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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wasyourone Aug 01. 2024

올해도 도쿄에 간다

매년 다녀올 만큼 도쿄를 좋아한다. 난생 처음 간 해외 여행지도, 가장 많이 다녀온 여행지도 도쿄다. 왜 도쿄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답하기 어렵지만 도쿄에서 좋아하는 것들을 말하라면 잔뜩 말할 수 있다. 오늘은 몇 가지만 풀어보겠다.


먼저 카레빵. 우리나라에는 잘 없지만 일본에서는 멜론빵과 함께 카레빵이 흔하다. 한국에서 유명한 일본 만화 <날아라, 호빵맨>에도 카레빵맨이 나오고 나 역시 일본 드라마를 보다가 카레빵의 존재를 알게 됐다. 카레도 좋아하고 빵도 좋아하는데 이 두 개의 조합이라니 맛이 없을 수 있나. 작년 여행에서는 미슐랭 스시보다 카레빵이 더 맛있었으니 말 다 했지. 현재까지 도쿄에서 먹은 카레빵은 모두 성공적이었고 앞으로도 갈 때마다 꼭 먹고 올 것이다.


그 다음은 홋카이도산 유바리멜론. 멜론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유바리멜론만큼은 정말 정말 정말 좋아한다. 유바리멜론은 멜론 중에 가장 달고 부드럽고 비싼 품종으로 정작 홋카이도에 갔을 때는 못 먹고 도쿄의 백화점에서 사봤다. 그때는 회사 사람들이랑 워크샵으로 도쿄에 갔었는데 혼자 호텔 앞 백화점에 들렀을 때 다같이 먹을 계획으로 두 팩을 샀다가 한 입 맛보고 냉장고에 두고 이틀 만에 혼자 다 먹었다(다행히 1인실을 썼다). 일본에 가서 유바리멜론을 본다면 소량이라도 꼭 맛보길 추천한다. 비싸다고 느낄 수는 있겠지만 과일은 당도가 높을수록 가격이 높게 책정되므로 과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 좋다.


이제 먹는 이야기는 그만 할까.


도쿄에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산다. 하루키를 처음으로 만난 곳은 우리 집 거실이었다. 아버지에게는 늘 책장이 여러 개 있었고 그 안에는 당연한 듯 <상실의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상실의 시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책에는 아버지가 고등학생 딸에게 절대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적나라한 섹스 장면이 있다. 내가 <상실의 시대>에 손을 뻗치는 것을 본 아버지는 그날로 책을 치워버렸고 다음 날 학교 도서실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며칠 후에는 하루키의 다른 작품 <댄스 댄스 댄스>까지 읽다가 집에 가져와 몰래 읽었는데 그만 아버지에게 걸리는 바람에 고교 시절에는 하루키를 다시 읽지 못했다. 하지만 대학교 때 <1Q84>를 시작으로 다시 하루키에 빠져들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가 낸 책은 거의 다 읽었다. 도쿄에 가면 하루키가 잠깐 다녔다는 와세다 대학교를 한 바퀴 돌고 나오기도 하고(아쉽게도 하루키 도서관은 아직 가보지 못했다), 가끔 출몰한다는 아오야마에도 가고, 그가 한번쯤은 들렀을 것 같다면서 블루 노트 도쿄에도 간다. 실제로 마주치면 눈도 못 쳐다볼 거면서.


하루키의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고독에 젖어들어 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열망하면서도 거부한다. 아주 오랫동안 나도 그랬다. 뭐 그렇게 사람이 복잡하냐 싶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나였다. 내 안이 시끄러워서, 남들이 나에게 하는 말이나 행동이 더해지면 가뜩이나 시끄러운 곳이 더 소란해져서 혼자만의 시간을 꼭 가져야 했다. 그렇게 천천히 잡음을 잠재우고 나면 평화가 찾아오고 그러면 창문을 슬쩍 밀었다가 반쯤 닫았다가 또 밀어두었다가의 반복. 도쿄는 창문을 완전히 잠가두고 가는 곳이었다. 서울과 비슷하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지나가는 이와 말도 통하지 않는 곳.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도시 속 비슷한 듯 다르게 생긴 사람들에 섞여 스스로 선택한 외로움을 즐길 수 있는 곳. 나는 그 군중 속의 고독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래서인지 도쿄에 갈 때면 꼭 노트를 들고 갔다. 파리나 상하이에서는 나오지 않던 말들이 도쿄에서는 마구 쏟아져 나왔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던 후회와 그리움 같은 것들을 실컷 적고 고개를 들면 마주하는 풍경이 산이나 바다가 아니라서, 바삐 다니는 사람들이라서 안도했다. 아무도 날 신경 쓰지 않음을 느낄 수 있어서. 도쿄에 있으면 서울로 돌아가도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지 않고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는 신경을 써도 너무 많이 쓰니까. 다른 사람들은 가족을 포함하는 말이다.


서울에서는 오마카세를 먹으면, 스테이크를 썰면, 뮤지컬을 보면 남몰래 죄책감을 느꼈다. 나 이런 거 봐도 되나. 우리 가족은 이런 거 먹어봤나. 해 봤나. 우리집은 교사인 아버지가 강의도 나가고 책도 쓰고 열심히 사신 덕분에 부유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살았지만 서로에게 너무 무겁다. 용돈을 드리면 부모님은 그걸 모아 다 다시 돌려주고 여행을 보내드린다고 해도 거절하신다. 나는 그때마다 고맙기보다는 거부당하는 기분이 들었고 이런 시간이 쌓이고 뒤틀려 사랑을 주기만 하는 사람을 보면 불편해 하게 되었다. 누군가 “넌 그냥 받기만 해. 그리고 그걸 고마워하면 돼.”라고 말했을 때도 나는 그 말을 사랑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그럼 내 마음은 어디로 가?" 묻지도 못했고. 


이래놓고 부모님을 닮아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마음 더 편해 하는 내가 있다. 도쿄에 많이 가다 보면 나 자신을 더 좋아하게 될까? 서울에서도 더 자주 여행하듯 살 수 있을까? 올해도 세 달 뒤에 혼자 도쿄에 간다. 카레빵은 많이, 마음은 가볍게 먹고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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