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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라기 Apr 21. 2024

꽁냥이 챌린지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

“동생! 누나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까?”

친구들과 일박이일 캠핑을 다녀온 딸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물었다. 평소에도 엉뚱한 장난을 잘 치는 누나인지라 둘째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응, 이라고 말해, 빨리!”

누나의 재촉에 둘째가 헛웃음을 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스마트폰을 들이민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 다닙니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 다닙니다.”

반복되는 음악에 맞추어 딸과 친구들이 트램펄린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영상이었다. 깔깔대며 춤동작을 하는 모습이 신기해 나도 한참을 들여다봤다.

“이게 뭐니?”

“꽁냥이 챌린지. 어머, 우리 엄마 모르는구나?”

새침데기 같은 표정을 짓고선 쫑알쫑알 설명을 덧붙인다. 몇 년 전 뉴스기사에 나왔던 기자의 멘트에 박자와 음악을 입히면서 급부상한 챌린지란다. 10초 내외로 반복되는 음악에 맞춰 안무를 추는 챌린지인데 MZ들 사이에서 한창 인기였다고 한다.

“엄마한테 그 영상 보내주라.”

“뭐하게요?”

“재미있는 것 같아서 심심할 때 보려고.”

“안 돼요. 친구들 초상권 있어서 거절!”

영상은 후다닥 닫아버리고, 그 대신 사진을 보여주겠단다. 숯불 바비큐며 머시멜로 구이를 한가득 차린 사진부터 밤새 원 없이 즐겼다는 루미큐브 사진까지 줄줄이 쏟아냈다. 처음 간 캠핑이 재미있었는지 쫑알쫑알 거리는 모습에 내가 다녀오기라도 한 듯 기분이 좋아졌다.


“너무 뛰었나? 온몸이 쑤시네.”

트램펄린 위에서 얼마나 뛰었는지 꽤나 피곤한 모습이다. 노곤한 표정으로 안마의자에 앉은 딸에게 오미자차를 한 잔 내어주고는 말을 걸었다.

“울 딸은 젊어서 좋겠다.”

“엥? 엄마도 젊거든요.”

“엄마가?”

“그럼~. 백세시대라잖아요? 겨우 반밖에 안 살았네. 에이, 우리 엄마 젊다 젊어.”

놀리는 건지 진심인지 모를 몇 마디 말을 하고는 스르르 눈을 감는 딸이다.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보면 하루하루가 낯설다. ‘누구세요?’ 소리 내어 묻고 싶은 날도 있다. 미국 16대 대통령이었던 에이브러햄 링컨은 말했다. <세상에 처음 나올 때는 부모님이 만들어준 얼굴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얼굴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마흔이 넘는 모든 이는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살아온 인생에 따라 얼굴의 인상이 변해가니 잘 살아야한다는 뜻일 게다. 애써 외면하던 거울 속의 내 모습에 살아온 시간과 생각과 행동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나이 들었다고, 낯설다고 외면하지 말고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오늘이 가장 젊은 나, 많이 들여다보며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풉! 엄마, 뭐해요?”

작은 손거울을 들고 ‘치즈, 바나나’ 하며 표정 연습을 하다가 풋잠에서 깬 딸에게 들켰다.

“웃지 마. 엄마 지금 관리중이야.”

놀리기 딱 좋은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딸은 박장대소를 했지만, 이 순간이 싫지는 않다. 아직 쉰을 갓 넘겼을 뿐이고, 맞장구 쳐줄 유쾌한 딸이 있어 행복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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