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 신념이 위험할 때

by 나나꽃

가끔 유튜브 알고리즘이 엉뚱한 영상을 가져다놓을 때가 있다.

얼마 전 한 뉴스 영상이 떴다. 어느 서양 여성이 주스가 담긴 커다란 유리병을 앞에 놓고 미소를 짓고 있는 썸네일, 제목은 ‘수년간 생과일만 고집한 채식 인플루언서 숨져’였다.


7년 동안 채소와 생과일만 먹고 지내던(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O.O) 여성이 동남아 여행 도중 숨졌는데, 그녀는 생과일 식이요법의 건강 효과에 대해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전파해온 30대 채식주의자 인플루언서라고 했다. 건강 이상의 징후가 있었지만 치료받기를 거부하고 자신의 식이요법을 고수하다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 그 여성에겐 오직 채소와 생과일만 먹는 게 신념을 넘어 신앙이 되었던 것 같다.


깁스를 풀고 난 후, 양손 타이핑을 하면 다친 왼손에 통증이 심해 컴퓨터를 쓸 땐 타이레놀을 먹었다. 그 외엔 약 없이 왼손으로 조금씩 오른손을 거들며 불편했던 일상생활을 정상화시키려 했다. 그렇게 하다보면 차츰 나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건 단지 희망사항일 뿐, 왼손을 조금만 써도 손과 팔이 퉁퉁 붓고 저리고 시큰시큰하고 아팠다. 그러면서도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죽을 만큼 아픈 건 아닌데다, 평소 ‘약은 독이다’라는 신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입술 끝에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출몰했을 땐 급속도로 번지는 포진 때문에 별 수 없이 약을 먹지만, 감기에 걸리면 “약을 먹어도 일주일, 안 먹어도 일주일” 하며 할머니처럼 대추와 배, 생강을 사다 푹 삶아낸 물을 마시며 버틴다. 병원 진료를 받을 일이 있으면 처방받은 약을 제대로 먹지 않아 한참 지나서 쌓인 알약들을 모아 약국에 갖다주기도 한다. 의사가 안다면 “병원엔 놀러 오셨습니까?” 할 것이다.


손목이 가장 안 좋아 혹시 인대에 문제가 있나, 싶어 MRI를 찍어보려다 마음을 바꾸었다. 동네 병원에 문의하니 MRI 찍는 데 45만 원!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약사인 친구가 내 상태를 알고 건넨 조언을 듣기로 했다.

“볼타렌이라는 연고를 사다 하루 네 번 열심히 마사지하듯 바르고, 덱시부프로펜 성분 들어간 소염진통제 사서 꾸준히 먹어. 금세 나을 거야.”

친구가 말한 대로 했더니 정말 그대로 되어가고 있다. 일주일 만에 멍도 많이 사라지고 통증도 확실히 줄었다. 부기도 없다. 약을 독처럼 알고 멀리했던 결과 약발은 만점! 역설의 효과인가?


내 삶과 건강에 도움이 되는 신념도 교조가 되면 일이 커진다. 고집은 있어도 답이 없을 땐 포기를 하는 덕에, 일이 커지지 않고 하루가 다르게 왼손이 자유로워지고 있다. 채소와 생과일만 먹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채식주의자 인플루언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을 때 일단정지, 했다면 어땠을까. 예쁘고 명랑해 보였던 그 여성의 극단적인 신념이 안타깝다.


포기해야 할 땐 포기하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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