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봄이 올 것처럼 푸근한 겨울은 느닷없이 얼굴을 바꾸었다. 바짝 추위가 시작될 거라는 일기예보를 듣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긴가민가했다. 익히 알고 있다고 바로 몸으로 느낄 수 없는 것이 체감 온도라는 것이니. 정말 눈이 올까? 내 의심을 어떻게 눈치챈 것인지. 한밤중 무슨 이유로 눈을 떴는지 모르겠다. 정말 순간의 일이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바로 잠이 후다닥 달아났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머! 정말 눈이 오는구나. 겨울에 눈이 내리는 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닌데, 왜 정신이 번쩍 들었던 것일까.
책방을 차리겠다는 생각을 구체화시킬 시간이 다가오자 자주 잠을 설치기는 한다. 말은 이리 요란하게 꺼내놓았는데, 과연 할 수 있을까? 얼마나 어려운 문제인가? 도대체 누가, 무슨 수로 이 난해한 문제의 해답을 알려 주겠는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잠을 줄이고 생각에 몰두하는 것일 뿐이니. 거듭 된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정말 해야 하는 일일까?’와 ‘하지 않으면 불행해질까?’에 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해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백지 시험지를 펼쳐 든 느낌이 이런 기분일까.
자다가 불현듯 무슨 해결책이 떠오른 것은 아니다. 누가 나를 깨운 것일까? 저 조용한 눈송이가 창을 두드린 것 아닐까? 원래 소리 없는 아우성이 무서운 법이니. 몸을 일으켜 창틀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거짓말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게 아닌가. 옆집 옥상 난간에, 댓잎 위에, 나목의 가지 끝에도 눈이 쌓이고 있었으니. 달빛에 눈이 부신적은 있지만, 눈빛이 이리 밝은 줄은 몰랐다. 하염없이 넋 놓고 구경하다 설핏 웃음이 나왔다. 내가 책방을 열겠다는 생각이 어쩌면 한밤중의 눈 구경 같은 건 아닐까?
오래 꿈만 꾸다가 로망을 실현해 보고 싶은 욕구라니. 미답의 장소로 발을 내딛는 일은, 얼마나 황홀한 유혹인가? 그러니 누가 말릴 것이며, 말린다고 말을 듣기나 할 것인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해왔다. 무슨 일이든 심사숙고하는 생각파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그대로 해보는 행동파 말이다. 대개 젊어서는 행동파였다가 나이가 들면 생각파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다. 둘 다 장단점이 있기는 하다. 전자는 좀 답답하고 후자는 속은 시원한데 뒷감당이 숙제로 남을 확률이 높다. 결혼이 대표적인 행동파의 소산인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할 만큼 무모한 도전임은 분명하다. 나중에 알게 된 기혼자들은 대개 결혼을 권유하지 않지만. 인류의 번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분에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은 아닐까.
제일 좋기로는 충분히 생각해서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돌다리도 두드려가면서 차근차근 일을 진행하는 것이다. 주위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만나서 방법을 전수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위인은 책 안에서만 사는 것인지. 설사 있다 하더라도 고분고분 말을 들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개혁보수연합’이라는 당명처럼 노련과 패기는 쌍으로 가질 수 없는 조합이 아닐까. 사실 원론적인 것은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세상이 이론처럼 단순하지 않아서 실천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수없이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는 너무 잘 알면 오히려 실행을 망설이게 되는 법 아닐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두 가지 성향이 혼재해 있다. 굳이 나를 분류하자면? 생각은 부지런하고, 행동은 게으른 전형적인 중도파로 살아왔다. 좋게 표현하면 그렇고 엄밀히 분류하면 회색분자이겠지만. 그 와중에 즐겨하기는 사실 바람잡이 역할이다. 누가 무슨 일인가를 하려는 낌새가 보이면 대체로 부추기는 편이다. 뭐 대단한 철학은 없고, 몇 가지 이유는 있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적성이나 꿈을 찾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축하해야 할 일이 아닌가. 일단 얘기를 들어보고 일에 대한 이유나 포부가 터무니없지 않으면 대개 해보라고 하게 된다. 세상에 자신의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즐거운 상상에 기꺼이 동참해 용기를 북돋워주는 게 당연하다 생각해서. 예외가 없지는 않은데, 돈이 엄청나게 든다거나 나의 희생을 볼모로 하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바람잡이가 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으니. 일종의 성향이기도 하다. 심심함을 못 견뎌하고 재미있는 얘기에 솔깃해지는 얕은 귀 말이다. 세상에 구경보다 흥미진진한 일이 있을까. 영화며 독서도 일종의 간접체험이어서 즐기는 일이지만, 생생한 현장 중계에 어찌 견주겠는가? 신나서 동참하는 대리 만족의 기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사연을 말하고 싶어 하는 존재이니. 나는 애정 어린 마음으로 귀만 빌려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계획과 과정을 설명하면서 스스로 길을 찾아가니, 크게 할 일은 없었다.
일이 잘 되면 가끔 생색을 내기도 했다. 그러다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마음 아픈 만큼 말이 길어지는 불상사는 있다. 바로 꼬리를 내리고 정리 단계에 돌입해야 한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니? 모든 일에는 수업료라는 게 필요하잖아. 돈 내고 배웠다 생각하고 잊어버려라. 적어도 앞으로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시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을 거야. 좀 무책임하지만, 앞가림은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 준엄한 현실이니 어찌하겠는가. 그래도 확실히 하나는 챙기지 않았냐고 다독인다. 고군분투 중에 느낀 삶의 희열 말이다. 사건을 공유하면 우정도 돈독 해지지만, 그건 스스로 알아챌 때까지 숨기는 게 좋다. 어디까지나 덤이니까.
대부분의 시간을 어중간한 바람잡이파로 살다가 나도 가끔 저돌적 행동파가 되는 경우가 있으니. 겨울이 봄처럼 푸근할 때 생기는 현상 같은 것이다. 지난번의 제주 한 달 살기가 그러하고, 책방 열기는 강도가 더 세지 않을까. 내 예감이 틀리지 않는다면, 핵폭탄급 행동이 필요할 것이니. 이젠 누군가에게 던졌던 입바른 소리와는 결별을 고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내게는 어떤 충고를 할 것인지? 세상에서 가장 못 믿을 인간이 바로 나이고.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것도 나이니. 더욱 엄격해져야 하는 책무도 내가 저야하는 것이다. 이젠 어떤 잣대를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다만 뜻 맞는 사람을 좀 더 많이 모으고 싶었고, 즐거운 놀이터를 크게, 대대적으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나게 노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면 너무 철없는 항변일까? 이 꿈같은 계획은 실현될 수 있을까. 만약 실패한다면? 그래도 해보길 잘 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동안 내지른 충고를 받아들여 단박에 승복할 수 있을까. 가장 큰 손해는 돈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잃는 일이 될 터이니. 그 다짐을 지킬 수는 있을까. 우정이나 보람 같은 열매의 맛은 조금 볼 수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부지런한 누군가가 집 앞 눈길을 쓸어 놓았다. 쌓인 눈이 하늘의 작품이라면 빗질 자국은 이웃을 배려한 섬세한 마음 이리니. 눈이 내리지 않았으면? 그 마음은 어찌 펼칠 수 있었을 것이며, 찬바람 속에서 느낀 훈훈함은 누가 가져다 줄 것인지.
참, 화단의 히아신스는 무사한지 모르겠다. 눈 속에 폭 파묻혀 입을 닫고 있으니. 잎이 얼지는 않았을까? 버릴까 하던 마음을 돌려 구근 하나를 심어놓고. 올 겨울 내내 나는 호기심과 안타까움과 궁금증 사이를 오가며 산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으면 관심도 없었겠지만, 구멍 하나를 파고 뿌리를 심고 보니, 애정이 생기더라는. 자연의 법칙 하나를 깨우치면서 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멀리 북한산은 여전히 거대한 침묵에 휩싸있다. 진정한 친구는 자고로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