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무척 좋아했다. 한때는 비 오는 날 일부러 비를 맞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친구와 문 연 술집을 찾아다니며 새벽까지 우중음주를 하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자 대학로 아르코소극장 얕은 계단에 앉아 가랑비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다가, 남은 담배를 노숙자에게 다 주고 비 그친 새벽 지하철 첫 열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다.
나는 비를 ‘온다’고 하지 않고 ‘오신다’고 했다. 비를 좋아하던 고딩 때 국어 쌤의 말씀을 오랫동안 지켰다.
“비는 ‘온다’고 하면 안 돼. ‘오신다’고 해야지. 그게 비에 대한 예의야.”
그 얘기가 너무나 멋지게 들렸고, 비가 오면 나는 누가 뭐래도 “비가 오신다”고 했다. 그 말에서 특별함을 느꼈다.
친구들과 파리 여행을 했을 때 일주일 내내 비가 내렸다. 나는 ‘비 오시는’ 파리가 무척 좋았다. 까만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어깨를 움츠린 채 우산 없이 거리를 오가는 파리지엔들이 전부 다 멋쟁이처럼 보였다. 대리석 계단이 있는 오래된 건물의 숙소 발코니에서 밖을 내다보면, 까만색 레이스처럼 이어진 건너편 2, 3층 건물 철제 난간 아래로 까만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비를 맞고 걸어가는 게 보였다. 파리의 풍경은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일 년 넘게 뉴스를 보지 않다 보니(TV는 아예 보지 않는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사고와 참사 소식도 뒤늦게야 접하고 있다. 누굴 만나지 않으면 더 그렇다. 유튜브를 뒤적거리다 <극한 호우, 대한민국을 삼키다>라는 ‘추적 60분’ 집중 르포가 화면에 떠 클릭해 들어갔다. 폭우로 인한 사태들이 충격적이었다. 빗물이 차오르는 지하차도에 갇혀 가족과 마지막 통화를 하는 한 시민, 진흙탕이 된 양계장 여기저기에 보이는 닭의 시신들, 지붕까지 침수되었다 엉망진창으로 모습을 드러낸 집들, 무너진 둑과 흙탕물에 잠긴 논과 밭…….
인재냐 자연재해냐를 떠나, 책임져야 할 사람들의 무능과 무책임과 전 정권 탓과 화보 쇼를 떠나(이들은 정말 너무 뻔뻔하다), 이제 비가 ‘오신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비가 무섭다.
비가 ‘오신다’며 유난스럽게 감성을 피워올리던 때의 낭만은 과연 되찾을 수 있을까. 엘리뇨니 지구온난화니 따질 것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다고 한다. 이산화탄소 발생량 줄이기. 즉,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다. 디지털 기기 사용 줄이기, 육고기 섭취 줄이기(식용으로 사육하는 소와 돼지에게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엄청나다고 한다) 같은, 우리가 생각지 못한 것들도 포함된다.
불필요한 인터넷 서핑과 유튜브 시청 자제하고 종이책을 읽는다거나, 웬만하면 에어컨 대신 선풍기를 돌린다거나, 덜 사고 덜 먹고 검소하게 생활한다거나……. 어려운 일도 아닌데 사실 실천하기가 쉽지도 않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지. 하지만 “비가 오신다”고 말하던 때의 그 특별했던 추억들을 고이 지키고, 다시 “비가 오신다”며 설치고 싶지 않니?
* 폭우로 인해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빌고, 피해를 입은 분들이 평범한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적정한 지원을 받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