 들어와 자고 일어났는데, 진료비 영수증 내역을 보고 과잉 진료와 지나친 진료비에 스멀스멀 열이 올랐다.

아무리 응급실이지만 한두 번 교육받으면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과장법이지만 실제 실습을 한 의과대 출신들은 버럭 화를 낼 수도 있겠다) 세미 깁스붕대 처치에 18만원, 재료비는 따로 4만 얼마, 하염없이 기다린 당직 레지던트가 내려와 CT를 보고 “골절 같은데 정확히 모르겠다”는 말을 3분쯤 하고는 “진료 예약하고 교수님께 진료받으시라” 한 것이 진단비 9만 얼마, 기타 등등. 이 외에 전문용어가 가득한 상세내역이 두 장이었다. 부담은 개인부담 50퍼센트, 공단부담 50퍼센트.



따져보려고 병원에 전화했더니 우린 그런 거 말해줄 이유 없으니 심사평가원에 연락해보라, 심사평가원에 전화했더니 보건소 담당이다, 보건소에 전화했더니 심사평가원에서 하는 일이다... 책임 떠넘기기였다. 같은 얘기를 반복하면서 보낸 시간이 두 시간쯤 되려나? 심사평가원 상담사가 성실히 응대한 것은 고마웠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한 말은 이랬다.

“진료는 의사의 고유 권한입니다.”

결국 의사의 결정에 대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권한과 권력은 견제할 수단이 있어야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사용된다는 건 모르나? 마지막으로 다시 심사평가원에 전화했을 때 뾰족한 수는 없이 폭풍 공감해주는 상담사에게 위로받으며 모든 걸 포기했다.


이제 왼쪽 손을 쓸 수 없는 불편함이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고스란히 느껴진다. 오른손을 쓸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인가? 한쪽 손만 쓰면 속도가 절반으로 줄어드는 게 아니라 5배, 10배 줄어든다. 두 손으로 타자를 칠 때와 한 손으로 타자를 칠 때를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속도가 줄어드는 것은 손가락의 개수가 반밖에 되지 않는 것과 함께 양손 호응의 감각이 사라진 결과다. 왼손을 잃은 오른손은 왼손 대타 역까지 하며 자판 위를 헤맨다. 오타가 잦다. 지금 이 글도 오른손으로 더듬더듬 써나가고 있다. 옆으로 고정된 왼손을 써보려 하니 손가락 하나 정도만 거들 수 있다. 그것만도 큰 도움이 된다. 아, 컴퓨터로 일하는 주 3회 재택 알바는 어떡하지? 머리 감고 세수하고 옷 갈아입는 건? 식사 준비는? 설거지는? 청소는?


슬리퍼를 신고 산책로로 나와 맨발로 걷기 시작했다. 며칠 전의 우중 맨발 산책을 내 몸이 즐거워했던 게 기억났다. 몸이 이럴 땐 마음을 쉬게 해주자. 병원이라는 골리앗과의 싸움은 엄두조차 내는 게 아니다. 소위 엘리트 집단들이 권한을 넘어 권력 남용을 하는 이 사회에서는 연대를 해도 이기기 힘들다. 억울해지기 전에 까불지 말고, 조심하고, 아프지 마라.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생각했다.


발바닥에 닿는 까끌까끌하고 따가운 흙의 자극이 원초적인 고향을 느끼게 해 금세 단순해졌다. 생각들이 사라지고 걷는 일에만 감각이 집중됐다. 아직 습기가 가시지 않은 땅은 시원하고도 친밀하게 내 발에 밀착됐다. 장마 뒤끝의(또 큰비가 온다는 기후위기 전문가의 말도 있지만) 선선한 바람에 나무 향기가 싱그럽게 짙었다. 부상으로 받는 보상인가? 어쨌든 이 순간은 잡다함 없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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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공영방송이든 포털 뉴스든 거의 보지 않고 두 개 정도 시사 유튜브만 시청하다 보니 폭우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몰랐다. 참사 수준의 피해가 있었고 피해자 규모도 큰가 보다. 장마와 비 얘기를 한 것이 좀 찜찜해 덧붙인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과 피해자 분들이 피해를 입은 만큼 보상을 받길 바란다.

10.29 이태원 참사에 이어 이번 참사도 인재로 보인다. 아무런 대비도 대책도 없었고, 역시나 또 기승전 전 정권 탓... 집권 5년이 될 때까지 전 정권 탓만 할 것인가. 그것도 말이 되지 않는 억지를 쓰며.

참사가 엄청나고 사망자 유족들이 오열하는데, 초대받지도 않은 나토 정상회의에 가서 화보나 찍다가 "내가 한국 가도 상황은 달라질 게 없다"며 예정에도 없던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또 통크게 퍼주겠다 하고(10조 퍼주고 미국에서 산 무기까지 지원하고도 모자랐나?) 장학재단 만들겠다 약속한 뒤 아동병원에서 입원 아동에게 따봉 하며 태평하게 웃어주고... 이 사람에게 국민은 누구인가?

대통령 부인은 리투아니아에서 수행원 16명 동원하고 명품매장을 다섯 군데나 돌며 일반인들 통제한 채 명품 쇼핑 삼매경에 빠져 있었고...(양평 땅이 '김건희 일가 랜드'라 할 만큼 그녀-그녀 엄마-그녀 오빠가 어마어마한 양평 땅 소유자라는 게 알려지고, 그들의 땅값을 올리기 위해 국토부에서 고속도로 노선까지 휘게 만들어 난리가 났는데,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명품 쇼핑을 즐긴 권력순위 1위의 놀라울 만큼 대담한 그녀. 학력위조, 경력위조, 수상실적위조에 대해 "돋보이고 싶었다"는 어처구니없는 고백과 함께 대국민사과를 하며 "조용한 내조만 하겠다" 약속했던 사람과 이 사람은 같은 사람인가?)... 이들은 자신들의 직분이 무엇인지 0.1이라도 알까. 무소불위 법 위에 선 검찰 왕국의 대통령들이 그러니(지금 대통령은 두 명이다. 실세 김건희와 허수아비 윤석열) 그 이하 모든 공직자들까지 한통속이다.

대통령실 보도자료와 화보만 받아 기사를 쓰는 언론사들은 '영부인 귀국 때 에코백 들었다'며 똑같은 헤드라인 기사를 내보냈는데, 그 에코백 속에 들어 있던 샤넬백이 네티즌들에게 들켜 그녀가 얼마나 철면피인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었다.

나라가 개판 되는 거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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