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가는 나를 다시 데려오는 작은 의식
20대의 나는, 술은 그저 ‘쓴 액체’였어.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술이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시기’가 갑작스레 문득 찾아왔던 것 같아. 한잔의 술이 내 마음을 살며시 어루만져주는, 어떤 친한 친구보다 더 친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
사실 술의 맛이 달라진 건 아니야.
단순히 내 입맛이 변한 것은 아닐까 싶기도해.
살아가며 쌓인 경험들, 점점 더 다양해지고 무거워진 감정들이 그 무게를 잠시나마 덜어내고 싶어서 술에 기대게 된 것 일지도 모르겠어.
혼자 있는 시간에 마시는 술 한잔이
문득 은은한 위로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어.
그래서일까?
내 마음은 ‘술이 좋아졌다.’라는 말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아.
어른이 되어가면서 감정들은 점점 복잡해졌고.
어릴 땐 잘 몰랐던 외로움, 책임감, 그리고 사소하지만 깊은 기쁨들까지도, 이제는 술 한잔과 함께 하는 것 같기도 해.
왜 그럴까?
어릴 땐 내 인생의 전부처럼 느껴졌던 친구들이 학교 진학, 취업, 결혼, 육아 같은 각자의 생업을 위해 자신들의 삶 속으로 흩어져 가더라.
누군가를 붙잡아 보고 싶어도, 붙잡힌다고 해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일하고 경쟁하는 사회 구조속에 살아.
나 하나 살아내기도 버거운 하루들.
그 속에서 내 짐을 누군가에게 나눠 들어달라는 말조차 서로에게 부담이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어. 여유가 없는 건... 사실 모두가 같으니까.
이럴 때 술 한잔은.
어쩌면 누군가를 찾지 않아도 나 혼자만의 시간을 열어주는 작은 안식이 되곤 해.
오늘의 나를 조용히 돌아보게 하고.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도록 빈자리를 내어주는 회복의 시간이 되어주더라고.
술이 내게 주는 위로는 ‘취함’이 아니라 ‘멈춤’에 가까웠어.
뛰기만 하면 온전히 숨을 쉴 수 없듯이.
잠시 러닝 코스에서 벗어나 깊게 숨을 들이쉬는 그 순간처럼
내 안의 작은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짧지만 소중한 균열 같은 존재랄까?
성장한다는 건 어쩌면...
삶의 속도를 따라가느라 점점 잃어버리던 나를 다시 붙잡아 오는 것일지도 몰라.
그리고 그 순간을 붙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내게는... 어쩌면... 술 한잔이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