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텃밭을 분양받았다고 했을 때 “잘 생각해보라”거나 “힘들어, 힘들어”라며 그만두기를 조언했던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답답하고 서운했다. 부동산 투기를 한다는 것도 아닌데 시작도 하기 전에 왜 초를 치는 걱정? 못 들은 척 넘어갔지만 속으론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체력이 급격히 달렸던 초반의 문제는 곧 적응이 되면서 잘 지나갔다. 은근히 많은 할 일과 필수 중의 필수인 물주기를 위해 거의 매일 텃밭에 가야 하는 부담은 2~3일에 한 번 넘치도록 충분히 물을 주는 것으로 혼자 타협을 봤다. 이번엔 밭에 뿌린 씨앗과 모종들이 알아서 잘 적응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번에 40~50리터의 물과 알뜰히 모은 커피 찌꺼기, 달걀껍데기 가루 등 내가 밭에 쏟아붓는 정성을 채소들과 공유하는 녀석들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잡! 초! 순식간에 돋아나 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며 빈 땅을 점령해가는 잡초는 두 가지로 나를 시험했다.
하나는 ‘어디 한번 뽑아봐~라’ 약올리듯 없애는 만큼 어느새 땅을 비집고 나오는 녀석들을 적당히 뽑아야 할지 보이는 대로 다 뽑아야 할지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이다. 대충 뽑자니 내 채소들에게 갈 양분을 엉뚱한 녀석들에게 빼앗기는 것 같고, 다 뽑아버리자니 어차피 잡초는 또 나올 텐데 고생하며 긴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을까 싶고. 심각하지는 않지만 사소하고 좀 성가신 갈등이랄까.
다른 하나는 텃밭 농사에 대해 조금 큰 물음표가 생겼다는 것이다. 과연 텃밭 가꾸기는 평화롭기만 한 일일까? 내가 먹을 채소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인정사정없이 잡초를 잡아 뜯고 호미로 콕콕 찍어내서 풀밭으로 던져버리는 모짊. 내 밭에 있는 너희들 용서할 수 없어, 하듯 이름 없는 풀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손으로 잡아채는 텃밭에서의 폭력……. 대체 잡초에게 무슨 죄가 있기에? 잡초를 잡초라 생각하지 않고 채소와 같은 식물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입장에선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에 참상을 당하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과 비슷한 처지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내린 결론. 텃밭 가꾸기를 거창하지 않게 생각해야 오히려 속 편히 텃밭을 가꿀 수 있을 것 같다. 그린 라이프를 실천하는 대단히 멋진 일이라거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지속가능한 생태주의적 삶이라거나 그런 것 말고, 그냥 재미로 흙 만지면서 잘 먹는 채소 기르고 놀기 위해 하는 일. 이렇게. 가끔 별난 지점에서 진지해지다가 싱겁게 끝나곤 하는 나, 정상인가요?
어제, 김치 두 통이 나올 양의 열무를 수확했던 자리에 새싹 채소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잡초들을 싹 뽑았다. 그런 다음 얼갈이배추 씨앗을 위해 커피 찌꺼기와 달걀 껍데기 가루를 뿌리고 갈퀴로 갈아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놓았다. 얼갈이배추는 엄마가 심으라고 주문한 새로운 채소다. 이틀 만에 돋아난 상추밭 잡초는 다음에 와서 뽑아야지. 끝없이 이어질 잡초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