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과 종이책 사이에서
서점에 가면 항상 제일 먼저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서 1위부터 10위까지 소설들을 한 번씩 집었다가 후루룩 넘겨보고는 제자리에 놓는다. 책의 표지를 보고, 두께를 보고, 종이의 색깔과 글자체, 중간중간 읽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작가의 문체, 그리고 냄새까지. 책을 후루룩 넘기는 경험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취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소개팅에 나가면 파트너의 매력도가 첫인상에 판가름이 나듯 말이다. 상대방을 처음 보고 두어 마디 말을 주고받는 순간, 이 사람과 계속 만나고 싶은지 아닌지가 결정이 되는 미묘함이 책을 고를 때에도 존재한다.
아, 서점에서 후루룩 넘겨볼 수 있는 책은 '종이책'이라고 해야 하겠다. 이제 책의 개념은 종이로 된 '책' 뿐만이 아니라 전자로 된 책(?)도 포함하게 되었다. 책장을 넘기듯 스윽 슬라이딩하면 책장이 넘어가고, 일순간 글자들이 재구성된다. 새로이 우리 손에 쥐어진 전자책은 넘기는 소리도, 촉감도 종이책과는 같지 않지만 그럭저럭 잘 읽히는 '책' 임이 분명하다.
신중하게 전자책을 담을 기기를 선택하고 구매하면, 해당 기기를 지원하는 서점에서 전자책을 구매해서 읽을 수가 있다. 택배를 기다리거나 직접 서점에 가 책을 사지 않아도 집에서 바로 신간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심지어 일부 책들은 빌려 볼 수도 있게 되었다. 한번 후루룩 읽고 나면 다시는 보지 않을 것 같은 재밌는 소설책들은 그 후로 빌려보게 되었다. 서점에 가면 살 수 있는 일반 책뿐만 아니라 로맨스 소설, 판타지, 만화 등의 다양한 장르도 두루두루 섭렵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무거움에 구애받지 않고 어디든 들고 다닐 수 있어 한동안 전자책으로 독서를 했다. 이렇게 종이책을 벗어나 전자책을 더 선호하게 되나 싶었다.
전자책과 종이책을 읽는 느낌은 분명 다르다. 글자를 받아들이고 상상하거나 해석하고, 분석하는 일련의 과정은 같지만,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개인적인 견해일 수도 있겠지만, 항상 e-book 기기로 책을 읽을 때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소비하는'느낌이 든다. 종이책은 겉표지 디자인부터 종이의 질감, 글자체, 행간, 두께, 책에서 나는 냄새까지 모든 물리적 요소가 결합되어 그 책을 설명한다. 하지만 전자책은 오직 활자만으로 이야기를 들려준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무시할 수도 있는 소소한 '아날로그적' 요소일 수도 있지만,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때론 종이책의 묵직한 무게감이 책에 담긴 활자의 무게를 느끼도록 해준다. 시험 준비를 위해 책을 살 때의 마음이 수험서의 무게에서 느껴지기도 하고, 가벼운 소설의 발랄함이 페이퍼백의 간편함에 전해지기도 한다. 무게감이 독서 경험에 주는 효과를 비교한 논문은 본 적이 없지만, 우리의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소설책이 한 장 한 장 넘어갈 때, 우리는 이야기의 전개에 대한 암시적인 정보를 넘어간 페이지의 두께로 얻을 수 있다.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때 우리의 아쉬움이나 떨림은 전자책의 '상태 표시 바'로는 얻기 힘든 것이다.
오래전 읽었던 명작소설의 그리움이 케케묵은 냄새에 실려 올 때의 느낌은 또 어떤가. 종이가 변색하면서 내는 냄새와 질감 그것에 대한 향수는 전자책이 따라 할 수 없는 어떤 부분이다. 전자책이 생겨 너무도 편해졌지만, 여전히 종이책에 대한 향수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마도 빳빳한 종이를 넘길 때의 그 쾌감 때문이 아닐까.
글을 쓰다 보니 어쩐지 종이책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은 것 같지만, 사실상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종이책과 전자책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경험은 매우 다르다는 것이다. 소장하고 싶고, 보고 또 볼 것 같은 책은 종이책으로 사는가 하면 한번 보고 말 책이라는 판단이 서면 전자책으로 구매한다. 빨리 읽고 싶어 참을 수 없는 책이라도 그렇다. 일러스트가 예쁜 책이라면 더더욱 종이책 버전 중에서도 하드커버를 구매하고, 전자책으로 신간을 읽다 너무 마음에 드는 책이 있다면 종이책 버전을 구매해 소장 욕구를 충족시킨다.
그렇다면, 전자책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우리의 독서 습관은 어떻게 변할까? 아마도 빠르게 소비할 수 있고 어쩌면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선호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전자책으로 공부한다면 더욱, 종이책이 더 어색한 세대라면 그들이 독서하는 방식은 아주 다를 수도 있다. 이미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기 시작하면서 장문의 진지한 내용의 뉴스를 읽는 것이 힘들어졌을 수도 있다. 무엇이 좋은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는 지금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넘어가면서 달라지는 사람들의 습관과 행동 패턴을 유심히 봐야 한다는 점이다. 지식의 총체인 책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패턴은 인간이 지성을 축적하고 발전시켜온 산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