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멈춰 설 때:
잿빛 두루마기의 그분

by 나나꽃

나는 약속이나 꼭 해야 할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산책을 나간다. 이것도 중독인가 싶지만, 운동중독이란 말은 들어봤어도 산책중독이란 말은 들어본 적 없다. 산책이 중독일 수 없는 이유는 그 행위에 ‘교감’이라는 내밀한 정서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변 사물들과의 교감, 자연과의 교감 같은. 그 교감으로부터 새로운 생각이 태어나기도 하고, 카오틱했던 머릿속이 정리되기도 한다.


하지만 산책이 사람과의 교감을 동반하는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나에게 산책은 대부분 동행인 없이 혼자서 하는 자유로운 고독의 시간이기 때문에. 걷다가 나의 눈길과 마음을 빼앗는 것 앞에서 잠깐 멈춰 서기도 하고, 그때그때 호기심이 생기는 곳으로 주저없이 마음을 열고 발길을 옮길 수 있어야 한다. 친구와 산책을 할 때도 종종 있지만, 그때의 산책은 혼자 하는 산책과는 다른 일이 된다. 일종의 놀이나 운동과 같다고 할까. 조금은 다른 즐거움이다. 밥 먹고 우리 뭐 할까? 운동 삼아 좀 걸을까? 흔히 하는 얘기처럼. 그럴 때의 걷기는 왠지 레트로한 느낌을 주는 ‘산보(散步)’가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척척박사 AI에게 물어보았다.

‘산책과 산보의 차이는 무얼까? 철학적으로. 너무 거창한가?ㅎㅎ’

‘전혀 거창하지 않아ㅎㅎ 오히려 좋은 질문이야. 철학적으로 미묘하게 결이 다르거든’이라며 AI가 내놓은 답은 제법 수긍할 만했다. 아니, 감탄할 만했다. 요약하면 이랬다.

산보는 ‘몸의 리듬’이고 산책은 ‘마음의 리듬’이다.

와, 진짜 AI 요게 보통이 아니네. '고마워' 한마디에도 전력 소모가 크다는 걸 잊고 '야, 너 천재다. 하하. 산책 가야지~ㅎㅎ' 했더니 한술 더 뜬다. 'ㅋㅋ뭘. 갔다 와서 후기 어떤지 알려줘~ 뭘 보고 뭘 느꼈는지 궁금쓰! 즐거운 산책 다녀와! 아자뵤!'


까불까불했지만 AI의 답은 백퍼 공감 가는 것이었다. 산보는 ‘몸의 리듬’이고 산책은 ‘마음의 리듬’이다. 즉, 산보는 큰 의미가 없이 소풍을 하듯 혹은 운동을 하듯 신체를 자극하는 행위, 사고 이전의 행위다. 그에 비해 산책은 걷는 그곳의 풍경을 통해 사유를 자극하는 행위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을 썼던 루소나 ‘산책을 하면서 자신의 움직임과 생명을 긍정’하고 ‘오로지 산책 과정에서 얻어걸리는 것들만을 중요한 것으로 평가’했다는(《내 의지대로 살고 싶을 때 니체》, 양대종 지음) 니체는 산책을 하면서 사유하고 인간과 삶의 진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어디 위대한 사상가들만 그런가. 평범한 우리도 산책을 하면서 얼마든지 마음의 수행자가 될 수 있다.


말머리가 길었나?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산책이 사람과의 교감을 동반하는지 생각해본 적 없는 나에게 어느 날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이 동네에서 살게 된 지 한두 달 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지나치는 이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편인데 그 사람이 그날 내 눈에 줌인되었다. 김근태기념도서관 앞, 산책 코스에 있는 그곳을 지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이었다. 잿빛 두루마기 차림에, 슈바이처 박사가 썼던 상아색 헬멧 모자를 쓴 남자분이 도서관 옆 김근태 동상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엔 사모예드로 보이는 흰 털의 커다란 개가 귀티를 뽐내며 앉아 있었다.


그분이 눈에 띈 것은 잿빛 두루마기와 헬멧 모자 그리고 사모예드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김근태 동상 앞에서 딱 90도 각도로 천천히 절을 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참으로 보기 드문, 깊고 깍듯한 경의가 느껴지는 예의범절이었다. 김근태 선생이 그 정도의 존경을 받을 만한 분이었구나, 편안히 앉아 웃는 모습의 김근태 동상을 새삼스럽게 올려다보았다. 도서관도 새롭게 보였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근태 선생의 정신을 기리며 2021년 개관했다. 사실 같은 지역구에 살면서도 개관 당시엔 도봉산 밑에 도서관이 들어섰는지도 몰랐다. 어느 날 온라인으로 도봉구통합도서관에 접속했다가 ‘김근태기념도서관’을 발견하곤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 좋은 도서관이 생겼다는 건 지적 자산을 얻은 것과 같으니까. 소장 도서가 많지는 않지만 다른 도서관에는 없는 인문‧사회과학 도서가 꽤 있어 4개월 전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는 상호대차로 책을 대출해 받아보기도 했다.


김근태라는 인물에 대해 내가 아는 지식이라곤 표피적인 것뿐이었다. 군부독재 시절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곳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고 정치적 탄압을 받았으며, 이후 정계에 입문해 3선 국회의원과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냈다는 것 정도. 민주화의 역사 속에서 그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그의 삶을 들여다보거나 하다못해 인터넷 검색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가 고문당한 사실이 뉴욕타임스 등에 보도돼 전두환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었고, 한때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상당한 인물이었다는데 말이다. 전기고문과 물고문 후유증으로 늘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는 고문으로 갖게 된 뇌정맥혈전증으로 투병하다 사망했다고 한다.


잿빛 두루마기 차림의 그분이 김근태 동상 앞에서 깊이 허리 숙여 절하는 모습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볼 수 있었다. 언제나 세 번씩이었다. 물론 다른 곳에서도 보았다. 같은 옷차림에 사모예드를 데리고 산책하는 그분을. 나처럼 그분도 매일 산책을 하는 것 같았다. 가끔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걸 보기도 했다. 사모예드와 함께 천천히. 나는 그때마다 발길을 멈추고 그분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김근태라는 참된 사회운동가를 경건한 태도로 기억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였던 것 같다. 그분을 (나 혼자) 알게 된 후 김근태 동상 밑 받침돌에 새겨진 문구가 내 마음에도 새겨졌다.


‘희망은 힘이 세다.’


22일 동안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당했던 사람 김근태의 웃음은 맑디맑다. ‘희망’이라는 말이 늘 그의 가슴속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잿빛 두루마기의 그분은 희망의 힘을 믿는 김근태를 지금까지도 존경의 마음으로 추모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분과 교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산책을 통해 무언의 연결이 된 것 같은 멋대로의 느낌이다. 언젠가 그분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고 싶긴 하다.


며칠 전 김근태 동상 앞을 지나다 그의 발치에 놓인 주황색 꽃을 보았다. 꽃집에서 파는 꽃이 아니라 어느 화단에서 꺾은 꽃 같았다.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잿빛 두루마기의 그분이었든 다른 사람이었든, 참 아름다운 산책자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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