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쳐도 멈추지 않는 나의 한걸음 두 걸음
이 바닥은 링이 아닌데 왜 누굴 죽여야 해
단순히 좋아했던 일이 조금은 싫어질 때
성공은 목줄이자 족쇄
그대의 자리가 어딜지라도 관대하길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
So Far Away (Feat. Suran) - 어거스트 D
사회에 막 나왔을 때
나는 나이만 먹은 신생아 같았다.
경쟁이란 걸 생각해보지 못했고
사람들의 생각은 결코 나와 같을 수 없다는 것과
보이지 않는 질투와 시기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15년 넘게 사회 경험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나는
아직도 사회에 완전하게 적응하지 못했고
여전히 견제와 평가 가득한 세상 속 방황하고 있다.
"선생님, 보고 좀 배우세요."
당시 1년차 동료는 클라이언트의 행동을 꾀병이라 주장하며 바닥에 있는 클라이언트를 그냥 내버려둬야 한다고 말했고, 나는 설령 그게 꾀병일지라도 정말 괜찮은지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 신념 차이로 갈등이 생겼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여러 감정이 밀려왔다.
처음엔 너무나 무례한 말에 당황하여 대꾸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며 인식하지 못했었던 감정이 서서히 드러났다.
도대체 멀 보고 배우란 걸까?
무엇을 알고 뱉어내는 말일까?
여기에 내가 대응할 가치가 있는가?
무례하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경쟁사회 속에서 오랫동안 지내오며
원래 강했던 내 기질적 회피와 순응은
점점 더 강화되고 있는 듯하다.
처음엔 본능이 갈등상황을 회피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상황을 뒤늦게 인지되면
그 화가 오랫동안 나를 찔러온다.
그 상처는 흉터가 되어 내게 남아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가 화를 내며 맞서 싸웠다면
과연 그 상황이 달라졌을까?
결국 나는 사회 경험이 얼마되지 않는 어린 동료와 같은 수준의 사람이 될 뿐이다.
그렇다고 그냥 넘기기엔 계속 무시당하는 사람이 된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날것의 사람에게
어떤 대응이 효과가 있었을까?
나의 결론은 해결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잘하면 시기를 받고. 무던하게 굽히면 만만해 보인다. 의견이 다르면 나의 주장의 옳고 그름과 관계없이 잘못된 사람이 된다. 눈에 띄면 시기와 질투가 따라오고, 눈에 띄지 않으면 존재감조차 잊힌다.
균형을 잡으려 애쓰지만, 그 균형은 언제나 불안정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상황들, 다양한 말들로 내 마음에는 상처들이 모여 흉터가 된다.
"흉터는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겉으로는 조금 못생겼을 수 있지만, 흉터는 당신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카일 카펜터 (Kyle Carpenter)
성경에서도, 위와 같은 유명한 명언에서도, 어른들도 한결같이 말한다.
"지금은 힘든 경험들도 언젠가 나의 경력을 증명하는 흔적이 된다."라고 말이다.
이런 명언들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처가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흉터들을 보며 계속 상처가 아려오기도 한다.
나는 지워지지 않을 그 흉터들을 안고
세상을 한 걸음씩 나아가지만,
이미 지칠 때로 지쳐버린 나는.
그저 상처투성이의 지친 여행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