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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Nov 12. 2016

#1. 쓴다는 것에 관하여

Neo Smartpen과 만년필 사이에서

우리는 어릴 적부터 종이에 글자를 써왔다. 혹은 무언가를 그리기도 하고, 아무 의미 없는 낙서를 하기도 했고, 숫자를 열심히 써서 문제를 풀기도 했다. (예전엔 동네마다 있던) 문방구에 가면 새로 나온 샤프를 구경하다 용돈을 탈탈 털어 비싼 샤프를 사모으곤 했었다. 색깔별 형광펜도 하나씩 사모으고, 다 쓰지도 못할 거면서 필기용 펜은 학년이 늘수록 쌓여가곤 했다. 학생의 소소한 즐거움이자 때론 집착이 되기도 했던 필기구. 이번엔 무언가 쓰는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무언가를 쓸 때, 어째서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어디에 쓰는지를 중요시했던 걸까.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엔 어째서 공책의 표지가 그토록 중요하고, 샤프가 무슨 색인지 샤프심이 무엇인지가 그렇게 중요했던 걸까.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샤프에 꽂혔다가, 고장이 나서 튼튼한 일본제 샤프로 갈아타기도 하고 말이다. 그 모든 요소가 결국 학생인 우리에게 쓰는 경험을 좌우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마치 지금 키보드를 살 때 키감이 너무도 중요한 요소가 된 것처럼 말이다. 아끼는 샤프를 쓰다 샤프를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하고, 똑같은 샤프를 찾아 똑같은 색깔로 사고....... 필기구는 그때의 우리에게 참 중요한 생필품이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그림)


지금은 쓰는 경험의 폭이 훨씬 다양해졌다. 스마트 펜으로 스마트폰에 글씨를 쓸 수도 있고, 온라인으로 저장이 가능한 (종이) 노트에 글을 쓰면 스마트 기기로 확인할 수도 있다. 큰 디스플레이 위에 스마트펜으로 정교한 그림을 그릴 수도 있게 되면서, 결국 종이와 펜을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각의 목소리도 나오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종이에 펜을 슥슥 긋는 그 느낌을 살리지 못해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다. 패드와 스마트펜은 그러한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었다. 무엇보다도 종이에 슥슥 소리를 내며 쓰는 느낌이 너무 좋았고, 그것은 그 어떤 것도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이에 무언가를 쓰는 것은 완벽하지 않아졌는데, 특정 종이를 가져가야 열람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패드에 스타일러스 같은 펜으로 글씨를 써 놓으면 저장해서 여러 디바이스에서 볼 수가 있으나, 종이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에 종이와 펜을 고수하던 사람들은 이렇게 사소하지만 성가신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노트북을 많이 쓰게 되어 저장하고 열람하기 편한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지만, 종이와 펜의 조합이 주는 경험은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던 필자는 우연히 Neo 스마트펜을 접하게 된다 (네오 스마트펜을 광고하거나 후기를 말하는 글이 아님을  밝힌다). 네오 스마트펜은 전용 노트에 글씨를 쓰면 블루투스로 노트 기록을 저장할 수 있고, 액정이 있는 스마트 기기라면 어디서나 열람해볼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펜은 물론 아날로그 펜촉과 잉크를 사용하며, 그냥 원래 종이 노트에 글씨를 쓰는 행위를 하되, 저장의 불편함을 해결해준다. 펜을 써보면 알겠지만 정말 신기하다. 노트를 자세히 보면 검은 점들이 미세하게 찍혀 있고 펜을 자세히 살펴보면 센서를 확인할 수 있다. 정교하게도, 기존 사람들의 습관을 존중하며 신기술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도록 디자인된 펜임이 틀림없다. 



(출처: 네오 스마트펜 홈페이지)


하지만 스마트펜이니 만큼 일반 펜보다 무겁고, 매번 충전을 해야 하며 블루투스를 껐다 켰다하기 귀찮다는 이유로 필자는 일반 만년필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매일 쓴 노트를 스캔해서 피디에프로 변환해서 저장하는 친구의 경우 이 펜이 제격이겠지만, 필자에겐 사소한 허들을 넘어야만 하는 불편함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네오 스마트펜을 칭찬하고 싶은 이유는, 종이에 쓰는 경험 자체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처음 연필을 잡을 때부터 하게 되는 그 경험, 펜으로 종이에 슥슥 쓰는 그 느낌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새로 나온 기술의 편리함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한다. 


기존 우리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쓴다'는 것은 종이의 감촉과 짙은 잉크 혹은 연필심, 그리고 말로 잘 표현하기 어려운, 글자를 '그리는' 느낌이 모두 포함된다. 그것이 없다면 쓰는 것은 '쓰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기록을 위한 또 다른 행위로 전락한다. 우리가 샤프의 종류와 펜의 색깔에 그토록 집착한 이유는 그것이 단순히 글자를 남기기 위한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쓰는 것은 그만큼 총체적인 활동이고, 듣기 혹은 보기 그 어떤 인지과정보다 복잡하고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행위이다. 쓰고 나면 뿌듯함을 느끼고, 내용을 기억하고, 다시 보며 회상하기도 하는데, 이 모든 일련의 시간이 '쓴다'에 포함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저 액정에 플라스틱 촉으로 그리는 행위에 쉽사리 익숙해지지 않으며, 그것이 종이와 펜을 영원히 대체하진 못할 것이라 단정 짓는다. 


다양한 모양과 기능의 스마트펜이 출시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만년필 잉크가 떨어졌을 때를 대비해 잉크를 쟁여놓고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패드 액정의 감촉을 덜 미끄럽게 하더라도, 종이에 잉크가 스며드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느낄 것이란 사실이다. 종이의 표면이 샤프심과 마찰해 깎여가며 그려지는 글자의 모습을 우리는 여전히, 그리워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대체할 수 없는 경험이 있다는 것은, 

네오 스마트펜과 같은 제품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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