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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과 북촌을 오가다(수정본)

책방을 어디에 열 것인가? 이 문제는 ‘어떤 공간을 빌릴 것인가’에 우선하는 고민이다. 일단 어떤 구체적인 지역이 정해져야 그곳의 공간 탐험이 가능해지는 법이니. 그리고 동네를 고르는 조건에도 또한 여러 가지 고려 조항이 있다. 책방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너무 상업적이면 안 좋다. 번잡한 곳은 안정감이 없으니까. 책을 사려면 조용히 앉아서 생각하며 잠시라도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법. 대형 서점에 가지 않고 작은 책방에 오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 그래서 한적하면서 조용한 곳이 좋다 생각했지만. 곧바로 든 의문은 무슨 도서관을 짓는 것은 아니라는 반론이었다.


책방은 엄연히 상업적인 공간이니, 유동인구를 어찌 고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연히 그 인구가 책을 많이 읽을 법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니. 왜 대부분의 책방이 마포구나 서대문구에 많은지 단박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독서인구와 경제적 여건이 복합적으로 고려된 상황 이리라. 그렇다고 나까지 우르르 몰려 갈 수도 없는 것이, 지금 주거지역과의 연관성도 무시할 수가 없다. 책방을 하는 일이 호구지책도 아닌데, 가족들까지 희생시킬 수 없는 노릇. 집에서 너무 멀지 않으면서 서울 어디서나 접근이 어렵지 않고, 문화적인 향기가 있는 곳이어서, 겸사겸사 나들이를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이 얼마나 순진한 발상인지. 곧 깨닫게 되었으니.


워낙 외곽지역에 살아서 웬만한 곳은 차로 1시간 거리이니, 사실 크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종로구 여야 한다는데. 대략 혜화동에서 경복궁 근처를 아우르며 물색을 거듭했다. 최종 집약된 곳은 북촌과 서촌지역으로 좁혀졌다. 사실은 사심이 작동한 것이니. 내가 주로 활동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두 경복궁 근처여서 근 20년간 익숙하게 다녔던 곳이고. 무엇보다 이곳의 면면을 사랑한다는 것이었으니. 심리상담가로 활동하는 남동생과 공간을 공유하기로 한 것도 종로구를 택한 이유 중 하나이다. 동생은 집이 파주여서 광화문 근처가 편하다는 것. 조금 따뜻해지면 문을 열기로 의견 일치를 보았지만, 현장조사는 미리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처음, 책방을 열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정말 든든한 지원군이 남동생이었으니.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겠다는 말에 다들 황당해했지만, 남동생은 토를 달지 않았다. 잘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어도 해보고 싶은 일이라면, 뭐 망설일 것이냐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자신도 마침 상담실이 필요한데, 같은 공간에서 해보면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둘 다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일이어서 경제적 부담을 줄여야 했고, 일의 특성상 서로 방해하지 않을 것 같았고. 오히려 약간의 시너지 효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되기도 했으니. 그리고 동업을 결정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서로에 대한 신뢰였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워낙 돈독하게 지내서 거의 눈빛만 보면 통하는 사이라고 할까?


동생과 서촌 지역으로 처음 현장 조사를 나갔다. 몇 년 사이 몰라보게 들어선 음식점이며 카페들. 이곳이 내가 좋아한 그곳이 맞을까? 그러나 그것마저 현장에서 부딪혀보기 전까지 실상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니. 첫 부동산 사무실에서 바로 현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할까. ‘거실이 하나 있으면서, 두 개의 독립된 방이 필요한데, 방은 둘 다 방음이 잘 되어야 하고, 리모델링한 조용한 한옥이면 좋겠습니다만’ 구체적인 조건을 다 열거하기도 전에 중개인이 말 허리를 자르고 묻는다. ‘무슨 용도인지에 따라 임대 가능한 집이 달라지고, 가격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는지 먼저 알려 달라’는 것이니. 현장의 가장 큰 변수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라는 현실을 피부로 느꼈다 할까?


한참의 조율 끝에 적당한 집 하나를 찾아내 현장 조사를 해보기로 했다. 경복궁역과 연결된 대로변을 비스듬히 비켜 1차선 도로가 있는 곳. 주말이면 방문객으로 살짝 몸살을 앓는다는 ‘핫 플레이스’라나. 그러나 그 도로에 면한 가게는 임대료가 엄청나서 어려울 것이라며 작은 골목으로 다시 한번 꺾어 든다. 갑자기 한적한 주택가 좁은 길이 시작되니, 조금 지나자 처마를 치켜든 한옥이 줄줄이 나타난다. 대문가에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는 듯. 원래 이 동네 주민임에 틀림없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리 상반된 광경을 볼 수 있다니. 바로 옆은 젊은이들이 바글거리는데, 그들은 여전히 시간이 멈춘 듯 그대로 살고 있다. 이게 동네의 매력인데 이젠 골목 안에서만 느낄 수 있게 된 셈이니.


구불구불 더 걸어 들어가자 하얀 3층 건물의 반지하방이 보인다. 외양은 산뜻하다. 작은 쪽문을 열고 계단 서너 개를 내려가자 밖으로 창이 난 제법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넓은 거실에 작은 방 두 칸, 근사한 부엌과 깔끔한 화장실, 빛이 환한 발코니 공간까지. 리모델링 한지 얼마 안 된 새집이란다. 벽이나 천정, 화장실의 타일을 흑백 톤으로 통일시켜서 상당히 미니멀하다. 내가 원하는 맞춤형 공간 같다 할까. 첫눈에 마음을 사로잡으니, 가구 배치까지 머릿속으로는 거의 끝나 가는데. 작은 방 두 개가 가벽으로 나눠져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다. 상담실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건이 심리적 안정감과 비밀 보장이라며 동생이 난색을 표한다.


이게 상가 임대의 험난한 길의 서막인 줄은 아직 모르고 있었으니. 마음에 들었지만 처음 본 집이라 덥석 계약하긴 좀 망설여진다. 방음 문제 해결과 가격도 협상을 해야 하고. 그리고 곧, 너무 상업적으로 변한 서촌에 놀라게 되었다 할까. 거의 수송동 계곡까지 가게나 업무 공간이 침투해 있으니. 자본이 예전의 순수를 다 앗아가 버린 현실이 서글프기도 했다. 우리가 확보한 예산으로 적당한 곳을 구할 수 있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서촌을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결국 건물주 대신 돈을 벌어다 주는 아바타가 되는 건 아닐까. 어두워지자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시위대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정치 일 번지답게 역동적인 동네이긴 하다. 역사의 현장을 맛보게는 되려나. 다른 때 같으면 합류해 목소리를 높였겠지만. 머리가 복잡해 집으로 돌아왔다. 내 코가 석자라, 나라는 잠시 뒷전으로 미루어진다.


거리로 치면 그래도 북촌이 편리하니 조사는 해 봐야지. 며칠 뒤, 또 다른 친구에게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다. 인사동이야 일찌감치 관광객들에게 내준 셈이니 바로 삼청동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풍문여고 앞에서 시작되는 돌담길이 그대로 남아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미 대사관 숙소 자리에 호텔이 들어설 것이라는 풍문이 무산된걸 누구보다 반겼는데. 학교들이 결국 막아낸 것이니, 지나다닐 때마다 꿀 떨어지는 시선을 한 번씩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학교 담에 연이어 요란한 먹거리와 상품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있다. 떡볶이가 왜 한국을 대표하는 요리인지? 웬 한복 대여점은 이리도 많은지. 가끔 볼일이 있어 이른 아침에 골목을 들어서면 정말 한가하고 고즈넉해서, 한번 살아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는데. 방학이고 오후라 벌써 사람들이 몰려든다.


어김없이 국적 불명의 한복 행렬, 눈이 괴롭다. 이왕 입히려면 제대로 만들어 상품화시키면 좋으련만. 돌아보기도 전에 인파에 질린다. 그만큼 상업지역이라는 증거이니, 자연히 임대료도 비쌀 것이다. 알아보나 마나는 아닐는지. 서촌을 한번 경험해서인지 벌써 걱정이 앞선다. 아니나 다를까? 조건을 말하자마자 어렵겠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겨우 하나 발견한 곳이, 골목 안 건물의 2층이란다. 대강 들어보니 자주 가는 밥집의 맞은편이다. 번잡한 길에서 살짝 들어간 곳이라 위치는 좋은데, 겉에서 보기엔 다세대 주택 같다. 방 두 개 거실 하나, 깔끔하고 조건은 맞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살림집 분위기를 풍기니 어찌할꼬. 주인이 막 건물을 매입해서 첫 입주자라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니 오래 기다릴 수는 없을 거란다. 그럼 이참에 아예 이곳으로 이사를 해서 거실에 책방을 차리고 살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정독 도서관도 멀지 않고, 마침 주차장도 있다는데. 말로는 늘 재택근무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하지 않았나?


몇 군데를 더 다녀보았지만 그 가격대는 열악하기 짝이 없다. 북촌은 접어야 하나보다 서촌에서 보았던 집을 친구에게 설명하니 한번 보고 싶단다. 요즘에는 기억이란 게 워낙 허술해서, 신빙성이 있으려나 모르겠다. 근처 ‘이상의 집’을 겨우 찾아 골목으로 들어서니 생각보다 안 쪽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밖에서는 찾기도 힘들 만큼. 그렇다면 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책방의 운영 방식 말이다. 알음알음으로 회원을 늘릴 것인지, 오가는 사람에게 문을 열어서 새로운 회원 영입도 도모할 것인지. 막연히 생각했던 방식을 하나하나 매듭 지워야 구체적인 공간에 펼칠 수 있으니. 하루하루가 선택의 나날이다. 통인 시장 근처에 오자 옛날 생각이 스친다. 그래, ‘길담 서원’에 한번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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