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6월 21일 화.
막상 수업을 정리하려니 만감이 교차한다. 자다 깨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5시경 잠을 포기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불을 끈 채 밖을 내다본다. 아직 많이 어둡다. 자세히 보니 푸르스름한 빛이 조금씩 밀려온다. 밤과 새벽의 경계는 어디일까. 어둠과 빛이 서서히 자리바꿈을 하는 이 시간. 정말 신비하다. 보고 있어도 그립다는 말, 무슨 호들갑이냐고 생각했지만 여명을 보는 마음이 딱 그렇다. 곧 사라질 이 순간들이 벌써 그리워진다.
유리에 내 얼굴이 비친다. 잠을 못 잔 탓인지 눈이 쾡 하다. 아직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내지 않았으니 여기서 마음을 접을까. 갈등, 갈등. 어찌해야 할까. 친구들은 모두 말린다. 왜 사서 고생을 하냐고. 지금처럼 쉬엄쉬엄 하면 되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또 일을 벌이니? 너는 지치지도 않니. 아무리 생각해도 맞다. 나도 버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러는 것일까. 괜히 일을 벌였다가 그때가 좋았다고. 새벽에 일어나 중얼거리지는 않을지.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예전에 점찍은 작품이다. 토론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수강생들이 감당할 수 있을까? 살짝 고민되었다. 그냥 무난하게 올해 이상 문학상 작품으로 가자. 김경욱의 <천국의 문>은 미묘한 심리묘사가 좋다. 같이 실린 김탁환의 <앵두의 시간>도 토론 거리가 많고. 어영부영 결정했었다. 그런데 그 사이 한강이 맨 부커상을 받았다. 앗 싸! 이제 걱정할 건 없다. 왜 이런 책을 선정했냐고 딴지 걸진 않겠지. 아니 외국의 권위 있는 상이니 오히려 궁금해할 것도 같다.
며칠 전 국제도서전에 갔다가 놀란 경험도 작용했다. 읽지는 못하겠지만 영문판은 어찌 생겼나 궁금해서 들러보았다. 수상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붙은 출판사 부스에 사람들이 많다. 이런 계기로 그나마 소설을 좀 읽으면 얼마나 좋을꼬. 한참 얼쩡거려 보았다. 이외로 구매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살까 말까 표지를 뒤적이는 사람들 사이
야, 이 책 봤니?
응, 봤어. 상 받았다고 해서 바로 사서 봤어. 그런데 별로야.
그래? 사지 말까?
좀 이상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영화도 있다고 해서 그것도 봤거든. 엄청 야하더라고.
그래? 야한거야?
좀 그렇더라니까 이해가 잘 안 돼.
나처럼 귀동냥하던 몇 사람이 책을 만지다 그냥 간다. 입소문의 무시무시한 위력. 붙잡고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걱정이 많았는데,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다고 한다. 누군가 폭력에 대한 이야기 같다고 운을 떼니, 뒤이어 질문이 쏟아진다. 채식주의자가 된 계기가 무엇인지. 몽고반점은 무엇을 상징하는지, 형부가 표현하려던 작품은 무엇인지. 처제와 형부는 각자 무슨 생각으로 비디오 촬영에 임하는지. 작가는 왜 성적인 표현에 이리 집착한 건지. 성이 얼마나 폭력적일 수 있는지. 언니의 상처는 무엇인지. 동생은 왜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지.
인간은 질문하는 존재라고 하지 않는가. 특히 요즘 세상엔. 연역 가능한 답은 기계가 더 잘할 수 있으니. 질문으로 이해의 핵심을 찌른 것이다. 토론이 치열한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크게 덧붙일 것도 없다. 작가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것일까? 맨 부커상을 받을 만하다 생각하나? 혼자 읽었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토론을 하면서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고. 이구동성이다. 수업하길 잘했다. 개인적으로는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더 밀도 높은 소설이라고. 최신작 <흰>은 시로 쓴 소설이라고.
뜨겁게 토론을 하고 나니 더 망설여진다. 이 즐거운 판을 내가 깨야 하는 것일까? 식사를 하면서도 갈등이 가라앉지 않는다. 대화에 집중하기도 힘들고. 그만 단안을 내리자. 다른 테이블에 앉은 아카데미 대표를 찾아간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강좌를 그만두겠다’고, 순식간에 내뱉었다. 담아두었던 말을 쏟아내자 잠시 속이 후련해진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후회했다. 지금이라도 그 말 취소한다고 전화할까. 오늘도 잠자긴 글렀다.