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어쩌다 보니 졸업을 했고 어쩌다 보니 군대도 졸업을 했고
어쩌다 보니.. 회사도 졸업을 했다. (잠정적이지만)
그런데 어쩌다 보니 1년이 후딱 가버리면 너무 슬플 것 같다.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고 계획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것들이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것들 투성이 인 것만 같다.
정해진 장소에 매일 가던 때와는 달리 내가 매일 갈 곳, 매일 할 것, 매일 먹을 것, 매일 같이 있을 사람을 고를 수 있는 것은 가능성을 이~만큼 열어놓은 것이기에 참 설레는 일이기도 하나 그만큼 매일매일이 선택의 연속이다. 전에 비해서 선택의 양이 두배? 정도 늘은 것 같다.
내가 그 장소에 가거나, 학원에 영어를 배우러 가거나, 도자기 굽는 것을 배우러 공방에 가거나, 회사에 일하러 가거나 그냥 내가 그곳에 가면 저절로 상황이 나를 이끄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내가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내가 나가지 않으면 새로운 일은 절대 생기지 않고 사람 만날 일도 생기지 않고 일거리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기에 1시간이라는 가치가 약간 더 무거워진 느낌이다.
매 순간이 소중해서 뭔가 해내야 하고 이 시간을 알차고 가치 있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여유를 즐기는 것을 가로막곤 한다.
뭔가 해내야 해.. 결과물을 만들어야 해..라는 스스로에게의 부담감.
수박을 먹는 것. 해질 때쯤 되면 시원한 바람맞으며 동네 한 바퀴 산책하고 돌아오는 것.
적당히 체력을 소진하고 입고 있는 옷에 살짝 땀이 스며들 정도 그 정도가 딱 좋다.
신기한 물건을 구경하고 사람 구경도 좀 하고 적당히 장을 봐와서 뚝딱뚝딱 만들어서 아 역시 내 음식 솜씨는 참 좋지 않네 하고.
뭐 대단한고 거창한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해온 일을 하는 것.
쉬는 것.
이런 것들이 요즘 들어 문득문득 고개를 내밀고 나 좀 봐달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편안함, 즐거움, 설렘, 휴식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별거 아닌 일상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어릴 때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느낌의 색을 지금도 가끔 느낄 때가 있다.
말로 형용할 수 없고 사람마다 다른 고유의 향수 같은 거라서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데 가끔 그런 좋은 느낌이 찾아올 때가 있다.
어른이라는 말이 어색했던 진짜 어렸던 시절에서 이제는 누가 봐도 어른인 것이 당연한 나이로 어쩌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참 좋은 많은 것들이 소리 없이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그냥 한번 해볼까?라는 말은 젊은 사람 10대 20대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번 해볼까는 우리가 늙어가면서 누구나 언제나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많은 경우 그냥 한번 시작해보는 것이 그렇게 까지 리스크가 되지 않는다.
아 해보니까 이건 나랑 안 맞네 하면 그쪽 분야는 내 분야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고 운이 좋아서 내가 잘하는 분야라면 또 새로운 기회를 얻어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시작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찾지 않으면 누가 거저 가져다주지 않는다.
평생 그런 적은 손에 꼽는다. 내가 묻지 않고 내가 찾아가지 않고 내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내가 제안하지 않고 내가 서류를 넣지 않았는데 나에게 먼저 찾아와 도움을 주거나 기회가 될만한 결과로 이어진 적은 많지 않다.
우리는 아마 한번 해보는 것의 총집합인 세상에서 살고 있는 줄도 모른다.
그냥 한번 해보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또 잘돼서 사업도 하고 결혼도 하고 학교도 가게 되고 또 이게 아니란 것을 알고 다른 것을 해보고 또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의 소개로 새로운 회사에 취직을 하기도 하고.
누가 정해주지 않아도
내가 알아서 잘 사는 방법을 알아가고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